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고 낮이고, 골짜기에서 서늘한 바람이 회회 분다.
박솔희
내일로 여행이 내게 가르친 소통, '고객님'이 아닌 '사람'으로서아침에 눈을 떠보니 창밖은 이미 대낮처럼 환하다. 열 시간은 잔 듯 상쾌한 기분이라 아차, 늦잠을 잤구나 싶었다. 하지만 시계를 보니 시간은 여덟 시 정각. 기차 시간이 여덟 시 반이니, 맞게 일어났다.
다섯 시간 밖에 안 잤는데도 상큼하기 그지없는 기분에 흡족해하며 짐을 챙겼다. 내일로 숙소를 이용하면 역시 기차역이 가까워 편리하다. 지난 밤 역무실에서 함께 강원랜드와 내 여행 코스에 대해 수다 떨던 역무원께 인사를 하고 기차에 올라탔다. 간밤에 비가 온 모양이지. 땅이 촉촉하게 젖어 있다.
내일로 여행을 하며 배운 것 중에는 코레일 직원들에 대한 것도 있다. 표를 끊고, 표에 적힌 좌석을 찾아 앉고 목적지에 도착해서 내리면 그만인 여행에서는 역무원과 소통할 일이 별로 없다. 기껏 해야 '○○역 너무 불친절해요!'와 같은 민원성 댓글 정도? 그나마 인터넷이나 모바일을 통해 승차권을 예약하게 되면서 역에 있는 직원들과는 눈길 한 번 마주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난 돈 냈고, '고객'으로서 서비스를 이용하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내일로 티켓은 코레일 홈페이지나 모바일로 예약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직접 역에 가거나 전화, 각 역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채널을 통해서만 발권할 수 있다. 그렇다보니 처음엔 좀 귀찮았다. 일반 승차권은 클릭 몇 번이면 결제까지 원스톱인데, 내 이름과 주민번호 등의 개인정보를 알려주어야 하고 발권한 역에서 나라는 승객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도 어떻게 보면 부담이었다. 그냥 오는 듯 가는 듯 스치는 듯 철저한 개인으로, 눈에 띄지 않는 익명의 소비자인 것에 익숙해서다.
인간의 사회성은 분명 학습된다. 티켓을 발권하고, 내일로 숙소를 예약하고 또 몇 가지 문의를 하기 위해서 게시판의 글, 이메일, 전화 등으로 들어본 적도 없는 역의 직원들과 소통했고, 여러 차례 같은 과정을 거치며 그에 편안하고 익숙해진, 모종의 재미마저 느끼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러니까 시골 사람들이 살갑고 도시 사람들이 쌀쌀맞은 건 그저 익숙한 정도의 차이일 뿐이라는 생각이다. 낮은 지붕이 서로 맞닿은 골목의 주택가에 살든, 단절의 상징이라는 고시원이나 아파트에 살든 간에 인간은 누구나 소통하고 싶어하고, 조금만 익숙해지면 얼마든지 정다운 이웃이 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