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동창들한때는 싱싱한 여고생이었던 그녀들이 아줌마로 늙어간다. 사진속의 건강한 모습들도 세월이 흐르며 하나둘씩 사라져갈테지...
이은희
작년 봄, 남편 친구의 결혼식 참석차 제주도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제주도에서 몇 년간 근무했던 남편의 친구가 제주도 여인과 늦은 나이에 혼인을 하기로 했다 하여 당시 입원 중이던 큰아이를 급히 퇴원시키고, 갓 백일을 넘긴 둘째아이까지 함께 무리해서 가족 모두가 제주도행을 결행하였다.
하필 기상상태까지 우리를 도와주지 않아서 몹시 몰아치던 비바람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을 그저 렌터카와 숙소에서 보낼 수밖에 없던 여행이었다.
그러던 중 한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가깝게 지내는 여고동창 중 한 친구가 바로 그날 갑작스레 대장암 수술을 받았다는,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이었다. 매체를 통해 유명인의 암 소식을 접해보았을 뿐 위중한 암에 걸린 주변인의 소식은 처음이었다.
소위 초기·말기라 구분되는 암의 진행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는 채 그저 수술 소식만 전해듣고 찝찝한 전화를 종료하고, 그다지 즐겁지 않았던 제주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여행에서 돌아와 암에 걸린 친구와 전화통화를 통해 "'수술은 잘 끝났다, 이제 항암치료를 시작할 거다" 정도의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평소 워낙 구체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친구가 아니었기에 담담한 목소리만을 듣고는 어떤 상태인지 도무지 짐작이 불가능하였다.
그런데 알고보니 대장암 말기였고, 불행하게도 다른 부위로의 전이도 어느 정도 진행되었다더라 하는 나쁜 소식을 다른 친구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그와 함께, 항암치료를 시작할거라던 친구가 어느날 갑자기 자연요법을 시작한다며 암환자를 위한 건강원에 입소한다는 소식이 함께 전해져 왔다.
예상생존기간 '1년', 의사소견에 병원 떠난 친구암이라는 병에 대해 잘 모르긴 하지만, 말기암 환자의 경우 현대 의학으로 완치가 힘들다는 얘기를 들어왔기 때문에 대체요법이 어느 정도의 해답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친구에게 통화를 하며 기운을 북돋아주곤 했었다.
건강원에 다녀온 이후, 친구는 익힌 음식과 육식을 일체 금하고 생식과 풍욕, 관장요법 등자연요법으로 건강관리를 시작했다. 가끔 여고동창들끼리의 가족여행에서 만날 때마다 친구는 분홍빛 혈색과 맑은 미소로, 도무지 암투병 중인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마치 금기처럼 나누지 않던 본인의 투병생활에 대한 얘기를 나눌 때면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자연요법을 선택한 것에 대해 너무나 만족스러워 했다. 몸이 불편한 탓에 크고 작은 병에 시달리는 나의 큰 아이와 당시 갑상샘암 수술을 마친 내 친정엄마에 대해서도 건강요법을 권하곤 했다.
항암치료를 포기하고 자연요법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친구는 이렇게 말했었다. 항암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을 했는데, 신참내기 레지던트가 치료 전 환자 동의서에 항암치료 후 예상생존기간을 '1년'으로 표기한 것을 환자인 친구가 그만 봤더란다.
그것을 본 순간, 병원이 나에게 도움 줄 수 있는 것이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다른 방법을 찾아보아야 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런 얘기들을 전하면서도 듣는 우리들은 눈물을 꾹꾹 참아가며 들어야 했는데, 정작 본인은 마음의 동요없이 늘 담담하고 평온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투병생활을 시작한 지 1년쯤 되던 무렵, 같이 여행갔던 친구가 갑작스레 통증을 호소하며 새벽녘 서울로 떠났다. 1년에 몇 차례씩 함께 여행을 다니곤 했지만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남아있던 친구와 가족들은 걱정이 되었지만 늘 그렇듯 잘 극복해내리라 믿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안타깝게도 친구는 통증이 조금씩 심해져 자연요법이 불가능하게 되자 결국 항암치료를 받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간간이 극심한 통증 때문에 응급실에 가야했고, 3일 정도의 치료를 위해 입원하였으나 원인모를 통증 때문에 5, 6일씩 병원에 머물기도 하고 2주씩 병원에 머물면서 각종 검사를 받는 등 병원에 머무는 시간이 점차 길어져갔다.
지난 5월, 분당에 사는 친구네에 잠깐 들러 친구의 모습을 보았을 때만 해도 두어번의 항암치료를 잘 견뎌내고 밝은 모습으로 나를 맞아주었다. 그리고 또 지난 7월 서울 다녀오는 길에 병원에 입원해 있는 친구를 잠깐 보러 갔었다. 몇 번의 항암치료와 극심한 통증들을 견뎌내다 보니 그 전의 밝고 건강한 모습은 아무래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웃는 모습으로 우리 가족을 맞아주었다.
같은 해에 결혼해 아이까지 같은 해에 낳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