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의 상황을 사관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仁祖 48卷, 25年(丁亥 順治 4年) 8月 1日(己巳) ○朔己巳/七月石鐵等到濟州。史臣曰:昔漢淮南王長謀叛廢, 徙蜀道死, 文帝猶且終身悔之。 今石鐵等雖於國法當坐, 而藐爾幼穉, 有何所知, 投之大海孤島之中毒霧炎瘴之地, 若一朝遘疾, 不保其生, 則其不有累於聖人止慈之德乎 且使死者有知, 則昭顯之靈, 亦豈不抱痛於冥冥之中哉
인조25년(1647)8월1일 7월말 이석철 등이 제주에 도착했다. 사관은 논한다. 옛날 회남왕(淮南王) 장(長)이 모반하다가 폐위되어 촉(蜀) 땅으로 귀양 가는 도중에 죽자 문제(文帝)는 종신토록 후회하였다. 지금 석철 등이 국법에 따라 마땅히 연좌되어야 하나 조그마한 어린아이가 무엇을 알겠는가? 그를 큰 바다 외로운 섬 가운데 버려두었다가 만약 하루 아침에 병에 걸려 죽기라도 한다면 성인의 자애로운 덕에 누가 되지 않겠는가? 그리고 소현 세자의 영혼이 지하에서 원통함을 품지 않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