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영
비마이너
"그것을 긍정이다 부정이다 이야기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어떤 고민, 세상과 자신에 대한 고민을 던지게 하는 중요한 동기는 장애가 맞죠. 저는 대부분을 거기서 출발하며 그런 질문들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어요. 저의 생각 체계를 만드는 일은 중요하고 그게 없다면 다 달라질 것이지만, 장애가 좋다 나쁘다 문제로 가면 그건 이야기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다. 어떠한 몸도 '긍정'의 상태로 고정될 수 없을 것이다. 긍정임과 동시에 부정이기도 한, 긍정과 부정의 공존. 긍정도 부정도 아닌 상태로서 장애, 비장애의 '몸'들은 쇠락의 운명을 따라갈 뿐이다. '몸'은 내가 살아온 날들의 반영이며, '나'의 의식이 작용하는 공간이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을 억압하는 몸의 근원을 추적해 들어간다.
"스스로 사회가 만들어낸 봉사 등 담론의 대상이었다가 장애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받아들이면서 정치적 주체로 인식할 수 있게 된 한편 아쉬움도 있었어요. 투쟁하는 장애인은 정치적으로 올발라야 한다는 압박…. 페미니즘, 소수자 문제 등에 대해서도 올바른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고 생각했었죠. 내 입장이나 정체성을 당당히 드러내기 위해 노력해왔으나, 한편으로는 그런 정치적인 주체에 갇히는 느낌을 받았어요. 분명히 나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이지만 전부는 아닌, 그것이 표현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고민했었죠. 그중의 하나가 성적인, 섹슈얼한 문제였기도 했고요." 걷고자 하는 '욕망'은 그의 '몸'을 반영하고 있다. 그는 "몸의 고통과 욕망을 은폐하는 것"을 넘어 '욕망'을 드러냄으로써 겹겹이 가려져 있는 자신의 몸을 하나씩 벗어 보인다. 오랫동안 제 몸에 귀를 기울인 저자는 모든 고통과 욕망이 제거된 자리로서의 '몸'이 아니라 고통스럽고, 사랑받고, 상처받고, 분노하고, 욕망하는 그 모든 것들의 집합소로서 자신의 '몸'을 기꺼이 내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