▲신광섭 국립민속박물관장
유혜준
신 관장이 백제금동대향로를 발굴한 것은 그가 부여박물관장으로 재직할 때였다. 부여박물관에서만 17년간 근무했다는 신 관장을 만난 것은 지난 10월 2일, 부여 정림사지에서였다.
이날 신광섭 국립민속박물관장은 부여와 공주 일원에서 열리고 있는 '2010 세계대백제전' 행사의 하나인 '명사 신광섭 관장과 함께 하는 부여답사'를 진행하기 위해 부여에 막 도착한 참이었다. 이 행사는 부여문화원에서 주관했다.
부여는 잘 알려진 대로 백제의 옛 도읍지. 옛 이름은 사비다. 한 때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한 나라의 도읍지였으니, 문화유산이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다. 역사는 승자를 중시하면서 많은 기록을 남기지만 패자는 잊거나 무시한다. 그렇기에 남아 있는 기록은 빈약할 수밖에 없고, 흔적 역시 쓸쓸함을 깊이 느끼게 하는 것이 대부분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부여가 고향이며 부여박물관에서 17년이라는 적지 않은 세월동안 재직하면서 백제의 많은 유물과 유적을 발굴한 신광섭 관장과 함께 부여지역을 둘러보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진 나라 백제의 의미를 되새기는 답사는 뜻 깊었다.
기와에 새긴 글귀 참고로 이름 붙인 '정림사'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아무래도 부여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정림사지. 정림사가 있었던 절터에는 백제 때 건립된 5층 석탑이 세월의 풍파를 견딘 채 굳건히 서 있다. 탑 앞에는 연잎이 가득 들어찬 연못이 있다. 봉우리가 맺힌 연꽃이 딱 하나 연잎들 사이에 숨어 있고.
탑 뒤쪽에는 백제시대의 강당을 복원한 건물이 들어서 있는데, 그 안에 삐뚜름한 돌 모자를 쓴 석불좌상이 빙긋이 웃고 있다. 그 돌 모자는 맷돌로 만든 것이라는 게 신 관장의 설명이었다. 석불은 고려시대에 만든 비로자나불이라고 했다. 정림사는 백제시대의 절터로 고려 시대에 중건되었던 절이다. 백제 때의 절 이름은 전해지지 않아 모르고, 고려시대 중건 당시 사용된 기와에 새겨진 글귀를 참고로 '정림사'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