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 김치 한조각이 올려진 우리집 식탁. 대통령의 식탁도 부럽지 않습니다.
김혜원
지난 추석, 한통에 8천원 가까이 하는 배추 두통을 사다가 담근 명절김치가 어느새 떨어졌습니다. 보통은 장마가 시작되기 전 배추 몇 통을 사다 김치를 담급니다. 장마가 지면 배추가 무르고 맛이 없어지거든요. 그 김치로 여름을 나면 추석이 다가오고 여름김치가 떨어질 무렵 추석김치를 담그게 됩니다.
예년 같았으면 추석 때 김치를 담가 김장 때까지 두고 먹는 것이 보통이었겠지만 올해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추석을 앞두고 배추 값이 너무 올라, 소심하게 달랑 배추 두통을 샀거든요. 그나마도 직접 김치를 담그지 않는 동생네랑 맛 좀 보자는 친구에게 조금씩 나눠주고 보니 며칠 못 가 김치통의 바닥이 보이는 겁니다.
추석 땐 추석이 지나고 나면 배추 값이 떨어질 테니 다시 담가 먹으면 되려니 하고는 큰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웬 걸, 추석이 지나고 나니 8천 원 하던 배추가 만원을 육박하더니 엊그제는 만 오천 원까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고 또 오릅니다.
배추파동이 날 정도로 배추 값이 오르자 대통령께서는 청와대 밥상에 양배추김치를 올리라고 하셨답니다. 하긴 양배추김치도 시원하고 달달한 맛이 여름김치로는 손색이 없습니다. 그래서 혹시나 양배추가 저렴하면 나도 대통령처럼 양배추김치를 담가 먹을까하고 양배추 가격을 기웃거려 보았지요.
그런데 "헐~" 양배추도 한통에 만원입니다. 물론 배추값 보다는 조금 싸지만 그렇다고 전 국민이 부담 없이 먹을 만한 가격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추석 전 8천원하는 배추도 겁나서 달랑 두통밖에 사지 못했는데 만원짜리 양배추에 덥석 손이 가지 않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추석김치를 좀 아껴두는 건데 하는 후회가 들지만 이미 늦은 일. 그러다 문득 김치냉장고 맨 아래 한동안 잊고 지냈던 묵은지가 떠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