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도둑>겉그림
우리교육
<내 이름은 도둑>(우리교육 펴냄)의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점령한 폴란드 바르샤바. 세상도 삶도 사람도 심지어는 자신의 이름이나 나이도, 가족을 한꺼번에 몽땅 잃은 슬픔조차도 전혀 모르는 순진무구한 아이의 눈을 통해 전쟁의 황폐함과 나치의 잔인함을 들려줌으로써 우리 삶의 정체성과 인간 본성을 묻는 청소년 문고다.
너무나 어린 까닭에 이름과 나이는 물론 그 무엇도 정확하게 아는 것이 없는 주인공인 나에게 누가 이름을 물으면 "거기서도둑"이라고 대답한다.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가죽장화(나치)의 폭격으로 형제들과 부모를 잃은 그 얼마 후부터 살기위해 본능적으로 도둑질을 했고, 그때마다 "거기서도둑!"이란 말을 셀 수 없을 만큼 들어왔기 때문이다.
나는 비슷한 처지의 다른 아이들과 나치의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 더미에서 잠을 자며 날마다,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 훔친다. 그리고 날이 갈수록 나치의 유대인 박해는 잔혹해진다. 바르샤바 내 모든 유대인들은 게토(유대인 강제 거주 지역)에 갇히게 되고, 유대인들은 추위와 굶주림으로 서서히 죽어간다. 그리하여 게토는 시체들로 넘쳐난다.
와중에 나는 우연히 알게 된 유대인 제니나의 가족에게 가족 간의 유대감을 느끼게 된다. 또한 전쟁으로 고아가 된 아이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는 코르착 박사를 만나기도 한다. 그리하여 제니나의 가족과 코르착 박사의 고아들을 위해 매일 밤마다 생명을 담보로 위험천만한 게토의 장벽을 넘어 먹을 것들을 계속 훔친다.
-파리가 윙윙 노래를 불렀다. 날은 따뜻하고 시체는 싸늘했다. 파리는 윙윙대며 아이들의 눈동자와 부스럼을 핥았다. 가져갈 옷도 신발도 없었기에 신문지 아래 시체를 건드리는 사람도 없었다. 단지 누더기뿐이었다. 매일 시체 실은 마차가 제시아 거리 입구의 공동묘지로 향했다. 도둑질을 한 사람들이 목에 표지판을 걸고 시든 과일처럼 가로등 기둥에 매달렸다.-책속에서도둑질이 끊이지 않자 나치는 짭새까지 풀어 도둑을 잡고자 혈안이 되고 유대인들을 더욱 옥죈다. 폐허에서 함께 지내는 소년 올렉이 '나는 도둑질을 했습니다'라고 쓰인 팻말을 건 채 가로등에 대롱대롱 매달려 죽임을 당하기도 하지만, 도둑이라 불리는 아이에게는 이런 죽음조차 실감나지 않는다.
저자 '제리 스피넬리'는 |
저자 '제리 스피넬리'는 미국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작가란다. 또한 이 시대 가장 재능 있는 이야기꾼 중 한사람으로 평가 받고 있으며 어린이와 청소년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즐겨 읽는 성장소설을 쓰는 작가로도 유명하단다. 이처럼 입담 좋은 작가의 작품이라 그럴까. <내 이름은 도둑>은 단숨에 읽힌다. 쉽게 잊지 못할 작품이 될 것 같다.
저자는 대표작 <하늘을 달리는 아이>(다른 출판사. 2007.8)로는 뉴베리상과 글로브 혼북상을 동시에 수상, 또 다른 대표작인 <스타걸>로는 뉴베리 아너상을 수상했다. 외에 <링어, 목을 비트는 아이> <문제아> <스타걸> <돌격대장 쿠간> <블루 카드>가 국내 소개되었는데, 한 출판사에 의하면 한 작가의 작품 거의 전부를, 한 작가의 두작품 이상이 이처럼 소개되는 경우는 좀 드문 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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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의 잔인함에 대해 새삼 말할 필요가 있으랴. 주인공인 미샤, 도둑이라 불리는 나는 지나치다, 뻔뻔하다 싶을 정도로 순진하다. 혹자들이 아이에게 멍청이, 얼빠진 녀석이라 부를 정도라 책을 읽기 시작하고 얼마동안은 슬며시 웃곤 했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내 안에 슬픔이 고이고 있었다. 쉽게 털어낼 수 없는 그런. 결국은 소름이 돋았다.
작가는 왜 하필 이처럼 순진하기 이를 데 없는 어린 아이를 통해 전쟁의 황폐함과 나치의 잔인함을, 잔혹한 박해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들(유대인들)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까? 왜 하필 도둑질을 하고 살아가는 아이를 통해서일까? 세상과 사람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처럼 순진한 영혼의 주인공을 통해 우리의 참모습을 찾으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재스퍼 존스가 문제다> |크레이그 실비|양철북|2010.08.13 |값:14,000원사건이 터졌다 하면 코리건 사람들은 즉각 재스퍼 존스의 이름부터 들먹인다. 자기 아이가 잘못한 게 분명해도 일단 이렇게 묻고 본다. "재스퍼 존스랑 같이 있었던 거니?" 이 질문을 받으면 아이들은 거짓 대답의 유혹을 떨치기 어렵다.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재스퍼 존스를 대면 자신들의 죄는 크게 사해지기 때문이다. 즉 우리의 착한 아이들은 악마의 꾐에 넘어가 잠시 길을 잃었던 것뿐이다. 사건이 그렇게 종결되면서 남는 교훈은 간단명료하다. 재스퍼 존스와 놀지 마라. -<재스퍼 존스가 문제다>중에서<재스퍼 존스가 문제다>(우리교육 펴냄)의 배경은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5년 어느 무더운 여름날, 오스트레일리아 코리건이라는 탄광 마을이다.
어느 날 밤, 모범생인데다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로 동급생들에게 왕따 당하는 나 찰리에게 재스퍼 존스가 찾아와 도움을 청한다. 그는 나를 데리고 문제의 숲 속으로 간다. 자신만의 은밀한 아지트가 있는 숲속으로. 그런데 거기에는 동급생이자 주지사의 딸인 로라 워셔트가 목매달아 죽어 있다. 잠옷차림에 상처투성이의 몸으로.
어쨌거나 시체가 발견되면 재스퍼 존스가 살해범으로 몰릴 판이다. 자신도 범인으로 몰릴 수 있는 상황, 찰리는 재스퍼 존스를 도와 시체를 유기하게 된다. 이렇게 공부밖에 모르던 찰리는 엄청난 살인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이 일로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진실여부와 상관없이 코리건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지어 낸 재스퍼 존스에 대한 편견도 사라진다.
둘은 살인범을 찾아 한 발 한 발 걸어간다. 로라 워셔트를 죽인 범인은? 재스퍼 존스의 추측처럼 정말 미치광이 노인 잭 라이어넬이 범인? 잭 라이어넬로부터 범인이라는 자백을 받아내려던 소년들은 결코 용서할 수 없는 불편하기 이를 데 없는 진실과 맞닥뜨리고야 마는데….
소설 속 주인공들과 함께 범인을 쫓다가 마주친 뜻밖의 반전에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당황스러웠다. 읽던 책을 던져버리고 펑펑 울고 싶을 정도로 불편하기 이를 데 없는 진실이었기 때문이다. 소설 속 이야기만이 아닌 우리 사회에서도 종종 일어나 우리들을 분노하게 하는 성폭행. 그것도 명예로 감쪽같이 포장한.
"이 책은 '왕따'들에게 세상의 부조리에 대면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소설이면서, 낯선 것과 어울려 살지 못하는 사람들 혹은 자신을 한 번도 타자화해보지 못한 사람들의 비극도 아울러 드러낸다. 이 소설과 <앵무새 죽이기>의 근본적인 공통점은, 진실과 정의를 밝히려는 평범한 사람들의 용기에 바쳐진 작품이라는 것이다"-소설가 장정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