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육군 김일병(1969)>의 포스터
신필림
입대 이전에 사람들은 군을 한시적 폐쇄 공간, 그러나 견딜 만한 해프닝이 이루어지는 장소쯤으로 여긴다. '신'의 가계를 갖지 않다면 피할 수 없는 의무라는 사실과 선배들이 들려주는 병영생활의 에피소드 등, 낙관적으로 그걸 그리고 싶어 하는 당사자들의 심리가 어우러져 만드는 이미지다.
내가 최초로 군대를 인식한 것은 영화 <육군 김일병>(1969)을 통해서였다. 중학교 1학년 때였는데, 우리는 그 달의 '문화교실'로 대구 반월당에 있었던 대한극장에서 그 영화를 단체 관람했던 것이다. 신영균이 주연했던 이 영화는 논산 훈련소 훈련병들의 훈련 과정과 자대 배치 이후의 병영생활을 통해 사병들의 희로애락을 묘사한 작품이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이 영화는 신상옥 감독이 만들었고 1969년 아시아 영화제 편집상을 받은 작품이다. 주인공 신영균 외에도 가수 김상국의 감칠맛 나는 코믹 연기가 떠오른다. 주인공의 애인 역으로 나온 남정임(아, 그는 오래 전부터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과 최은희의 모습도 어렴풋하다.
<육군 김일병>, 혹은 병영 홍보영화는 혈기방장하고 겁 많고 선량한 젊은이들이 군대에 적응하는 과정을 아주 유쾌하게 그리고 있는데 까까머리 중학생 관객들도 유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논산훈련소의 훈련 과정에서 주인공이 목에 걸고 있던 숟가락(우리가 흔히 스푼이라고 부르는 그 볼 넓은 미국식 숟가락)을 빼앗고 빼앗기는 장면에서 우리는 폭소를 터뜨리며 즐거워했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서 군대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억지스런 공간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그리고 동시에 그런 상황이 터무니없는 방식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모순을 익힘으로써 군대에 대한 두려움을 넘을 수 있었지 않나 싶다. <육군 김일병>은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군대가, 병영생활이 할 만한 것이라는 걸 아주 자연스럽게 국민에게 알린 홍보영화였던 셈이다.
육군 김일병 / 봉봉 사중창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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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봉 사중창단이 부른 주제가 <육군 김일병>도 영화의 흥행과 더불어 꽤 오래 전파를 탔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노래도 영화만큼이나 유쾌하고 우스꽝스런 리듬에다 자연스럽게 '김일병'을 미화하는 형식을 통해 군과 병영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는 데 이바지하는 것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김추자가 부른 대중가요를 기반으로 만든 영화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도 비슷한 목적으로 군, 특히 베트남 파병을 다룬 영화였다.
그러나 영화로 군대를 간접 체험했던 까까머리 중학생들은 그로부터 7, 8년 후에 입영해서야 그것이 단지 잘 꾸며진 이미지였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논산이든 101보, 103보든 병영 문을 들어서면서 장정들은 '사회'에서의 자유분방을 버리고 군 특유의 논리에 강제 편입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군도 하나의 단위사회지만 굳이 '군대'와 '사회'를 구분해서 말하는 병사들의 화법은 군과 사회 사이의 화해할 수 없는 간극을 웅변으로 증명하는 것이었다. 적어도 거기에서는 '견딜 수 없는 일'도, '불가능한 일'도 존재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었다. 다행인 점은 그 몰(沒)논리에 적응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전역'이 다가온다는 것이었다.
제대 병사들이 근무 지역을 향해서는 '오줌도 안 누겠다'고 결기를 세우는 것은 그 시기가 알게 모르게 병사들의 영혼과 육신에 드리웠던 그림자 탓이다. 그나마 세월이 지나면 그들이 그 시절을 애틋한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는 것은 거기서 동료들과 맺었던 인간관계 덕분이며, 과거의 고통을 무화시켜 주는 시간의 힘에 말미암은 것이다.
군대란 그런 곳이다. 피할 수 없어 응하지만, 복무 기간 내내 기다리는 것은 전역뿐인. 그리고 그래서 징병되는 젊은이들에게 복무 기간이란 그것이 단지 며칠에 불과하더라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주제인 것이다. 국가 안위와 관계되는 문제로 부득이한 제도라는 것과 이 제도가 국민 일반의 이해를 다투는 민감한 영역이라는 게 상충되지 않아야 하는 이유다.
널뛰는 복무기간 논의, '청년세대 우롱'이다글쎄, 과문해서 2014년까지 18개월로 단축하려던 군 복무기간 단축계획이 백지화될 만한 정치·군사적 상황의 변화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가 구체적으로 어떤 기구인지는 모르지만 온 국민, 특히 미래 청년세대의 이해와 직접적으로 이어지는 군 복무기간을 사회적 동의와 합의 없이 임의로 변경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작 '신의 아들'로 지칭되는 권력층의 병역 면제 문제가 여전히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인 상황에서 소수의 군 관계자들에 의해서만 '복무기간 단축 백지화'가 논의되고 있는 것에 국민들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대다수 청년들이 '피할 수 없는 의무'로 병역을 받아들이는 상황에서 복무 기간 문제를 고무줄 늘이듯 다루는 것은 무책임한 일일뿐더러 정작 그 의무를 이행해야 할 청년세대를 우롱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