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훈 감독
인디스토리
친근한 인상과 더불어 지적인 기운을 풍기는 박동훈 감독.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한 여러 국내영화제와 모스크바국제영화제에 다녀왔음에도 데뷔작의 개봉을 마주한 그는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와 같이 보였다.
- 아무래도 영화제에서 호평도 받고 했으니 인터뷰도 자주 했겠다. 요즘 심정은 어떤가. "무슨. 최근 조금 한 것이 전부다. 영화제 때나 관객과의 대화는 좀 했는데."
- <소녀X소녀>를 감독하지 않았나? 필모그래피 보고 같은 감독인가 의심하기도 했다. "아, 그건 극장 개봉도 염두에 두지 않고 의뢰를 받아서 정말 긴박한 일정으로 만든 작품이다. 그렇게 개봉도 하고 케이블에서도 화제가 되고 할지는 몰랐다. 그래도 아무래도 장편이니까 배운 점도 적지 않다. 그래도 <계몽영화>가 실질적 장편 데뷔작이다.(웃음)"
- 식상한 질문이지만 그래도 물어봐야 예의인 것 같다. <계몽영화>의 출발이 궁금하다."어머니와 친척 분을 뒷좌석에 태워 산소를 가던 길이었다. 영화상에서도 비슷한 대사가 나오는데, '여기가 연신내 연천고개잖아, 옛날에 피난하면서 비행장 뒤로 숨기도 하고.' 그런 얘기들을 하시는 거다. 전쟁 때 얘기인데 일종의 후일담처럼 환담 나누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게 흥미로웠다. 거기에 연애하는 두 남녀가 그런 방식으로 얘기를 나누고 또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면 어떨까 하는 쪽으로 뻗어나간 거다. 연애하는 사람 둘이 만나서 마치 남자들이 술 마시고 군대 얘기하듯이 그런 식으로 풀어내면 특이한 정서가 만들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거기서 출발했다."
그렇게 우연히 발견되고 또 발전한 아이디어는 우선 단편 <전쟁영화>의 모티브가 되어줬다. <전쟁영화> 역시 세 번째 만남에서 청혼을 하는 정학송과 이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박유정의 모습을 22분에 담아낸 단편영화다. 이 단편은 <계몽영화>의 모태가 되어줬고, 또 전반부에 편집이나 촬영, 세트만 달리한 채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
그러니까 <전쟁영화>와 겹치는 1961년 연애 장면은 '대사와 언어의 장면화'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일상적인 동시에 다층적이고 정치적이며, 또 캐릭터 묘사에 있어서도 섬세하다. 전쟁시 참혹했던 장면들을 마치 어제 본 영화처럼 얘기하는 두 사람은 이미 '전쟁'과 '이데올로기'와 아무 상관이 없는 상류 계급이다. 마음이 좋지 않을 때 그들이 듣는 노래는 직전 데이트에서 함께 본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주제곡이나 카라얀 전집 정도다. 영화 속 대사를 보자.
"그 지휘자 분 대동아 전쟁 때 나치 입당, 이런 뒷얘기들은 많지만요, 곡 해석력만큼은 탁월하다고 하더라고요.""네, 저도 그 기사 본 적 있습니다. 근데 어디 그런 시절에 자기 마음대로 산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우리나라 사람들도 너무 쉽게 친일, 친일 그러는데 속사정 모르고 막말하면 안 되는 거죠. 좀 다르게 생각하면 우리 학교 다닐 때 훌륭하신 일본인 선생님 얼마나 많았습니까. 신문물! 저 가끔 취하면 그때 배운 경기중학교가 부르고 그래요!""어 맞아요, 우리 오라버니도 그러시는데. 4분의 2박자.""하하. 근데 이런 노래, 우리 애들한테 들으면 믿을지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