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8일 진행된 자연음악회 모습. 여주대학의 교수합창단의 모습.
황대권
전남 영광 태청산 중턱에 있는 30만평 규모의 편백나무숲에서 매년 이맘때쯤이면 문자 그대로 의미의 <자연음악회>가 열린다. 대부분의 음악공연은 인공 시설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 실내공연의 경우 비바람으로부터 완전히 차단되어 있고 음향시설이 완벽하게 갖추어진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공연자들이 내는 소리와 음향을 관객에게 온전히 들려주기 위해서이다.
야외공연의 경우는 주위의 소음을 이겨내기 위해 마이크와 고성능 스피커를 사용한다. 그러한 공연방식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온갖 자연의 '소음' 속에서 육성으로 하는 음악회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곳 '영광생명평화마을'은 모든 일에 있어서 자연이 주(主)가 되고 사람이 종(從)이 된다.
일을 처리하는 과정도 인간의 의도를 앞세우기보다 되도록 자연의 흐름에 따르려고 한다. 그리고 살림살이도 자연스러움과 단순소박함을 지향한다. 우리가 <자연음악회>를 마련한 것도 이러한 삶의 태도를 음악회에 적용하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에서 시작되었다. 이제 겨우 두 번의 행사를 치렀지만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공연장은 태청산의 거대한 편백나무숲 초입에 있는 작은 공간이다. 차편이 따로 없어 산에서 가장 가까운 남산마을에서 도보로 30분이나 걸어 올라와야 한다. 걸음이 불편한 분들을 위해 따로 봉고차를 대기시켜 놓고 있기는 하다. 승용차를 몰고 올 수도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산속에 따로 주차장이 없다. 그냥 임도 한켠에 세워놓기는 하지만 노폭이 좁아 언제 차를 빼달라고 할지 모른다.
공연장에는 일체의 전기시설이 없다. 조명도 음향장치도 없다. 편백나무를 베어낸 약간 평평한 자리 위에 나무토막 몇 개 늘어놓은 것이 무대시설의 전부다. 아, 하나 있기는 하다. 배경에 '태청산 자연음악회'라는 천으로 만든 걸개가 하나 걸려있기는 하다. 이날은 비가 오는 바람에 무대 위에 방수천을 하나 씌워놓았다. 악기가 젖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번 공연에 모두 11팀을 모셨는데 종이옷을 입고 춤을 추기로 한 분을 빼고 전원이 폭우를 뚫고 험한 산속을 찾아주었다. 관객석은 그냥 땅바닥 그대로이다. 하지만 나뭇잎이 오랜 세월 쌓여 쿠션이 꽤 좋다. 무대조명은 촛불이다. 초 7개를 땅에 묻고 그 위에 페트병을 잘라 씌웠다. 때때로 출연자의 얼굴을 보여주기 위해 플래시를 비춰주곤 한다.
이 정도면 비가 어지간히 와도 공연하는데 무리가 없을 듯했다. 숲이 바람과 비를 어느 정도는 막아줄 것으로 기대했다. 문제는 객석인데 도리가 없었다. 비상사태를 대비하여 얇은 비닐우비를 따로 50여장 마련해 두었다. 공연시간은 일부러 밤을 택하였다. 밤의 숲속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은밀하고도 예민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온갖 벌레소리와 새소리가 노래소리와 어우러질 때공연시각이 가까워지자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이날의 기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하루 종일 퍼붓던 비가 오후 6시를 전후하여 그치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햇빛까지 비춘다. 이런 걸 천우신조라고 하나?
공연이 시작되는 오후 7시는 늦여름 이맘때 정확히 해가 지는 시각이다. 영광생명평화마을의 최대의 자랑거리는 서해바다로 떨어지는 아름다운 일몰인데 이날은 어지러운 장마구름 사이로 해가 지는 바람에 평시보다 훨씬 다이내믹한 일몰을 볼 수 있었다. 이미 참가자들은 산 위에 있는 공연장까지 걸어가면서 바라 본 일몰로 인해 반쯤은 취한 상태였다.
첫출연자인 '광주의 가객' 정용주님이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자작곡 지리산을 비롯하여 몇 곡을 연거푸 풀어놓았다. 오랜 세월 라이브 카페에서 단련된 무대매너로 단숨에 공연장의 분위기를 휘어잡는다.
다음 순서는 대단한 노래실력을 갖춘 짚시풍의 인디언 수니님이다. 그녀가 무대에 들어섰을 땐 이미 완벽한 어둠이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그녀는 섬세하고 현란한 가창력을 가진 만큼 성량이 그리 크지 않은 가수이다. 그러나 밤의 숲속에서는 귀만 잘 기울이면 아무리 작은 소리도 똑똑히 들린다. 아니나 다를까. 첫곡을 부르는데 목소리가 작아서 잘 들리지가 않는다. 자연히 사람들은 숨소리를 죽이고 온신경을 곤두세운다. 시간이 흐르자 노래소리가 자연의 일부로 느껴지면서 아주 편안하게 들리기 시작한다.
온몸의 감각을 열어 놓고 가만히 있으면 가수의 노래소리만 아니라 온갖 자연의 소리가 함께 들린다. 귀뚜라미, 쑥국새를 비롯해 이름 모를 온갖 벌레소리와 바람에 나뭇잎들이 부딪히는 소리까지 참으로 다양하다. 게다가 아이들의 옹알거리는 소리까지 한몫을 한다. 처음에는 옆에 있는 어린 아이의 칭얼대는 소리가 귀에 거슬렸으나 꾹 참고 듣다보니 희한하게도 녀석의 옹알이가 노래의 후렴구처럼 들리는 것이었다. 조금 있다 보니까 또 다른 꼬마 녀석이 장난인지 아니면 흥이 나서 그러는 건지 분명치 않은 발음으로 가수의 노래를 흉내 내어 부르는데 그것마저 공연의 일부로 들렸다.
선입견을 버리고 현장의 모든 소음과 소리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그 모두가 음악이 되었다. 그야말로 '자연의 음악회'였다. 수니를 이어 여주대학의 교수합창단이 무대에 올랐다. 무려 10명의 인원이 기타 4대와 드럼을 들고 나왔다. 70년대에 대학가에서 유행하던 레퍼토리를 3곡 연속해서 불렀는데 워낙에 잘 알려진 노래들이라 모두들 따라 부르는 바람에 거대한 합창곡이 되고 말았다. 합창은 아무래도 인간이 내는 소리가 압도적이라 자연보다는 사람들끼리 어울려 흥을 돋우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
뒤이어 광주의 최고은님, 창원의 하제운님, 진효근 선생님의 톱연주, 팝송을 기가 막히게 부르는 무상스님, 박양희님의 인도노래와 연주, 광주의 소리패 소리노리, 유영초님의 풀잎피리연주가 연달아 무대에 섰다.
'중글리쉬'로 팝송 부른 무상 스님, "오빠"라 불리다공연이 2시간을 지날 무렵부터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공연이 길어지니까 어서 끝내라고 독촉하는 듯싶었다. 그래도 관객들은 꿈쩍하지 않는다. 오히려 막걸리를 돌려 마시며 더욱 열정적으로 추임새를 던진다. 나름 우산도 쓰고 비옷도 입고했지만 땅바닥에 비닐깔개를 놓고 앉았기 때문에 흘러내린 빗물이 고스란히 아래로 몰려들어 모두들 엉덩이부분이 흥건히 젖어버렸다.
비오는 밤에 숲속에서 듣는 톱연주는 마치 귀곡산장을 연상시킬 정도도 으스스했다. 그러나 음색만은 연주자의 모습을 닮아 따스하고도 감미로웠다. 무대 후반에 가장 큰 환호를 받은 분은 팝송 부르는 포교사 무상스님이었다. 노래도 잘 하고 입담도 대단했다. 자신의 팝송 발음은 '중글리쉬'라며 너스레를 떠시는데 나는 팝송 영어를 한국식으로 그렇게 정확하게 발음하는 가수를 본 일이 없다.
자신이 출가직전 사귀던 애인과 헤어지면서 불렀다는 <뜨거운 안녕>을 애절하게 부르자 여기저기서 "오빠!" 소리가 터져 나왔다. 당연히 앵콜이 청해졌고 스님은 종교의 화합을 위해서라며 "내주를 믿나이다, 할렐루야 아멘"이라는 노래로 관객들을 모두 자빠뜨렸다. 공연이 끝나면 으레 마을광장에서 뒤풀이가 있지만 이날은 비가 내리는 바람에 대부분의 출연자들은 서둘러 떠났고 일부 관객들이 남아 지역의 명주 대마막걸리를 마시며 새벽녘까지 여흥을 즐겼다.
안드레아 보첼리와 '카수' 전진택님의 듀엣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