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부채상환비율 폐지로, '약탈적 대출'이 늘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한 아파트단지 견본주택 모습이다.
선대식
'약탈적 대출(Predatory Lending).'금융기관이 대출자의 소득 등 대출상환능력과 관계없이 과도하게 대출을 해준 뒤, 대출을 갚지 못하면 대출자의 담보를 빼앗는 금융기관의 횡포를 이르는 말이다. 2007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당시, 연체율과 주택압류율이 높아지자 이 용어가 부각됐다.
약탈적 대출이 가져오는 사회경제적 폐해가 극심한 탓에, 미국 정부는 지난 7월 주택담보대출 상품 등에서 발생하는 불공정한 수수료나 약탈적 대출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할 수 있도록 한 금융규제개혁법안을 지난 7월 발효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정부는 29일 소득에 따른 대출을 일정 비율로 제한해 약탈적 대출을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는 총부채상환비율(DTI)을 한시적으로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앞으로는 금융기관이 자율적 판단 하에 대출 규모를 정하게 된다. 바야흐로 약탈적 대출의 시대가 접어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부 "가계 부채 문제 없다", 그러나...정부는 8·29 대책을 통해 서민·중산층 등 실수요자의 주택 거래가 늘어나면서 이들의 주거안정을 이룰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서민·중산층에 대한 대출 확대가 오히려 이들의 주거 안정을 해치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약탈적 대출의 대상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임종룡 기획재정부 1차관은 29일 브리핑에서 "우리나라 주택담보대출의 60~70%를 고소득자가 빌리고 있고, 연체율은 외국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며 "또한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유지할 것이기 때문에 가계부채 문제는 악화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역설적이게도 임 차관이 발언한 내용은 8·29 대책을 통해 향후 가계 부채 문제의 악화를 보여주는 수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우선 총부채상환비율을 40~60%로 제한했던 최근까지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연체율이 외국의 절반 수준이라고 해서 안심할 수 없다는 얘기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7월 말 현재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은 0.53%로, 지난해 5월(0.55%) 이후 14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지난 3월(0.36%) 이후 연체율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앞으로 총부채상환비율 한시적 폐지로 인해, 연체율 상승은 불 보듯 뻔하다.
또한 은행권 주택담보대출도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은행 가계대출 잔액 418조9천억 원 중 주택담보대출은 273조2천억 원으로 65.2%를 차지했다. 관련 통계가 만들어진 2003년 4분기 이후 가장 높다.
주택담보대출의 60~70%를 고소득자가 빌리고 있는 상황도 이번 대책으로 곧 바뀔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총부채상환비율 한시적 폐지의 대상자를 서울 강남·서초·송파구 등의 투기지역을 제외한 수도권의 9억 원 이하 주택을 구입하는 무주택자나 1가구 1주택자로 한정했다.
정창수 국토해양부 1차관은 "수도권 가구의 91%인 무주택자와 1가구 1주택자가 이번 대책의 혜택을 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늘어나는 대출의 대부분은 서민·중산층이 부담하게 된다는 뜻이다.
정부 말대로 빚내면 정상적인 생활 불가능... 서민·중산층만 고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