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치킨 반 마리와 영혼을 달래는 음료
이명주
그런데 또다시 태클. 이번엔 치킨이 문제였습니다. 혼자 먹는 것이니 반 마리를 주문하려는데 가게마다 안 된다며 거절을 했습니다. 억지로 밖에 나가 반 시간쯤 발품을 팔았지만 헛수고였습니다.
이쯤되니 감정이 북받쳐 이성이 휘청였습니다. '치킨 반 마리는 안 파는 더러운 세상!' 당장이라도 악다구니를 치고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는 일. 숙소에 돌아와 흥분을 가라앉히고 114에 문의, 서너 군데 전화를 돌린 끝에 마침내 치킨 반 마리를 쟁취할 수 있었습니다!
눈물겨운 치킨 반 마리에 적당한 음주로 속을 적시고 나니 어느새 잠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시련이 끝난 게 아니었습니다. 몇시였을까요, 집요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힘겹게 잠을 깨니 숙소 주인이 바깥에 내어둔 자전거를 들이라 했습니다. 도난을 걱정해서였습니다. 충고는 고마웠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방 안 상황이 가관입니다. 분명 '강풍'으로 설정한 에어컨이 귀를 먹먹케 하는 굉음과 함께 더운 열기를 내뿜고 있었습니다.
애써 이룬 잠이 깬 데다 찜질방 방불하는 실내를 돌아 보니 주인에게 한마디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도대체 방이 왜 이런 겁니까?" 분명 5천 원 저렴한 게 침대가 없다는 이유 하나였는데 이건 도저히 잘 수 없는 방을 준 거나 다름 없었습니다. 방 상태를 직접 확인한 주인이 자전거를 갖고 올라오자 "돈 안 받을 테니 어제 묵었던 방에 가서 그냥 주무세요" 했습니다.
이럴 때면 대개 짜증이 나지 않습니까? 아님 제가 사나워져 있던 탓이었을까요. 애초에 사람이 쉴 만한 방을 주지 않고 늦어도 너무 늦게 방을 바꿔주니, 고맙기보다 누굴 놀리나 싶은 거지요. 그렇다고 괜한 오기를 부렸다간 본인만 손해, 짧은 실랑이 끝에 '한밤의 이사'를 감행했습니다.
그렇게 또 정신산란한 밤이 지났습니다. 결국 더위로 인한 후유증을 치유하는 데 이틀이 걸렸습니다. 이제 다시 떠날 채비를 해야지요. 여행 시작 20일째, 종종 '내가 왜이러고 있지?'하고 묻습니다. 사서 생고생, 가족들 마음고생, 막막하고 힘들고….
하지만 처음 이 여행을 계획하며 생각했습니다.
'머릿속에 내 나라 아름다운 길 100갈래쯤 떠오르면 좋겠다.' 그리고 그간 많은 일들이 있었지요. 계속 갈 겁니다. 지치면 좀 쉬다 가면 그만이지요. 어차피 행복해서, 더 행복해지려고 하는 일이니까요. 응원해주십시오. 계속 길 위의 가슴 벅찬 이야기를 전할 수 있게, 언젠가 당신과 함께 오늘을 추억할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