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충단 비순종이 황태자시절에 쓴 '장충단'이다.
박금옥
남산의 동쪽 기슭에 을미사변을 중심으로 한 순국충절들의 제사를 위해서 광무 4년(1900)에 장충단을 조성했다.
이곳에 모셔진 순국영현들은 을미사변, 즉 명성황후가 일본 불량배들에게 시해를 당하자 이를 저지코자 나섰다가 죽임을 당한 당시 궁내대신 이경식, 부령 홍계훈, 진남영령관 염도회, 무남영령관 이경호, 통영대관 김홍제, 장위대관 이학승, 진난영대관 이종구 등과 함께 전사한 병졸들이다.
이후 광무 5년에 임오군란·갑신정변 때 희생된 반일·배일(排日)의 인물들도 배향토록 하여, 매년 봄·가을에 제사를 지내 왔다. 고종 황제가 이 단을 '장충'이라고 명명하자 순종이 장충단이라 쓰고 민영환이 비문을 지어 세웠다. 아직 남아있는 비의 정면에는 순종이 황태자였을 때 쓴 '奬忠壇'이라는 세 글자가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민영환이 지은 143자의 비문이 새겨져 있다.
총면적이 54만 5925m²인 이 곳 일대를 1919년 6월부터 일제의 경성부가 관리하며 장충단공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후 일제는 이곳에 벚꽃 수천그루를 심고 광장, 연못, 어린이놀이터, 산책로, 공중변소, 교량 등을 설치했다. 또 상해사변 때 결사대로 전사한 육탄3용사의 동상도 세웠다.
이어 1929년부터 장충단공원 동편에 이등박문의 보리사인 박문사를 세우기 시작했다. 공원의 동부의 소나무가 우거진 지역 4만1882평의 땅을 나누어 총경비 27만 5000원을 들여 1931년 완공했다. 이 박문사의 본전과 서원은 원래 경복궁내 선원전 및 부속건물을 옮겨 건축한 것이며, 입구의 문은 당시에 이미 경성중학교 자리가 되어 있던 경희궁 흥화문을 옮겨 세운 것이다.
지금은 사명당 동상, 파리장서기념비, 이준 열사 동상, 이한응 열사 동상, 외솔최현배기념탑 등이 세워져 있지만 순국충절들에게 제례를 드리던 성역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다. 장충단 비만 외롭게 서있을 뿐 그저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만 남아 있다.
[사직단] 공원 조성 구실로 부지 분할... 보존 노력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