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Schafer 회사에서 동료인 빅톨( Victor)과 살짝빅톨은 입사 당시 나의 조장이기도 하다.
조영삼
길은 찾는 자에게 열린다고 했는가. 각고 끝에 실업수당 받은지 3개월만에 '실업대학' 조기졸업을 하고 다른 회사에 신입으로 들어갔다. 쉰 둘이 거의 다 되어서, 근데 말이다. 내가 자동차와 전생에 무슨 있었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이번에도 자동차 관련 업종이다. 나는 한국에 있을 때와 아르헨티나에서 생활할 때는 내 소유의 자동차가 있었지만, 독일에서는 자동차 없이 십 수년을 살아 왔다.
최근에야 아들녀석이 커 가고 또 시장 볼 때 불편한 점이 많아 마눌님의 성화에 독일 면허증도 따고 '라만챠의 동키호테의 애마인 로시난테' 만큼 누더기는 아니지만 중고 자동차를 구입해 나의 적토마로 삼고 있기는 하다.
새 회사에서 하는 일은 가죽으로 자동차 내부의 모든 것을 책임진다. 그린피스에 꽤 오래 동안 적을 두었던 나로서는 께름직 하기는 하지만 일반 야생동물들의 생살을 뜯어낸 생가죽이 아니고 도살장에 지천으로 널려있는 육우의 소가죽임을 스스로의 위안과 변명거리로 삼는다. 그렇다고 내가 죄의식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 소가죽으로 자동차의 핸들을 만들거나, 가죽의자, 가죽천장, 운전자 앞의 계기판도 가죽으로 감싼다. 백 년이 넘은 회사다. SELLNER GROUP 산하의 SC Schäfer라는 회사다. 헝가리에 자회사가 있는데 대부분의 자잘한 제품은 그곳에서 생산하고 내가 일하는 곳에서는 주로 부가가치 있는 제품을 담당한다.
그런데 언감생심 내가 언제 가죽으로 자동차 천정을 도배하고 헨들을 만들어 보았는가. 처음 두어 달은 그야말로 죽지 않을 만큼 고생했다. 손톱 몇 개는 아예 빠져버리고 집에 와서는 끙끙 앓았다. 그러나 마눌님과 똥가리에게는 거의 내색을 하지 않았다. 나의 똥가리는 아직까지는 아빠가 세상에서 가장 힘도 세고 강한 줄 안다. 세상의 모든 천사 같은 아이들이 그러하듯이,
사실 내가 보통 사람들보다 '아구지'힘이 강하기는 한가보다. 코끼리 같은 독일사람들도 거의 대부분 며칠을 못 버티고 단봇짐을 챙겨 달아나 버리는 것을 보면,
이제 거의 1년이 다 되어간다. 다음 달 14일이 딱 1년째다. 검사담당이 내가 만든 제품은 무조건'오케이' 할 정도로 인정도 받고 회사의 보든 사람들에게 '대단한 코리안'이라는 칭호도 얻었지만, 아직 나는 정식 직원이 아니다.
요즘 독일의 회사들은 정식 직원을 거의 채용하지 않는다. 정식 직원은 회사가 어려울 때 해고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은 경제적으로 위기상황의 시기다. 한국도 그러하겠지만 유럽은 더 심하다. 따라서 대부분 인력송출회사를 통해 그때그때 부족한 노동력을 충당한다. 그리고 일이 없으면 인력송출회사 출신들을 우선적으로 해고해 버린다.
나도 인력송출회사 출신이다. 응당 임금도 정식 직원보다 상당히 적다. 인력송출회사의 몫이 임금에서 빠져 나가기 때문이다. 언제 해고 될 지도 알 수 없다. 이른바 독일식 카스트제도의 한복판에 내가 지금 서 있는 것이다. 브라만, 크산드라, 크샤트리아, 그리고 성골, 진골의 골품제도, 나는 인력송출회사 출신의 서자인 것이다.
그런 불안한 여건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인력송출회사와 내가 일을 하고 있는 회사 책임자에게 송출회사의 '노예상태'에서 해방시켜 줄 것과 나를 필요로 한다면 정식 직원으로 채용할 것을 요구했다.
나는 내 능력만큼 대우를 받아야 겠다. 그렇지 않으면 새 일자리를 찾아 보겠다는 으름장(?)을 '겁대가리' 없이 날렸던 것인데, 양쪽 회사의 답변은 지금은 때가 아니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살살 달래는 것 아닌가.
사실 이 회사를 그만 두면 나이 많은 외국인을 써 줄 회사가 또 있을 지 의문이기도 하거니와, 나는 임금이 적더라도 이 회사를 나갈 생각이 없다. 또 다시 신입으로 고생해야 한다는 것도 있지만 나는 지금 제품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 가죽을 이용해서 새로운 시도를 모색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