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고나서 식당에서 물 달라하기도 미안했다"

[서평] 하루도 쉴 수 없고, 부당한 대우 받는 노동자들의 삶 담은 <4천원 인생>

등록 2010.09.06 11:14수정 2010.09.06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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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천원 인생> 책 표지 ⓒ 한겨레출판사

<4천원 인생> 책 표지 ⓒ 한겨레출판사

이 책은 <한겨레 21>의 사회부 기자 네 명이 직접 노동현장에 '위장취업'해서 한 달 동안 노동하고, 취재한 내용을 엮은 것이다. 그것은 통계나 정책과 같은 추상적인 수준에서 노동문제를 다루던 기존의 관행에서 벗어나,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노동문제를 이해하려는 시도였다.

 

이들의 취재는 '노동 OTL'이란 이름으로 기사화됐고, 마침내 한 권의 책으로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일단은 시도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이고, 결과물 또한 높이 평가할 만하다. <4천원 인생>(임지선 외 3명 저, 한겨레출판사 펴냄)에는 기자들이 경험한 노동의 신산함과 그들이 만난 노동자들의 생이 온전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권일이 추천사에 쓴 표현처럼 감히 '우리 시대의 리얼리즘'이라 할만하다.

 

임지선 기자는 서울의 갈비집과 인천의 감자탕집에서 '식당 아줌마'로 일한 경험을 풀어놓는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대목은 감자탕집의 직원들이 3개월간 하루도 쉬지 못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들은 대체인력이 없다는 이유로 3개월간 하루도 못 쉬고 매일 12시간씩 일했다. 그래서 그녀가 사장에게 하루의 휴식을 허락받았을 때, 같이 일하는 언니는 "하루는 푹 자도 되니 정말 좋겠다"며 부러워했다는 것이다. 이 대목을 읽으며 나는 누군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1970년 노동자들과 다를바 없는 현 시대의 노동환경

 

1970년 11월 13일, 서울 평화시장 앞 길거리에서 한 노동자가 자신의 몸에 불을 질렀다.  그의 이름은 전태일. 그가 자신의 몸을 불사르며 외쳤던 구호 중 하나는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였다.

 

삼동친목회에서 평화시장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그들은 한 달에 이틀을 쉬었다고 한다. 전반적인 노동조건을 따지면 물론 평화시장의 노동자들이 더 열악했겠지만, 휴일만 놓고 보면 인천의 감자탕집 노동자들이 1970년 평화시장 노동자들보다도 더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다. 이 대목을 보면서 새삼스럽게 '정말로 세상은 더 좋아지고 있는 것일까'하는 의문을 떠올렸다.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대체 무엇이 얼마나 달라진 것일까?

 

임 기자는 그 외에도 '여성'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들에게 당연한 것처럼 요구되는 남자 손님들의 추근거림과 사장의 횡포 등등. 그러나 그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식당 아줌마'들은 식당일이 끝나고 가정으로 돌아가서도 끊임없이 '노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2008 여성가족패널조사'에 따르면 기존 취업 여성의 경우, 평일에 184분 가사노동을 한다. 그야말로 여성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이중의 고통이다.

 

그녀는 취재 후기에서 "나를 왜 이렇게 불편하게 하냐"는 독자 피드백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아무 생각 없이 식당에 가서 아줌마를 막 시킬 수 있었는데 기사를 읽고 나니 물조차 갖다달라고 하기 미안하다"고 하는 독자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사실, 나도 읽으면서 약간은 불편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진실은 불편한 것이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이기고 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때에야 비로소 문제를 냉정하게 인식할 수 있고,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대안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런 종류의 불편함은 환영한다. 그리고 나 역시 웬만하면 앞으로는 식당아줌마에게 이것저것 시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주 사소한 것이지만, 나의 그런 사소한 행동이 누군가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정치'에 눈 돌린 고단한 노동자들...이들을 비난만 할 수는 없다

 

안수찬 기자는 서울 강북의 대형마트에서 '노동'한 경험을 털어놓는다. 일했던 코너가 달랐기 때문에 다른 점이 많았지만, 그래도 읽으며 A 대형마트에서 일했던 경험이 자꾸 떠올랐다. 안수찬 기자는 '직원들은 매대에 기대는 것도 쭈그려 앉는 것도 금지된다'고 했는데, 원칙적으론 그렇지만 사실 개인적으론 담당이나 선임 안 볼 때 다 했던 거라 '내가 좀 편하게 일했구나'란 생각이 약간 들었다.

 

안 기자가 지적하는 것처럼, 마트 노동자는 대부분 마트에 직접 고용되는 것이 아니라 외부 업체에 고용된다. 이들에게는 몇 년을 일하든 승진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월급이 오르는 일도 없다.

 

내가 A 대형마트에서 일했을 때를 생각해봐도, 확실히 그랬다. 나는 어쩌다 보니 마트에 직접 고용이 됐지만, 내가 일했던 완구·문구 코너에서 담당과 선임을 제외하면 직영은 두 명뿐이었다. 음반·서적, 애완동물 사료, 수족관, 문구 외부업체, 완구 외부업체 등 대다수가 외부업체 직원이었다. 이들은 연장근무를 해도 추가수당이 나오지 않고, 식사도 자기 돈으로 사먹어야 했고, 몇 년을 일해도 담당이나 선임이 될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 등 분명히 차별이 있었다.

 

나는 어차피 아르바이트로 들어간 거라 별로 그런 부분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지 않았었는데, <4천원 인생>을 읽으면서 '거의 6개월이나 일하면서도 그런 생각도 안 해봤다니 참 무디구나'하는 자괴감을 약간 느꼈다.

 

마지막으로 인상 깊었던 내용은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었다. 잠깐 그 내용을 옮겨본다.

 

정치가 보호막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그들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언제 무슨 선거가 있든지 무슨 상관이에요. 어차피 일하느라 투표도 못한단 말이에요." 지방선거 이야기를 꺼냈더니 영희가 잘라 말했다. 정치는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가장 강력한 통로라고 나는 말해주지 못했다. 어렵게 노동조합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다. "다 좋은데 민주노총은 꺼림칙하다고 다들 말하던데요." 영철이 말했다. 당장의 월급을 주는 사장에게 그들은 더 강하게 흔들렸다. 정부, 정당, 언론, 노조가 힘이 되어준 기억이 그들에겐 없었다. 차라리 장차 뒤를 봐줄지도 모를 대학원 졸업생과 친해지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4천원 인생>, 133p 중에서

 

정치가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 준 적이 없기에 그들은 정치에 무관심하다. 이것을 그들의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과연 정당한가?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과 같은 진보정당들도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이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한 데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반성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치권이 이제까지 잘못해왔다고 해서,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나 냉소가 해답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그렇기에, 이들의 목소리를 조직하고 이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해 줄 정치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책이 거기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불법 사람'이라는 이유로 많은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외국인 노동자

 

전종휘 기자는 경기 마석의 가구공장에서 외국인 노동자들과 한 달을 보냈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영혼을 갉아먹는 것은 첫째, 단속이다. 필리핀 출신의 마리아는 단속이 두려워 15년 동안 한 번도 남양주시를 벗어나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방글라데시 출신의 피우롱 역시 단속이 두려워 마음껏 쇼핑하러 가지도 못한다.

 

전 기자의 옆방에 살던 몽골 친구는 미등록 신분의 부인을 항상 방 안에 가둔 채, 방문을 바깥에서 잠그고 출근했다. 단속이 나와도 쉽게 방문을 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이 미등록 이주 노동자이기 때문에, '불법 사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미등록 노동자이고 이들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작지만은 않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법대로'만을 외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이들과 함께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두 번째로 이들의 영혼을 갉아먹는 것은 차별이다. 이들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특히 '불법 사람'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감수해야 한다.

 

특히 한국인 노동자들과 비교하면 더 그렇다. 비슷한 경력의 한국인은 그들보다 최소한 20만~100만 원 이상 본봉이 많다. 야근수당 단가도 본봉에 비례하므로 총액으로 따지면 차이는 훨씬 벌어진다. 같은 일을 14년째 하고 있는 마리아 누나의 본봉이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신참인 나와 똑같은 130만 원이라는 사실은 이해하기 힘들다. 공장일을 시작한 지 1년 된 민성이도 본봉이 140만 원이다.

-<4천원 인생>, 164p 중에서

 

왜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이런 차별을 받아야만 하는 것일까? 이것이야말로 편협한 민족주의의 발로가 아닐까?

 

마지막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전체적인 맥락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는 노래방 이야기였다. 공장 회식 때, 고깃집에서 맛있게 고기를 먹고 고깃집 한쪽에 마련된 노래방 시설에서 화기애애하게 노래를 불렀는데 외국인 동료들은 본국 노래가 없으니 즐길 수가 없었다. 그런데 더 문제는 그 후에 노래방까지 간 것이었다. 자기들만 즐기는 것 같은 느낌에 불편함을 느낀 전 기자는 그 자리에서 팝송을 불렀고, 필리핀 출신의 마리아가 함께 그 노래를 불렀다. 이 또한 어떻게 생각하면 아주 사소한 것이지만, 이런 사소한 것부터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한 게 아닐까. 그런 배려가 공존의 시작일 것이다. 차별과 배제가 아닌, 배려와 공존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우리가 이들을 잊지않고 끊임없이 부를 때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것

 

임인택 기자는 경기 안산의 가전제품 공장에서 일한 경험을 회고한다. '인간'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 '라인'의 속도. 그 단순한 무한 반복 작업 속에서 인간은 기계에 불과하다. 일의 보람이나 자존심 따위는 느낄 수 없다.

 

1936년에 나온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가 절로 생각났다. 대체 뭐가 다른 걸까? 이윤 논리 앞에서 인간성이 무시당하는 현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러나 그보다도 더한 고통은 '옆의 동료를 미워하게 만드는 시스템'에 있다. 호흡이 맞지 않아서, 작업을 방해받아서, 나보다 쉬운 일을 하면서 같은 시급을 받아서 동료를 미워하게 된다. 월터 윙크의 표현을 빌리자면 가히 '사탄의 체제'라 할만하다.

 

물론 노동자들도 자신의 문제에 대해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그들도 자신들의 처지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다.

 

'사회적 멸시'와 '부당'을 내면화할지언정 모르진 않는다. 안산·시흥 비정규직 노동자 가운데 64.9%가 "하는 일에 비해 임금이 너무 적다", 39.8%가 "노동시간이 너무 길어 힘들다", 39.1%가 "복지후생이 빈약해 불만이다", 15.4%가 "관리·감독자가 인격적 대우를 하지 않는다"며 노동조건상 애로사항을 토로했다.('위 실태조사')

-<4천원 인생>, 247p 중에서

 

그러나 그들은 임인택 기자의 표현을 빌리면 '섬 같은 이들'이다. 철저하게 고립되어 있고, 서로의 고통도 기쁨도 나누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연 변화의 가능성은 존재할까? 쉽지 않은 문제다. 그리하여 그는 쉽게 대안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박노해의 <오늘은 다르게>에 그런 말이 있다. 자신의 희망 찾기는 사실은 희망 버리기라고. 어떤 상황에서도 가짜 희망과 타협하지 않아야 비로소 진짜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마찬가지로, 쉽게 대안을 이야기하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이다. 이 복잡한 시스템의 문제를 간단명료하게 해결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기만일지 모른다. 안수찬 기자도 그런 말을 한다.

 

"대안을 보고 싶다는 독자도 있었는데, 굳이 변명하자면, 교육·빈곤 대물림·일자리·실업복지·주택·육아·의료·노조 등을 한 두름에 꿰뚫을 수 있는 간단하고 강력한 대안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식으로 문제를 단순화해 풀어나가는 건 오히려 무책임하다는 생각이다."

 

매우 공감한다. '노동OTL'이, 그리고 <4천원 인생>이 목표했던 것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것. 모두가 이 문제에 대해 '뭔가 잘못됐다'는 인식을 공유하는 것이었으리라. 그리고 우리는 냉정한 분석 위에서 대안의 모색을 시작해야 한다. 한 번에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는 시도는 어리석거나 무모하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노동문제에 대한 더 많은 담론이 필요하다.

 

네 기자의 '노동OTL' 기사 뒤에는 네 명의 기자와 최고라·유재영 독자편집위원과의 좌담이 실려있다. 그 가운데 기억에 남는 내용. 최고라 독자편집위원이 "늘 주변에 있는데 우리 눈에서 자꾸 사라지는 사람들을 존재할 수 있도록 다시 불러내줘서 고마웠다"고 말하자, 임인택 기자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어차피 또 금방 잊혀질 거다"고 말한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우리는 끊임없이 이들을 불러내야 한다. 이들은 '투명인간'이 아니니까. 그리고 그런 끊임없는 호명의 과정 속에서,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2010.09.06 11:14 ⓒ 2010 OhmyNews

4천원 인생 -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우리 시대의 노동일기

안수찬 외 지음,
한겨레출판, 2010


#4천원 인생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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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15기 인턴기자. 2015.4~2018.9 금속노조 활동가. 2019.12~2024.3 한겨레출판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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