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전대 후보등록 마감일인 8일 최재성, 백원우 의원과 이인영 전 의원이 10일 이전까지 486 정치인들을 대표할 단일 후보를 선출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남소연
불과 1년 전 민주당의 '중도 실용론'을 철저히 망각했나불과 1년 사이에 벌어진 이런 정치적 역정에 비춰볼 때, 이들의 진보는 미안하지만 '앙꼬(팥고물) 없는 찐빵'이다. 내용 없는 진보다. 진정성 없는 진보다. 일관성 없는 진보다. 적시성 없는 진보다. 정치적 유행병을 쫓아가는 부정적 '포퓰리즘'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공정한 사회'론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정치적 구호 혹은 정치적 프레임과 내면의 진실 혹은 영혼 간의 불일치를 시민 모두는 알고 있다. 그래서 한나라당에서조차도 "길로틴을 만든 사람, 길로틴에서 처형됐다"고 비아냥거린다.(9.8.자 <한겨레> 곽병찬 칼럼 참고) 시민들은 불과 1년 전 민주당의 '중도 실용론'을 철저히 망각했을까? 그래서 부끄럽다는 말이다.
물론 진보와 보수를 두부 자르듯 정확히 잘라내기가 어려운 것처럼 진보 개념 또한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정치 지도자가 진보를 자신의 정치적 지표로 내세우기 위해선 진보에 대한 정확한 개념 규정과 진보를 둘러싼 정치 환경에 대한 명확한 현실 인식이 종합되어 있어야했다. 예측 능력은 당연한 자질이었다.
대체로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에서 정치적으로 통용되는 '진보'라는 말은 경제적 이슈, 특히 시장이 야기하는 양극화나 주기적인 경기침체로 인한 실업 문제 등 사회적 부작용에 대한 실천적이고도 효과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데 관심을 갖는 일련의 정치적 입장을 의미한다고 정리된다.
클린턴 정부 시절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낸 존 포데스타는 현실 정치적 입장에서 '진보주의'를 '공공성에 기반한 치열한 도덕관과 실천적인 처방을 바탕으로 경제적 특권 집단의 정부 장악을 깨고 민주주의의 뿌리를 회복하는 것, 더 나아가 여성, 환경, 복지 등의 이슈에 대한 광범위한 개혁을 표방하는 포괄적 개념'으로 요약한다. 이 글에서는 이 개념 정도를 현실정치에 있어서 '진보'의 개념으로 채택한다.
이래서 민주당은 정당의 정책적 정체성에 기반을 둔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정책 프로그램을 제시한 적이 없다. 정당 조직 또한 대중 참여를 통해 건설된 적도 없다. 정당의 권력은 철저히 사유화되고, 당권 사냥의 부산물로 전락했다. 정당의 제도화 수준은 지극히 취약하다. 철저한 '중앙 집중형'이고, 절대적 '1인 보스' 중심의 독점 구조다. 제왕적 대통령제, 제왕적 재벌 총수 구조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창조적 전환을 꿈꾸지 않는다, 전환적 창조를 꿈꾸지 않는다.
민주당은 소수자의 열패감에 빠져 안으로 안으로만 문을 걸어 잠근다. 대문을 활짝 열고 밖으로 나아가 시민사회를 설득할 자신감을 상실했다. 민주당의 정책과 과거 통치에 실망했던 사람들을 향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능력이 없다.
정책보다는 선거 구도론이나 선거 전략론을 더 사랑한다.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통합 능력보다는 상대 정당의 분열, 친이와 친박계의 분열, 그리고 비호남 지역에 대한 분할 전략, 경남과 경북의 분할 전략을 통해서만 집권이 가능하다는 패배주의를 더 사랑한다.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유권자, 지역적으로 호남에 기반한 유권자, 국민참여당·민주노동당·진보신당 등 소수파 정당들을 민주당의 볼모로 삼기를 즐겨한다. 다수파라는 이름만으로 소수파 정당들의 복종을 강요한다. 진보적인 유권자, 호남에 기반한 유권자들은 어차피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다고 '건방' 떨며 이들의 정치적 의지와 가치를 대변하기보다는 보수적 유권자층을 분할하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이라는 중위수투표 이론의 '저급한 해석'판이나 떠들고 있다.
그리하여 대권만 쟁취하면 된다는, 다른 건 엉망이 되더라도 선거에서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선거 만능주의'가 민주당의 최고 이념이다. 정책보다는 선거의 승리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한다. 모든 계층의 지지를 추구한다고 거짓말해놓고 결국 어느 계층이나 어느 한 집단의 이해와 요구도 반영하지 못한다.
(이 부분은 지면과 시간의 제약상 제게 큰 각성을 준 명저 최장집,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후마니타스, 2002)와 최장집·박상훈·박찬표, <어떤 민주주의인가>(후마니타스, 2007) 곳곳에서 제기된 한국 정당정치 비판 관련 내용과 필자의 견해를 혼용해 집약적으로 서술했음을 밝힌다. 원문을 정확하게 찾아 인용하지 못한 점, 원저자들께 널리 양해를 구하며, 혹시 세 분의 고견을 왜곡한 부분이 있을 경우 이에 대한 모든 책임은 필자에게 있음을 밝힌다.)
좀 더 솔직하게 민주당은 "'어느 사회집단을 주로 대변하며, 상충하는 이익을 어떻게 조정하며, 공공의 자원을 어떻게 배분하느냐'라는 정치의 핵심 질문"(신진욱, 8.19.자 경향신문 칼럼 참고)에 답할 의무가 있다.
이렇듯 선거가 유일한 목적이다보니, 권리보다는 반사적 이익을 더 사랑하다보니, 민주당은 집권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야당 내부의 권력을 좇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소수파 진보 정당에서 10여 년 전부터 얘기했고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정치적 아젠다로 채택하여 우리 사회의 보편적 의제로 설정하고 동의를 받아낸 '친환경 무상급식' 같은 제안은 결코 만들어낼 능력이 못 된다. 오로지 진보라는 추상적 가치와 네이밍뿐이다.
그래서 이번 전당대회는 정책 전당대회가 되기보다는, 다음 대선과 총선을 예비하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는 정치적 실험장이 되기보다는 오로지 당권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鄭·丁·孫' 그들만의 리그에 지나지 않는다. 정치적 진화보다는 정치적 퇴행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뼈만 남은 앙상한 민주주의"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