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가구 체험단 식단
참여연대
매일 줄어드는 돈을 보면서, 삶도 왜소해졌습니다. 다른 '욕망'은 끼어들 틈이 없었습니다. 한 달을 마무리 하면서 가계부를 정리해보니, 가장 많이 지출을 한 품목이 식료품비더군요. 가장 많이 먹었던 음식은 달걀이었습니다. 식재료 중에서 가장 싸고 활용도가 높았기 때문입니다. 둘이서 한 달간 60개를 먹어치웠습니다. 매일 하나씩은 먹은 셈이지요. 단칸방에서는 늘 달걀 비린내가 났습니다. 그밖에도 각종 통조림을 섭렵했습니다. 유기농이나 친환경 따위 마크가 붙어 있는 식재료는 왜 그렇게 고깝게 보이던지요. 과일 한 번 장바구니에 올리는 일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출퇴근했던 저는 5000원짜리 백반 집 한 번 들어가는 일에 큰 결심을 해야 했습니다. 최저생계비가 정하고 있는 식비는 후하게 쳐줘야 2100원 밖에 되지 않으니까요. 동료들하고 편하게 밥 먹는 것도 쉽지 않아, 점심에는 컵라면과 김밥을 주로 사먹었습니다. 그렇게 적어도 굶어 죽지는 않았습니다. '싸구려 음식'을 먹는 사람 앞에서 대놓고 "굶지 않으니 다행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정책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빈곤세'를 쉽게 풀면 가난하기 때문에 지출해야 하는 돈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겁니다. 지난 한 달간 빈곤세를 톡톡히 물었습니다. 마을버스도 다니지 않는 열악한 교통편, 생활편의시설이 전무한 마을 내 구멍가게의 물가가 비싼 건 어쩌면 당연했습니다. 무엇보다 원치 않는 지출을 유도하는 주거환경은 빈곤세의 주원인이었습니다.
체험 막바지로 치달을수록 주거 문제는 위협적이었습니다. 최저생계비가 정한 2인 가구 주거비(14만8100원)보다 무려 6만원이나 비싼 월세 20만 원짜리 방에서 저는 자주 뒤척였습니다. 열대야가 지속되던 7월 한 달간, '난방비를 걱정해야 하는 겨울보다 그래도 여름이 낫지 않을까'라던 생각을 고쳐 먹었습니다. 더워서 잠 못 이루는 방에서 룸메이트는 전기요금을 걱정하더군요.
10년 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현장'에서 무력하기만 해재개발에 묶여 있는 마을에는 도시가스조차 들어오지 않습니다. 겨울이면 기름 한 드럼에 20만 원이 훌쩍 넘는 난방비 탓에 제가 만난 이웃들은 벌써부터 근심 걱정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재개발을 바랄 수도 없는 게 현실입니다. 전세 600만원에서 많으면 3000만 원 짜리 집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는 새로 지은 집에 들어갈 돈이 없으니까요. 여름이라 처음에는 미처 몰랐는데, 제가 살던 방에는 석유 보일러조차 없었습니다. 매일 찬물로 샤워하며, 감기 기운을 달고 다녔습니다. 그나마 수돗물도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래된 집의 녹슨 배관은 '녹물'을 쏟아냈습니다. 물을 끓여 먹기로 한 애초의 계획을 포기하고, 생수를 사 먹었습니다.
아랫집 아주머니의 집에서는 찬송가와 기도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아랫집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마을의 많은 사람들이 신앙에 자신의 삶을 위로받고 있었습니다. 지난 7월 한 달간 서울 성북구 장수마을에서 지내면서 저는 그것이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에게라도 의지하지 않는다면 삶을 지탱해 나갈 힘이 없을테니까요. 내세의 삶의 아닌, 속세의 '천국'을 위해 사람들은 무릎을 꿇었습니다. 사회안전망(제도) 대신 사람들은 신에게 기댔습니다. 저 역시 수많은 '아무개'씨들이 처해 있는 삶을 한 달간 살아 내면서, 오랜만에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래도 이들에게 속세가 '지옥'은 아니기를 진심으로 바랐습니다.
체험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푹신한 제 방의 침대에 누워 저는 몸살을 앓았습니다. 제가 마주했던 가난의 풍경 앞에서 자주 분하고 속이 상했던 걸 몸이 알아 챈 탓이겠지요. 가난을 체념하고 인내하며 정작 제 나름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투박한 저의 분노를 쉽게 내색할 수 없었으니, 몸이 앓았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올해로 도입된 지 10년 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현장'에서 무력하기만 했습니다. 제도는 만들어져 있으나 현장에는 와 닿지 않음을 저는 수없이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곳에서 인간의 존엄에 대해 혼자서 자주 묻곤 했습니다.
아끼고 아꼈지만 저는 결국 6만 원의 적자를 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체험단 모두 가계부에 마이너스를 그렸습니다. 먹는 것 외 모든 지출은 모험이었고, 사치였습니다. 컵과 수저, 스타킹과 양말 따위까지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담아 최저생계비를 정한다는 '전물량 방식(마켓 바스켓)'은 "가난한 너희의 삶은 우리가 이렇게 정할 테니 이대로만 살아라"라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한 달은 그렇게 더디게 지났고 제 '쇼'는 끝났습니다. "사람들이 우리의 '쇼'로 인해서 최저생계비가 얼마인지라도 알면 다행이다"라던 한 체험단 친구의 말대로 저희 5가구 11명 체험단의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
위원님들의 결정이 인간의 존엄 반해 무례하지 않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