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시청자들이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오해를 갖고 있을 때 지난 2003년 동성애를 다룬 김수현 작가의 '완전한 사랑'에 출연해 작가와 인연을 맺은 홍석천씨가 김 작가에게 고맙다는 뜻으로 전해줄 선물을 들어보이고 있다.
유성호
- 한국 드라마에서 동성애를 다룬 게 많지 않은데, <완전한 사랑>이 대중적으로는 첫 작품 아닌가 싶어요. 이 드라마에 동성애자로 출연했었잖아요.
"<완전한 사랑> 이전에도 90년대 말인가 단막극이 있었어요. 김갑수-주진모 주연의 <슬픈 유혹>이라고. 그렇지만 주말드라마로는 처음이었어요. 김수현 선생님께서 홍승조라는 캐릭터를 만들어주셔서 들어갈 수 있었어요. 커밍아웃 하는 게이 캐릭터였는데, 연기는 평범하게 해달라고 당부하셨어요. 아직 한국에는 동성애에 대한 선입견이 있고, 너무 여성스럽거나 웃기면… 김 선생님께선 그저 동성애자도 같이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그리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똑같은 사회구성원인데 성정체성이 좀 다른 것으로만 하자, 그러셨지요. 평범한 연기를 원하셨어요.
6~7회 분량에서 승조가 지나(이승연 분)에게 커밍아웃을 하고 이불 뒤집어쓰고 우는 장면이 나오는데, 원래는 부모님에게 해야 할 커밍아웃을 절친인 지나에게 대신 하고 우는 장면이었던 거예요. 그게 7년 전인데, 이번 <인생은 아름다워>에선 바로 부모님에게 커밍아웃 하는 장면이 들어간 거예요. 7년 전 내 커밍아웃의 파트너는 친한 여자친구였지만, 이번 <인생은 아름다워>에선 동성애자의 사랑, 삶의 고민까지 영역이 확장된 거라고 봐요."
- 그렇지만 여전히 동성애에는 넘지 못할 벽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지난해 게이 청년들 간의 로맨스를 그린 한국 영화 <친구사이>는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에서 '유해성 있음'으로 판정받기도 했지요. "음… 나는 15세가 정도만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18세 등급 받아도 뭐 괜찮다고 봐요. 다만 말하고 싶은 건, 우리 사회가 한국 청소년들을 너무 얕잡아본다는 거예요. 너무 생각이 없는 애들로 평가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는 걸 말하고 싶어요. 어떤 정보를 던져줘도 판단할 아이들이 있는데 그걸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요.
성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자꾸 감추고 하지 말라고 하면 더 썩는 거고, 이런 겁니다. 요건 조심하세요, 알려주는 게 훨씬 더 중요한 건대, 대한민국은 늘 숨기고 차단하고 못하게 막고 그래요. 성에 대해 판단하지 못하도록 하는 게 제일 큰 병폐 같아요. 보수적 마인드, 옛날의 그 잣대 그대로. 못 마땅해요, 전.
대중은 모두 스마트폰 쓰고 있는데, 높은 관직에 계신 분들만 막대 모토롤라폰 갖고 다닌다고 해야 할까. 정책을 주도하는 관료들이 세상의 속도를 따라오지 못한다고 봐요. 선도해야 할 분들이 뒤쳐져 있다고 해야 할까. 뒷북치는 선수들이 너무 많아."
"위장자의 90%를 갈아치워야 한다"- 얼마 전 <조선일보>에 실린 '<인생은 아름다워> 보고 게이 된 내 아들, AIDS로 죽으면 SBS 책임져라!'란 의견광고 보고 격분해서 트위터에 글을 올렸던데."솔직히…, '미친 거 아니야? <조선일보> 광고 할 돈 있으면 좋은 데 쓰셔야지, 참교육 하신다면서, 학용품 없는 애들 좀 사주시든가', 그랬어요. 무엇보다 광고문구 자체가 틀린 말이고, 잘못 됐어요. 따져보자고요. <인생은 아름다워> 보고 게이 된 아들? 그 드라마를 보고 게이 된 게 아니라, 걘 이미 게이였던 거고, 그 드라마 속에서 부모님이 이해해주는 장면이 나오니 우리 부모님도 그럴지 모른다는 기대로 커밍아웃을 한 거라고 생각해요. 드라마를 보고 게이 됐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그럼 네티즌 말마따나 조폭영화 보면 조폭 되고,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보면 다 구미호 되나?
또, 에이즈 걸려 죽으면? 동성애자는 무조건 에이즈 걸리나? 아니거든요. 에이즈는 섹스를 통해 전염되기도 하지만 이미 당뇨처럼 관리병이에요. 관리만 잘 하면 수명 연장시킬 수 있는 질환이라는 게(알려진 게) 벌써 몇 년 전인데. 그리고 에이즈 환자들의 인권은 또 어떻게 할 거예요? 정말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너무 한 거죠. 많은 돈 들여 광고할 시간 있으면 1만 원짜리 동성애 관련 책을 읽고 공격을 하더라도 제대로 하시라, 말하고 싶은 거예요."
- 그쪽 단체에서 항의전화는 없었나요?"조용하던데요? 본인들이 생각해도 웃긴 멘트라고 판단하지 않았을까요? 내가 트위터를 매일 들여다봐요. 혹여 날 공격하는 이들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런데, 없더구만요."
- 외국에선 에이즈 환자 돕기 행사도 많이 하는데 우린 그런 게 별로 없어요. 경계하고 죄인 취급하고 배타시 하고, 왜 그런 문화라고 생각해요?"의식의 차이라고 생각해요. 외국에서는 개인의 삶을 인정하잖아요. 개인주의. 그런데 우린 집단주의예요. 집단에서 벗어나면 이단아의 얼굴을 들이밀죠. 우리 집단에 네가 끼려면 네가 변해야지, 우린 변할 수 없어. 군대문화, 직장문화, 공무원 복지부동. 모두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누군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면 '야! 그냥 조용히 있어, 편하게 묻어가자', 뭐 이런 게 만연돼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튀는 행동을 하면 즉각 죽이려고 하고. 너 왜 이렇게 튀니? 튀는 개성을 못 견뎌하는 거죠. 그런데, 참 웃긴 게 있어요. 그러면서도 사회적 소수자, 장애인이 능력을 발휘하면 포장을 하고 난리를 치고 일약 영웅으로 만든다는 거예요. 한탕주의. 한동안 팍 집중시켜놓고 책임 안 지는, 산골소녀 영자(아버지와 단둘이 산골에서 살아가던 영자의 모습이 TV를 통해 알려지면서, 영자는 CF를 찍는 등 경제적 도움을 받았지만, 이후 집에 강도가 들어 아버지를 잃었다)가 그런 케이스 아니에요?
나는 위정자의 90%를 갈아치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10%는 괜찮은데 나머진 모두 재교육기관에 보내 다시 교육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부분 40년 전 대학교육을 끝으로 그 어떤 교육도 받은 적 없는 분들일 것 같은데, 이런 분들을 대상으로 한 재교육 왜 없어요? 가만보면 우리나라는 상담기관, 교육기관, 재교육기관이 별로 없어요. 무슨 고민이 있어도 이걸 상담할 기관이 없네? 창업 준비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상담기관도 필요한데 말이죠. 그러니까 모두 명퇴하고 사업하다 쫄딱 망하고 그러는 거예요."
- 민노당 성소수자위원회 활동도 했는데, 소수자 인권을 위해 정치할 생각은 없으세요? "작년인가 올초 민노당은 탈퇴했어요. 민노당 안에도 반대하시는 분들도 계시다고 하고, 한때 시류에 섞여 성소수자위원회도 조직한 것 같고. 계속 네트워크를 갖고 활동해온 것도 아니어서 매월 내던 당비 1만 원을 내지 않기로 했지요."
"4년 뒤 용산구청장 도전할 거예요"- 동성애자 인권을 위한 정치를 할 생각이 있는 거예요, 없는 거예요?"올해 고민이 좀 생겼어요. 나이 마흔이 되니까 스물 넘어 서른 왔고, 서른 넘어 마흔 왔으니, 마흔 넘어 쉰 갈 생각을 하게 되는 거지요. 올봄 지방선거 치르는 걸 가만 보고 있으니 답답해지더라고요. 뽑힌 뒤 그들은 무엇을 할까, 알 길이 없더군요. 내가 만일 정치나 행정을 한다면 좀 독특한 시각으로 다르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다음 선거에서 용산구청장 어떨까? 고민중이에요. 국회의원은 너무 정치적이고, 구청장은 행정이니 한번 해볼만하지 않을까, 생각 중이죠.
내가 골목정치, 풀뿌리정치에 관심이 많아요. 골목문화 자체를 너무 사랑하고. 죽어있던 뒷골목이 살아나는 걸 보면 뿌듯해요. 누군가는 나서서 골목문화를 깔끔하게 바꿔줘야 하는데 나란 사람이 이태원에서만 15년이니 용산구청장 어때? 생각하게 된 거죠. 주변에 물어보니, 거 재밌겠다! 하더군요. 하하. 공무원들도 아이디어 많고 변화에 목마른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요. 그들과 내가 합심한다면? 썩 괜찮은 동네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 용산구청장이 된다면 가장 먼저 무엇부터 하고 싶으세요?"지하철 6호선 효창공원역부터 용산구청 사이에 아주 오래 된 옛날 동네가 하나 있어요. 거의 매일 플래카드가 붙어 있는데, 내용은 서울시와 용산구는 주민들을 몰살하느냐? 뭐 이런 거예요. 그 동네 주민들은 못 나가겠다 버티는 거고, 용산구와 서울시는 나가라, 그래야 빨리 개발된다 뭐 이렇게 옥신각신 하는 분위기예요.
그런데 이 동네, 정말 옛날 냄새 너무 잘 살아 있는 동네예요. 딱 한 블록인데, 도대체 그걸 다 뜯어 뭘 개발할지 정말 궁금해요. 만일 나라면, 내가 용산구청장이라면, 그 동넬 문화의 거리로 만들겠어요.
일본 동경에 '다이칸 야마'라고 문화의 거리가 있어요. 기찻길 옆에. 아주 예쁘기로 더 말할 나위가 없어요. 공덕역부터 용산역까지 철도따라 공원도 만들고 먹거리와 즐길 거리, 아이들 장난감도 팔고 볼 수 있는 공간 만들면 어때요? 무조건 다 뜯어 없앨 게 아니라 특화된 상권의 아이디어를 현지 주민과 얘기해서 바꿀 건 바꾸고 고칠 건 좀 고치고 그럼 되지 않을까요? 낡았으니 다 부수고 새로 지어! 난 이건 아니라고 봐요.
오세훈 시장이 '디자인 서울' 운운하는데, 디자인의 출발은 기존의 있는 것을 보존하면서 발전시키는 게 기본이에요. 동대문 구장을 왜 없애냐고? 그 역사성을 다 어떻게 할 건대? 일본이 지어서 치욕이라고? 아니 그럼 터키에 있는 성 소피아 성당은? 거긴 기독교, 이슬람 틈나는대로 쳐들어와 변형했는데, 결국 이 성당이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됐어요.
치욕의 역사라면 그 역사대로 보고 반성하고 후대가 느끼도록 해줘야지, 무조건 없애? 그건 아니죠. 얼마 전 '이태원 관광특구 위원회'에서 이태원을 개발하겠다면서 절 불렀어요. 교수님들이 이태원을 거의 새로 지으셨더구만요. 네덜란드 거리, 스페인 거리 등등 조감도를 다 그려놓으셨더라고요.
왜 우리가 네덜란드, 스페인 흉내를 내야 하느냐고 물었죠. 답을 못 하시더군요. 이태원은 이태원에서 장사하는 토박이들이 자생적으로 만들어놓은 거리예요. 정부가 관광객을 끌어들였냐고요? (정부 등은)자생적으로 만들어진 문화의 소중함을 너무 생각 안 해요.
이태원 관광특구에 뭐가 중요한지 몰라요. 네덜란드, 스페인 거리보다 더 중요한 게 있는데도 말이에요. 거 주차장이나 제대로 만들라, 이거예요. 관광차 오면 다들 불법점유 해가지고 어디 사람 다닐 수가 없어! 사람들에게 정말 필요한 게 뭔가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너 같은 문어대가리가 우리의 아이콘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