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재대교 아래 무인도. 낚싯대를 들고 바다로 들어가는 낚시꾼들.
성낙선
9월 20일(월)지난 14일, 여행을 떠난 후 벌써 몇 개의 섬을 건너갔다 왔는지 잘 모른다. 육지에서 가까운 서해안의 섬들은 이제 더 이상 섬이라고 부르기 힘든 실정이다. 육지와 섬 사이에 연륙교가 놓이고, 다시 그 섬과 또 다른 섬 사이에 연도교가 걸쳐 있어서, 굳이 배를 타지 않고도 건너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얼핏 떠오르는 섬 이름만 들어봐도 강화도, 동검도, 황산도, 구봉도, 선재도, 영흥도, 메추리섬, 제부도까지 대략 8개 정도다. 나머지는 잘 기억도 나지 않고, 또 내가 미처 몰라서 가보지 못한 섬들도 있을 법하다. 그 섬들을 일일이 돌아보는데 예상 밖으로 훨씬 더 긴 시간이 걸렸다. 자연히 육지에서 머무는 시간보다, 섬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지고 있다.
섬은 섬인데, 섬이 아니다아무리 작은 섬도 일주를 할라치면, 직선거리의 3배 가까이는 가야 하기 때문에 육지에서 이동할 때와는 차이가 크다. 더군다나 서해안은 방조제를 제외하고는 직선이라고 할 만한 해안선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는 만큼 여행에 속도가 붙지 않는 이유다.
점점 더 많은 섬들이 '섬'으로 남아 있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얼마나 더 많은 섬들이 육지로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섬이 섬으로서의 고유한 가치를 지켜갈 수 있는 방식의 개발이 아니라면, 섬을 육지로 만드는 일에 좀 더 신중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동안 여러 섬을 거쳐 오면서 몇몇 섬사람들에게서 외지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렇게 호의적이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육지와 섬 사이, 섬과 섬 사이에 다리가 높이면서 생기는 생활의 편리성 못지않게, 외지인들의 방문이 잦아지는 데서 생기는 부작용 역시 만만치 않다. 지역 공동체가 붕괴하고, 사람 관계가 지나치게 물질화되는 측면이 있다. 부동산 투기가 극성을 부리면서 지역의 자산이 중앙으로 빠져나갈 가능성마저 있다.
섬과 섬 사이에 바다가 있는 게 아니라, 섬과 섬 사이에 다리가 있다는 말이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일정한 거리가 필요하다. 떨어져 있을 때 서로를 그리워하게 되고, 그러면서 서로를 좀 더 잘 알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섬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다리는 놓였지만, 그래서 좀 더 가까운 거리에 살게 됐지만, 오히려 예전보다도 더 섬을 잘 모르고 사는 게 아닌가 싶다. 섬에 있으면서 섬이 그리워지는 것 역시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