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지조선>(1911)에 수록된 남산총독관저의 모습. 사진 왼쪽에 보이는 나무는 은행나무로 오른쪽의 느티나무와 함께 지금도 그대로 남아 서울시 보호수(고유번호:서2-7 및 서2-6)로 지정되어 있는데 이곳이 당시의 통감관저터임을 알려주는 중요자료이다.-책속 설명 간추림
이돈수(한국해연구소장)
그런데 여느 사람들의 관심에서는 벗어나고 있지만 이곳만큼이나 주목할 만한 곳이 하나 있다. 대한제국의 멸망을 가져온 이른바 '한일합병조약'의 체결장소가 바로 그곳이다. 을사조약의 현장이 그럭저럭 관심과 보존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과는 달리 정작 '경술국치'의 현장에는 아무런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고 있다. 그러니까 당연히 이곳은 오래전부터 잊혀진 역사의 현장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 부근에는 길거리마다 보이는 그 흔하디흔한 기념표석 같은 것도 하나 세워있지 않다.-책속에서
이른바 '을사보호조약', 즉 '을사늑약'이 체결된 장소는 덕수궁 중명전이다. 중명전은 1897년에 황실도서관으로 건립되었는데, 1904년에 경운궁(현재의 덕수궁)에 불이 나자 고종이 편전으로 사용하면서 대한제국기 파란만장한 역사의 중심이 되었다. 헤이그 특사 파견(1907년)도 이곳에서 했다.
중명전은 일제의 강압적 훼손으로 한때 외국인 클럽으로 사용되다가 민간에게 매각되기도 했으나 27일 현재, 복원을 끝내고 일반인에게 개방되고 있다. 을사늑약의 현장인 수옥현 혹은 중명전의 내력은 이 책 1부 7번째 글의 주제로 저자는 이 건물의 시작부터 을사늑약 당시 상황, 이후 중면전이 겪는 수모 등을 자세하게 들려준다.
그렇다면, 올해로 100주년이 되는 경술국치의 현장인 통감관저는 과연 어디일까?
이러한 통감관저는 1910년 '총독관저'로 다시 전환되었고, 한참 후인 1939년 9월 22일에 경무대 총독관저의 신축과 더불어 그곳으로 옮겨질 때까지 그 기능은 그대로 이어졌다. 그러한 만큼 이곳은 가히 식민통치자들의 본거지요 심장부라 할 만 했다.…(중략)아니나 다를까 실제로 이 부근을 탐방해보니까 소방방재본부에서 서울종합방재센터쪽으로 들어가는 길목의 숲속에는 '다목적 광장'이라고 이름 붙여진 제법 너른 공터가 남아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알고 보니 여기가 바로 예전의 총독관저가 있었던 자리였던 것이다. 물론 이곳을 총독관저가 있었던 자리라고 단정하는 데는 몇 가지 분명한 근거가 있다.-책속에서그러나 현재 이곳은 저자의 탄식처럼 몇 년 전 서울 거리 곳곳에 세웠던 그 흔하디 흔한 표석 하나 세우지 않았기에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조차 전혀 모르며 지나다니는 실정이다. 나 역시 지난 연말 출판기념회 때문에 그 부근을 지났다. 이 책을 먼저 읽었다면 남다른 심정으로 지났을 것이다. 아마도 비장하고 결연한 마음으로.
지금은 저자가 말하는 이곳이 '통감관저 터'였을 것이라 확정지어진 상태지만, 이는 저자와 같은 역사연구가들의 노력 그 결과물로 최근의 일이다. 바로 몇 년 전까지 몇몇 자료에 지금의 서울종합방재센터(즉 예전의 국가안전기획부 남산청사)가 통감관저 터였다는 설명이 있을 만큼 잘못 알려지고 묻히고 잊혀졌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쉽게도 경술국치 100주년이 되는 2010년 8월 29일 현재 이곳은 앞으로 세울 표석을 두고 말이 많다. 서울시가 지난 20일 이곳에 '녹천정 터'였음을 알리는 표석을 세우겠다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덧붙이면, 서울시는 9월 중 자문위를 다시 소집해 문안을 확정한 후 국립국어연구원의 감수를 받아 10월 초에 표석을 설치할 예정이라고.
우리가 그 곳을 왜 주목해야 하는가? 그곳이 철종 때 영의정을 지낸 문신 박영원이 녹천정이라는 정자를 지었었기 때문에? 그 터를 일본에게 빼앗겼기 때문에?
어떤 표석이 바람직할까? 국민 한 사람으로서 의견을 말하자면, 그곳에 내 아이들과 함께 가서 분명하게 알려주고 싶은 사실은, '그곳이 식민통치자들의 본거지요 심장부였다는 것, 조선 식민을 자랑스러워하던 저들이 역대통감과 업적을 자랑하고자 시정기념관으로 전환했었다는 것, '병합기념관'을 세우려던 곳이었다'는 그 사실이다.
저자는 이 글에서 이 건물의 시작과 변천과정을 역사적 근거들을 제시하며 조목조목 들려준다. 사실 솔직히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함께 공감하겠지만, 워낙 비중이 큰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주고 있는지라 책을 읽기가 그리 쉽지 않다. 이는 그만큼 중요한 자료가 많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외에 어떤 이야기들을 다뤘을까?
▲누가 인왕산에 '동아청년단결'이란 바위글씨를 새겼나? ▲왜 하필 매국노의 집터에서 독립선언은 이뤄졌을까? ▲독립관, 결국 매국노 송병준의 담배공장이 되다 ▲을사조약의 현장 수옥헌 혹은 중명전의 내력 ▲누가 자꾸 '원구단'을 '환구단'이라 우기는가? ▲'호미곶', 암만 뵈도 억지스런 땅이름 ▲창덕궁과 남산총독부를 잇는 가교, 관수교 ▲인천 송도는 과연 또 다른 왜색지명일까 ▲과연 유릉 때문에 능동이 생겨났을까? ▲80년 전에도 우량아 선발대회는 있었다. ▲"덕수궁 전하께서 옥돌에 재미를 붙이샤…" 등 모두 23꼭지의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