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병합과 지쿠호오역사의 변혁기 속에서 한일의 민중들이 어떻게 억압받고 수탈당해 왔는지를 한국의 청소년들에게 그림연극으로 보여주고 있다.
김종수
오오노세츠꼬씨는 일본제국이 저질렀던 식민지범죄를 아주 쉽게 아이들에게 설명해 주셨고, 아이들은 그 이야기에 집중하면서 탄식과 한숨 등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이렇게 일본 할머니가 일본 초중등학교를 다니며 일본국가가 저지른 식민지 범죄를 사실적으로 전하셨구나하고 생각하니 할머니의 지난했던 활동들에 대한 경의와 감사의 마음으로 가슴이 뻑뻑해졌다.
한국의 청소년들, 저자에게 묻다김규원(14·아힘나평화학교 2010학번) : "안녕하세요. 오하요 고자이마스! 할머니는 '강제징용을 생각하는 모임의 회장'이신데, 왜 그런 모임을 만드셨는지 그리고 그 모임이 어떤 활동을 해 오셨는지 알고 싶습니다."
오오노세츠꼬 : "활동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강제연행을 생각하는 모임이 출범한 건 26년이고, 또 덕향추모비 요시쿠마탄광 사고로 돌아가신 분들을 추도하는 추모식을 한 지는 29년이 됩니다. 이렇게 30년 가까운 긴 세월동안 계속해 왔는데 물론 일본에는 여러 가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소위 보수적인 사람들이 많고, 또 강제연행은 없었다라고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이 지역에서 살면서 또 그 비석을 조사하면서 유골이 실제로 있었고, 그렇게 유골이 있는 납골당이라고 하면서도 아무도 돌보지 않고 방치한 상태였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 것을 계속 봐왔기 때문에 진실을 규명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몸으로 뼈저리게 느껴 왔습니다.
그래서 유골은 신원을 알면 고국으로 돌려 보내주는 것이 제일이고, 그렇지만 신원을 모르는 경우는 여기 함께 모셔서 공양을 해 나가자는 생각을 가지고 29년간 덕향추모비 공양식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재일한국인들과의 유대도 강화되었고, 사람교류회도 해마다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 여러분들이 평화기행을 하는 것처럼 매년 꼭 한번은 탄광터를 찾아 필드워크를 했습니다. 그것이 거창한 것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지속적으로 진행해 왔다는 것이 의미 있지 않을까요.
20여년 간 계속 똑같은 사람들이 있었던 것은 물론 아니죠. 젊은 사람들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었거나 병으로 돌아가신 분도 있지만, 어쨌든 한국과 일본 그리고 동아시아의 전쟁을 없애고 평화와 우호를 만들어 나가자는 활동을 20여년간 지속해 왔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사람들이 바뀌어 가면서 이어져 오고 있다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처럼 어린 학생들이 이렇게 이야기를 들으러 일부러 찾아와 주시고... 여러분들이 사명감 혹은 목적을 만들어서 돌아가주면 좋겠습니다. 그런 일념으로 일본에서도 이 카미시바이를 만들고 활동해 왔습니다. 활동 목적은 지금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어 가는 것' 그리고 새 세대들에게 '뭔가를 안겨주고 싶어서', '말로 백번 하는 것보다 그림이 보여주는 것' 이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