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폰도 문제가 많습니다. 제조사가 고쳐 놓은 인터페이스에 통신사가 손 댄 소프트웨어는 극악한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내려 받은 소프트웨어의 호환성 문제에 시달리며 인터넷까지 검색하여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그나마 쓸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스마트폰을 활용하기에도 바쁜 사용자들이 스마트폰 자체를 관리하고 있어야 하는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결코 원본을 뛰어 넘을 수 없는 모자란 디자인, 불편한 인터페이스, 해결되지 않는 버그들, 신 제품에만 신경 쓰는 제조사로부터 곧 버림 받을 위험에 사용자가 알아서 관리해야 하는 부담까지, 기기 자체로 보면 국산 스마트폰을 사야 할 이유를 찾기 힘듭니다.
그래도 그 이유를 찾으라면 두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가격입니다. 안드로이드폰이 아이폰을 넘어서는 점유율을 보이는 이유는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입니다. 애플이 독점 공급하는 아이폰과 달리 안드로이드폰은 수많은 업체들이 생산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가격 경쟁이 일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외국에서는 약정만 하면 안드로이드폰을 거의 공짜로 구입할 수 있습니다. 국산 스마트폰도 외국에서는 아주 싼 값에 팔립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아이폰 가격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때문에 국산 스마트폰을 써야 할 유일한 이유만 남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애국심입니다.
애국심 게임
스마트폰 전쟁에서 우리 기업들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밀어주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들이 국내에서의 성공을 기반으로 전세계에 진출함으로써 외화를 벌어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반폰 전쟁에서 그랬던 것처럼 모토로라, 노키아를 제치고 마침내 애플까지 쓰러뜨려 전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석권하는 날을 보고 싶습니다.
기왕이면 부품까지 100퍼센트 국산화하고, 소프트웨어까지 우리나라 개발자들 것으로 채울 수 있다면 그 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비록 성능이 떨어지고 사용하는데 조금 불편하고 비싸더라도 국산 스마트폰을 써 주는 나 하나의 애국이 결국 우리나라를 부강하게 만들 것이란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지금은 국산 스마트폰을 사 쓰는 게 옳은 일입니다. 안 그래도 이런 분위기가 형성되어 국산이 대세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입니다. 이런 정신으로 수 십 년 간 우리 기업들을 밀어 주었는데 아직도 멀었다고 합니다. 세계적인 기업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우리들의 희생을 요구합니다. 오십 년 가까운 세월 동안 비싸게 제품을 사 준 이유는 우리도 언젠가는 그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언제쯤 외국 소비자만큼 그들에게 대우를 받을 수 있을까요? 앞으로 십 년만 더 기다리면 될까요? 아니면 오십 년을 더 희생해야 하나요? 과연 우리가 죽기 전에 그런 날이 올 수 있을까요?
우리의 애국심은 배신 당했습니다. 끝없는 희생과 인내는 그들을 법 위에 군림하는 괴물로 만드는 결과만 낳았을 뿐입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놀랍게도 그 답을 게임 이론가들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가장 적절한 해결책을 알기 위해서는 게임이론가들 사이에 있었던 한 사건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애국심을 위한 첫 번째 규칙
세상의 모든 존재는 이기적입니다. 오로지 자신의 이익에만 관심이 있으며 필요하다면 상대를 이용하고 기회가 생기면 가차없이 배신을 합니다. 게임 이론가들은 이런 조건 속에서 최선의 생존 전략은 어떤 것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전세계 이론가들이 각각 자신만의 전략을 준비하여 게임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규칙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각자 임의의 상대와 만나면 협력할 것인지 상대를 배신할 것인지 결정한다.
둘 다 배신하면 둘 다 낮은 점수를 얻는다.
둘 다 협력하면 둘 다 높은 점수를 얻는다.
한 쪽이 협력했지만 다른 쪽이 배신하면 협력한 쪽은 점수를 얻지 못하고 배신한 쪽은 최대 점수를 얻는다.
내가 협력하면 높은 점수를 얻든지 점수를 얻지 못합니다. 내가 배신한다면 최대 점수를 얻든지 낮은 점수를 얻습니다. 그 평균값을 내보면 어떤 경우에도 상대를 배신하는 것이 더 이익이 됩니다. 소위 이 죄수의 딜레마를 반복해서 시행한 게임의 첫번째 우승자는 팃포탯(Tit For Tat)이라는 전략이었습니다.
그 전략의 첫 번째 규칙은 먼저 협력해주고 상대가 협력적으로 나오는 한 먼저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전략이 성공적이었던 이유는 협력적인 상대를 어렵지 않게 찾아 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95%의 배신 전략을 쓰는 상대에게 이용당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찾아 낸 5%의 협력적인 상대와 계속 교류를 함으로써 최종 점수를 높일 수 있었습니다. 배신만 선택하는 존재들은 서로 낮은 점수 밖에 얻지 못했는데 가끔 협력적인 존재에게서 높은 점수를 얻어 내었지만 그합이 결코 틱포탯 전략의 점수를 넘어설 수 없었습니다. 세상은 애국심을 가진 마음씨 좋은 자가 일등을 하게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애국심을 위한 두 번째 규칙
그러나 협력 전략을 택하면 협력적인 상대를 찾기 전에는 배신 전략이 취한 상대에게 늘 당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팃포탯의 두 번째 규칙은 만약 상대가 배신한다면 즉각적인 보복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팃포탯과 비슷한 협력적 규칙들 중에는 상대가 두 번 이상 배신할 때까지 기다려 준다거나 과거의 협력이 배신 비율보다 높은 동안에는 협력한다는 것들이 있었지만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배신하는 상대가 이들의 복잡한 행동을 예측할 수 없어 오해를 했기 때문입니다. 팃포탯은 배신에는 즉각적인 보복을 가하는 가장 단순한 전략을 택했고 이 단순성 때문에 배신을 택한 상대는 팃포탯의 행동을 쉽게 예측할 수 있어 다음부터는 협력적으로 나오게 만들었습니다.
기업이 스스로 인내심 있게 기다리는 너그러운 전략이나 과거의 공과를 따지는 행위로는 기업이 스스로 국내 소비자를 정상적으로 대우하게 만들 수 없습니다. 그들의 행태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즉각적인 보복을 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애국심을 위한 세 번째 규칙
상대의 배신을 두 번 이상 기다려주는 너그러운 전략이 실패한 또 하나의 이유는 인내심의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상대와의 협력을 완전히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배신을 택했던 전략이 그들의 보복을 받은 후에 협력하기로 결정하더라도 너그러운 전략은 더 이상 그들과 협력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그들 사이에는 영원한 배신과 보복만이 메아리 쳤습니다. 팃포탯이 이 위험을 극복하고 최후의 승리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즉각적인 보복을 한 후에 그들을 용서하는 것을 세 번째 규칙으로 삼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팃포탯은 선의를 배신한 상대에게 보복한 후 다시 만났을 때 이전의 배신을 문제삼지 않고 다시 협력을 시도했습니다. 배신했던 상대는 팃포탯이 배신을 응징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되었고 협력에는 협력으로 대응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에 그 후에는 계속해서 협력적으로 나왔습니다. 팃포탯은 또한 보복의 강도를 배신의 강도보다는 적게 함으로써 한동안 배신과 보복이 계속되더라도 언젠가는 끝없는 보복이 멈출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었습니다.
언제까지 보복을 할 것인가?
팃포탯은 그 후 수많은 게임을 통해 가장 우수한 생존 전략임이 증명되었습니다. 먼저 협력하라. 배신에는 즉각적으로 보복 하라. 배신자들을 용서하라. 오랜 연구 끝에 이 규칙은 지능이 없는 미생물들도 선택하고 있는 생존 전략임이 밝혀 졌습니다.
우리들의 애국심은 반복적으로 배신하는 국내 기업들을 끝없이 용서하는 너그러운 전략이었습니다. 기업들은 우리의 행동 패턴에 익숙해져 마음 놓고 배신을 하면서도 전혀 걱정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나쁜 사마리아인이 되지 않으려면 국내 기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에 동의하더라도 그 기간이 너무나 길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전략을 수정해야 할 때입니다.
지금은 소비자들이 국내 기업에게 보복을 해야 할 시기입니다. 재벌들은 언론과 권력을 장악하고 소비자 위에 군림하는 괴물로 변했습니다. 이젠 그 어떤 조직도 이들과 맞설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들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소비자들의 선택뿐입니다.
우리가 구입하는 국산 제품의 품질이 그들이 외국에 파는 것만큼 좋아질 때까지, 국내 가격이 최소한 외국 가격보다는 싸 질 때까지, 국내 소비자를 외국 소비자만큼 존중하게 될 때까지 우리의 보복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미워도 그들은 우리나라 기업입니다. 때문에 그 보복은 관계 단절이 아닌 용서를 전제로 한 보복입니다. 그들의 성공을 우리의 성공처럼 진심으로 기뻐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우리들을 정당하게 대우하도록 변화 시켜야 합니다. 그것만이 여태껏 착취의 수단으로 이용당한 애국심이 존중 받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배신당하는 애국심은 당신까지만
그러나 인간은 이성적으로만 살지는 않습니다. 그 어떤 이유로도 국산품을 애용하는 것이 마음 편하다면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당신의 자녀에게까지 그것을 강요해서는 안됩니다. 비싸게 주고 산 제품의 불량을 개인적으로 운이 없는 탓이라 여기며 감수할 당신과는 달리 당신의 자녀는 그것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인터넷에 올리며 겁 없이 싸우려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과 싸우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들은 문제를 제기하는 소비자를 언론 플레이를 통해 악질 소비자로 만들어 버립니다. 소비자가 포기할 때까지 직원들이 돌아가며 끝없이 괴롭힘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인터넷에 진상을 고발해도 회사 편에 서서 글을 삭제해버리는 포탈의 횡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결국 당신의 자녀는 권력의 횡포에 굴복하여 불의를 보더라도 침묵하는 자가 됩니다. 그렇지 않고 끝까지 저항하다가는 정상적인 사회 생활을 할 수 없는 문제아로 낙인 찍힐 수 있습니다. 어쩌면 결코 바꿀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거대한 악에 절망하여 삶에 회의를 느낄지도 모릅니다.
소비자가 정당한 대접을 받는 세상, 기업이 법을 지키며 제품에 대해 거짓말을 하지 않는 세상, 이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현명한 소비자들의 선택이 필요합니다. 이 일을 위해 힘 있는 조직을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단 몇 명의 깨어 있는 소비자들만 있어도 배신하는 자들을 응징하는 사회 분위기를 전파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깨어 있는 시민이 당신이기를 기원합니다.
이 모든 주장들이 이해할 수 없고 복잡하다면 단 한마디만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이폰을 쓰세요. 그래야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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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와 관련된 기술적인 내용을 쉽게 풀어서 전달하고, 엔지니어 입장에서 사회 현상을 해석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정보통신, 컴퓨터, 인터넷, 방송, 사회적 인물등이 관심분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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