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놀러온 이웃 할머니, 엿새 머무른 여관 주인 할머니, 그 옆 식당 아주머니
이명주
구룡포 마을에서 이제 막 떠날 채비를 마치고 편지를 씁니다. 호미곶을 보고 돌아나오다 웬일인지 마음이 동해 이곳에 머문 지 오늘(8일)로 엿새째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잠시 산책을 했는데 태풍 '말로'가 지나가고 부쩍 바람이 차가워졌습니다. 벌써 가을을 타는지 요며칠 마음이 영 싱숭생숭합니다.
그새 이곳 풍경, 사람들과 정이 듬뿍 들었습니다. 특히 여관 주인 할머니와 그 옆 식당 이모와는 방금 전 헤어지면서 몇 번이고 포옹을 하고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습니다. 든 자리보다 난 자리가 크다는데, 떠나기 전 어김없이 고봉밥 한가득 퍼서 속을 채워준 할머니가 내일은 홀로 앉아 쓸쓸해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계단에 새겨진 일본인 이름...식민지 시대 애증의 역사 간직한 구룡포구룡포는 100여 년 전 일본인들이 이주해오기 전까지 그저 이름없는 작은 어촌이었습니다. 그랬던 것이 1883년 일본 내에서 조선통어를 합법화하고 1908년 한일어업협정이 체결되면서 '코리아드림'에 부푼 일본 어민들이 앞다퉈 진출해 집성촌을 형성하고 경쟁적으로 어업활동을 벌였다 합니다.
당시 하룻밤 잡은 물고기를 배에 실으면 배가 가라앉을 만큼 어자원이 풍부했다는 구룡포에서 일본 어민들은 나날이 번창했고, 마을은 그들을 주축으로 '일본화' 되어갔습니다. 그 가운데 원래의 구룡포 주민들은 가난을 면치 못해 일본인 어선에서 잡부로 일하거나 고향을 등지는 사례가 다반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