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와 함께 온 '한 여름 밤의 꿈'

극단 여행자 뮤지컬 멜버른 공연, 성황리에 마쳐

등록 2010.09.13 18:20수정 2010.09.13 18:39
0
원고료로 응원
한여름밤의 꿈의 한 장면  웃음을 자아낸 두두리 들의 표정이 재미있다.
한여름밤의 꿈의 한 장면 웃음을 자아낸 두두리 들의 표정이 재미있다.나경운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이 초연된 것은 16세기 말이었다. 그리고 21세기, 그의 명작 속 요정들이 순 한국식 '도깨비'로 변신을 해 호주 멜번의 아트센터 무대에 올랐다. '극단 여행자'가 멜번의 봄이 오는 길목에서 '한여름 밤의 꿈'을 미리 꾸게 만들어 준 것이다.

지난 8일부터 11일까지 매일 오후 8시부터 열린 이 공연은 나흘 내내 아트센터 플레이 하우스 900객석을 꽉 채우는 쾌거를 올리며 계속되었다. 한국어로 공연을 하고, 전광판에 영어 자막이 나갔으나, 대사 사이사이에 호주만의 영어 표현을 넣으면서 거의 대부분 호주인으로 가득 찬 객석에서 끝없이 웃음을 끌어냈다.


극중 '가비'가 '방울 꽃 향기의 마법에 걸려 반하게 된 아주미'에게 무엇을 먹고 싶냐고 애교를 부리자 '아주미'는 영어로 "Fish and Chips ! Vegemate!"라고 대답을 하는 대목에서는 관객들이 배를 잡고 웃음을 터뜨렸다.

극단 여행자 '한 여름 밤의 꿈' 한 장면  한여름 밤의 꿈 마지막 장면
극단 여행자 '한 여름 밤의 꿈' 한 장면 한여름 밤의 꿈 마지막 장면나경운
생선과 감자 튀김(Fish and Chips) 은 호주를 대표하는 먹을거리이며 베지마이트(Vegemate)는 식물 추출액으로 만든 호주 특유의 잼이다. 어떤 이는 베지마이트에서 된장, 청국장의 향을 맡는다고 할 정도로, 호주만의 독특한 음식인 것이다. 이렇게 재치있게 현장감을 살리며 진행된 극단 여행자의 '한 여름밤의 꿈' 공연은 빅토리아 주 최고의 일간지 <The Age>에서도 대서 특필을 하는 등 최고의 찬사를 받은 공연이 되었다.

"물론 처음부터 세계를 향하는 작품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던 것은 아닙니다. 외국 작품이지만 우리에게 잘 맞는 작품으로, 하지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수준있는 작품으로 한 번 잘 만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시작을 했지요. 그런데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국내 반응이 뜨거웠고, 그렇다면 한 번 세계의 사람들도 즐길 수 있게 해 보자는 용기를 가질 수 있었던 거죠."

극단 여행자의 양정웅 대표는 그렇게 '끝나지 않는 세계 여행'을 하고 있는 '한 여름 밤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정말이지 세계 각국 안 가본 곳을 손에 꼽는 것이 더 빠를만큼 장구를 메고, 작은 병풍을 짊어지고 이 나라 저 나라의 무대를 돌고 있는 중이다.

한여름 밤의 꿈을 우리 정서에 맞게 각색하여 공연을 시작한 것은 지난 2002년.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한국 '옛날 이야기'와 결합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연극적 상상력에서 기인했다. 사랑의 꽃 향기로 인해 혼란이 일어나는 것 등은 원작에 충실했지만, 단순히 대사를 주고 받는 연극이 아니라 한국 장단이 두드러지는 음악과 무용을 더했다. 거기에 희극적 요소가 곁들여진 '몸 동작'이 그것을 보는 관객이 어느 나라 사람이건 간에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


극단 여행자 대표이면서 연출을 맡고 있는 양정웅씨는 서울예전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희곡작가로, 배우로 그리고 연출가로 무한대의 활동을 펼치며 1989년 프로 데뷔 후 지금까지 24년 동안 한 길을 걸어오고 있다.

스페인의 Lasenkan 극단에 들어가 세계 풍물로 눈을 뜨는 시간을 갖기도 했던 양 대표는 서울로 돌아와 1997 년 '극단 여행자'를 설립했다. 자신의 극단을 만든 뒤엔 젊은 배우들을 대거 등용하며 순수 창작극을 하는 것과 더불어 로미오와 줄리엣 등 대중에게도 잘 알려진 대작들을 한국식 눈으로 해석 해 재창작 하는 작업을 시작했었다.


양정웅 '극단 여행자' 대표 '호응해준 관객들에게 감사할 뿐' 이라는 연출가 양정웅 대표
양정웅 '극단 여행자' 대표'호응해준 관객들에게 감사할 뿐' 이라는 연출가 양정웅 대표 나경운
"고정관념을 깨야 창작이 나온다는 말을 쉽게 하지만 사실 그게 또 그렇게 쉬운 건 아니죠. 예를 들어 한여름 밤의 꿈에서는 적은 수의 배우들이 연기를 하고, 때로는 무대 한켠에 앉아 장구와 북을 들고 연주만 하는 파트를 담당하기도 해요. 이 연극이 처음 무대에 올려졌을 때만 해도 그런 것이 익숙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의외로 관객들 반응이 괜찮다는 걸 느꼈습니다."

이번에도 '도깨비' 역을 맡은 배우들과 '아주미'가 객석에 앉아 있다가 일어서며 대사를 이어가고, 또 야광 팔찌, 목걸이로 '도깨비 불'을 표현 한 후 주머니에 가득한 그 '도깨비 불'을 관객들에게 던져 나눠주는 장면이 연출되는 등, 관객이 함께 호흡하고 소통하는 효과를 충분히 살렸다.

객석의 한 관객은 부지불식간에 잡혀 올라가 뒤로 돌아서서 뭔가 얘기를 듣다가, 그동안 객석을 향해 도깨비 불 목걸이에 온갖 장난질을 한 배우가 그걸 그 관객에게 걸어주는 등, 배우와 관객이 서서히 '함께' 즐기는 것을 유도해서 또 한번의 웃음을 만들어낸다.

그런 시도들이 '언어'와 '문화'가 다른 곳에서도 충분히 관객을 즐기게 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갖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이라는, 말하자면 '연극의 보편성'을 이미 갖고 객석에 앉은 관객에게 그 내용을 충분히 전달하며 가장 한국적인 요소를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에 훨씬 매력있는 작품으로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번 공연을 기획하며 이미 그 뚜껑을 열기 전에 큰 기대를 했었다는 아트센터의 프로그램 매니저 Rob Gebert 씨는 "말을 알아듣지 못해도 충분히 느끼고 웃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면서 물론 영어자막이 전광판에 뜨지만, 연극을 보러 오는 관객이 한여름 밤의 꿈 내용을 대충 알고 오는데다 한국의 가락과 음악, 그리고 배우들의 다양한 표정, 곳곳에 잘 배치되는 소도구, 그리고 춤이 관객들이 충분히 잘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줬다고 말했다.

Rob Gebert 아트센터 프로그램 매니저  "분명 공연이 성공할 것이라 예상했다. 앞으로도 한국의 좋은 작품들을 이곳에 올릴 수 있길 기대한다"
Rob Gebert 아트센터 프로그램 매니저 "분명 공연이 성공할 것이라 예상했다. 앞으로도 한국의 좋은 작품들을 이곳에 올릴 수 있길 기대한다" 나경운
2003년 토쿄 공연을 시작으로 에콰도르, 콜롬비아, 폴랜드, 영국, 쿠바, 엘살바도르, 독일, 인디아, 프랑스, 홍콩, 대만 등 셀 수 없이 많은 나라의 최고 극장에 올려진 극단 여행자의 한 여름 밤의 꿈. 부채춤, 장고춤, 사물놀이가 '한국과 동양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준비를 한 호주인들에게 감동을 주었다면, 이번 공연은 그런 이해가 없는 사람들의 벽까지 확실하게 무너뜨리면서 한국적인 매력을 알게 해 준 멋진 기획이었다.

"언어와 문화의 벽을 확실히 무너뜨린 작품", "환상적이고, 힘차고 무엇보다 재미있는 작품" 등 엄청나게 큰 찬사로 유수 외국 신문들에 리뷰가 실리기도 했던 이번 작품은 또 셰익스피어 연극 페스티벌에서 그랑프리 상을 받았을 정도이다.

아트센터 옆 야라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아직 겨울 끝자락이 멈칫거리는 것 같은 호주 멜번의 명소 아트센터에 울려퍼진 '대한민국, 극단 여행자의 한여름밤의 꿈'은 호주인들에게는 커다란 감동을, 현지 한인들에게는 어깨 으쓱거려지는 자랑거리를 남겼다.

양정웅 대표를 비롯해 두두리 역의 정우근, 김상보, 항 역의 김진곤, 벽 역의 이은정, 루 역의 장현석, 익 역의 정수연, 가비 역의 김준호, 돗 역의 김지연, 아주미 역의 정아영씨 등은, 그렇게 감동을 '한여름밤의 꿈'처럼 선물로 주고 다음 공연인 '햄릿'을 위해 아델레이드를 거쳐 호주를 떠난다. 그들은 떠나지만, 많은 이들은 봄에 미리 꾼 '한여름 밤의 꿈'을 계속 기억하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우리말, 우리 가락으로 만든 뮤지컬, 호주에서도 충분히 감동으로 다가섰다.


덧붙이는 글 우리말, 우리 가락으로 만든 뮤지컬, 호주에서도 충분히 감동으로 다가섰다.
#한여름밤의 꿈 #극단 여행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호주 이민 45 년차. 세상에 대한 희망을 끝까지 놓지 않고 그런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기사를 찾아 쓰고 싶은 사람. 2021 세계 한인의 날 대통령 표창 수상.


AD

AD

AD

인기기사

  1. 1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2. 2 쌍방울 김성태에 직접 물은 재판장 "진술 모순" 쌍방울 김성태에 직접 물은 재판장  "진술 모순"
  3. 3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4. 4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5. 5 한강 작가를 두고 일어나는 얼굴 화끈거리는 소동 한강 작가를 두고 일어나는 얼굴 화끈거리는 소동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