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 알로에 농장 입구
박도
허씨는 여기 러시아 주민들은 낯선 사람을 보면 즉시 군부대에 신고를 잘 한다고 하면서 곧장 단지동맹비로 가지 않고 우리를 자기 농장으로 데려갔다. 남양 알로에 농장은 엄청 넓었는데, 마침 까마귀 떼가 온 들판을 가득 메웠다.
난생 처음 보는 신기한 장면을 카메라에 담는 새 단지동맹유지 비 언저리를 서성거리던 러시아인들이 사라지자 우리 일행은 길 건너 단지동맹유지 비로 갔다. 불쑥 눈물이 핑 돌았다.
당당한 독립국으로 대한민국 여권을 가지고 와 내 조상 유적지를 찾는데도 이렇게도 복잡하고 마음을 조이면서 참배해야 하는데, 일백년 전 나라를 잃고 몰래 이 땅에 와 살았던 우리 조상들의 고초가 어떠하였을까?
나는 단지동맹유지 비 앞에서 깊이 고개 숙였다. 화강암 앞면에는 동판을 붙여 녹색바탕에 다음의 비문을 새겨두고 있었다.
단지동맹유지1909년 2월 7일 안중근 의사를 비롯한 결사동지 김기용, 백규삼, 황병길, 조응순, 강순기, 강창두, 정원주, 박봉석, 유치홍, 김백춘, 김천화 등 12인은 이곳 크라스키노(연추하리) 마을에서 조국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위하여 단지동맹하다. 이들은 태극기를 펼쳐 놓고 각기 왼손 무명지를 잘라 생동하는 선혈로 대한독립이라 쓰고 대한국 만세를 삼창하다. 광복회와 고려학술문화재단은 2001년 10월 18일 러시아 정부의 협조를 얻어 이 비를 세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