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맣게 타버린 도시락폭심지에서 700미터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한 여학생의 도시락. 도시락은 숯덩어리가 되어버렸다. 도시락 뒷면에는 "쓰쓰미 시토코"라는 여학생의 이름이 써있다.
에너지정의행동
자료관 한 가운데서 핵무기의 위력을 시험하는 영상을 보았는데, 그 어떤 안타까운 사진보다도 충격적이었다. 원자폭탄이 터지자 마치 바닷 속 미역이 물살에 휩쓸리듯이 아파트와 같은 건물들이 출렁이며 넘어졌다. 5층 정도 되는 복도식 아파트였는데 넘어지는 데 1초가 뭐야, 순식간에 모조리 출렁이며 허리가 꺽였다. 조금만 더하면, 이 지구를 날려버리고도 남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나는 늘 원자폭탄은 버섯구름을 연상했는데, 그건 하늘 위에서 이야기였고, 폭탄이 떨어진 그 땅 위쪽은 저렇게 순식간에 멸망해 버렸던 것이었다(영상은 어마어마하지만 잔인하지는 않으니 꼭 한번 보시라). 영상을 보고나면 '열선'이라는 단어는 너무나 온화한 표현이었다. 폭발열이나 폭발파와 같이 폭발의 영향을 나타낼 수 있는 뉘앙스를 가진 단어로 바꿔 써야 한다.
우라카미 천주당에 들렀다. 성당은 1895년에 짓기 시작해서 1914년에 완공되었다. 이후 원자폭탄으로 인해 성당은 완전히 붕괴되었는데, 그 때 피폭당한 마리아상이 두상만 남아 건물 안에 모셔져있다. 마리아는 두 눈이 구멍이 되었고 얼굴의 한쪽은 검게 그을렸다.
이해할 수 없는 형상을 마주한 나는 잠시 귀가 먼 듯한 채로 서 있다가 어지러워졌다. 그날 나가사키 사람들은 굉음에 귀가 멀고, 번쩍임에 눈이 멀었다. 그리고 뜨거운 열기에 순식간에 몸이 타들어가 버렸다. 겨우 살아남은 모든 것들도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고, 도시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 불타오르고 있었다. 풍경이라 하기엔 너무 참담한 나가사키의 8월이 성모(聖母)라는 이름에 기대어 마리아 앞에서 울고 있었다.
그리고 나가이 다카시 박사의 '여기당(如己堂)'에 들렀다. 다카시 박사는 작가이자 의사로 그는 피폭 이후 자기 몸과 같이 사람을 사랑하라는 의미의 '여기애인(如己愛人)'정신을 전하려 애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