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근 논설위원
이승환
김 전 대통령이 일면식도 없었던 김 위원에게 자신의 생애를 정리하는 일을 맡긴 것은 평소 경향신문에 실린 김 위원의 칼럼을 눈여겨 보고 그의 생각과 글을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김 위원이 김 전 대통령을 일방적으로 칭송하는 글을 썼던 것은 아니다. 퇴임 후에도 사회적 발언을 마다하지 않았던 김 전 대통령에게 '이제 그만 역사 속에 묻히라'고 아픈 소리도 했다. 그럼에도 김 전 대통령은 자신의 일기장에 '김택근 사장은 글을 잘 쓴다'고 적었을 만큼 그의 솜씨를 인정했다.
그리고 자서전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누구보다 만족스러워 했다. 김 전 대통령 스스로가 40권이 넘는 책을 직접 썼고, 보좌관들의 글을 사정없이 첨삭해 '빨간펜'이라고 불릴 정도였지만, 김 위원이 쓴 자서전에는 토를 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만족스러워했던 자서전을 왜 꼭 사후에 출간하라고 당부했을까?
"자서전에서 김 전 대통령은 처음으로 자신이 서자 출생임을 밝혔습니다. 그만큼 모든 것을 솔직하게 털어놨고, 그래서 걱정스러웠던 부분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민감한 내용이 많았습니다. 그분의 삶에 워낙 많은 사건과 인물들이 엉켜 있었으니까요. 또 그분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비난 여론도 염두했던 것 같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자신을 비난하고 욕하는 사람들을 그 미움이 지워진 다른 세상에서 다시 만나고 싶다는 얘기도 했는데, 생전에 그런 사람들과의 시비를 피하고 싶었던 것이겠죠." 자서전을 쓰는 동안, 김 위원은 김 전 대통령의 눈물을 보았다. 2007년 1권 집필을 막 끝냈을 때였다. 칼럼 등을 통해 김 전 대통령이 현실 정치에 대해 침묵하기를 주문했던 김 위원에게 김 전 대통령은 속내를 털어 놓았다.
"민주주의가 후퇴하는데, 나라도 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고 뒷전에 앉아있으라고 하는데,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시기에 나라도 나서지 않으면 누가 나서겠나? 내가 늙고 힘이 없어도, 나서야 되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민주주의를 위해서 죽어간 의사 열사들이 땅속에서 얼마나 통곡을 하겠는가? 나는 죽을 때까지 민주주의를 위해서 싸우다 죽을 것이다."김 전 대통령은 이 얘기를 하면서 울었다고 한다. 그때 김 위원은 '민주주의는 이 양반의 삶 자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김 전 대통령의 현실 발언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는 등 격동기를 거치는 동안 더욱 거침없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