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표 뒤쪽 모습.
최종규
국민학생 때에는 이름표에 이름을 실로 새겼습니다. 여섯 학년 이름표 빛깔은 저마다 달라, 이름표 빛깔을 보며 몇 학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름을 실로 새긴 이름표를 여섯 해 내내 고이 건사하는 아이는 아주 드뭅니다. 신나게 뛰어놀거나 개구진 짓을 하다가 이름표를 잃기도 하지만, 얌전하게 굴며 이름표를 고이 건사해 놓고 있어도 어김없이 이 이름표를 훔치는 못된 아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 이름이 아니라 하여도 아침에 학교 올 때에 다른 아이 이름표를 가슴에 붙여도 교사들은 알아보지 못하거든요.
아침에만 다른 아이 이름표를 훔쳐서 쓰고, 학교에 들어오면 다른 아이 이름이 적힌 이름표를 얼른 떼어 가방에 넣으면 알아채지 못합니다. 이름표를 훔치는 아이는 체육 수업을 할 때에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가거나 할 때에 곧잘 훔칩니다. 저는 6학년 1학기 때까지 실로 이름을 새긴 이름표를 알뜰히 건사하고 있었으나, 2학기로 넘어서기 앞서 체육 수업을 하고 돌아온 때에 도둑맞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학교 앞 문방구에서 50원을 했던가 100원을 하던 값싼 이름표를 사서 쓰고 맙니다.
중학생 때에는 이름표에 학교 배지를 아예 붙여놓습니다. 따로따로 챙기려니 챙기기 번거롭고 쉽게 잃어버리곤 했습니다.
고등학교를 마치며 이제 '이름표와 배지'를 챙기지 않아도 되며 얼마나 홀가분했는지 모릅니다. 학교옷이라며 맞춰 입는 옷부터 하나도 곱거나 멋있지 않은데다가 비싸기까지 한데, 이름표와 배지를 붙이는 꼴은 마치 감옥소에 가둔 죄인하고 다를 바 없다고 느꼈거든요. 우리들이 마음을 기울이거나 생각할 고운 삶자락과 이야기란 참으로 많은데, 자꾸자꾸 어떤 틀에 우리 스스로를 옥죄도록 하며, 스스로 죄수번호와 같은 숫자를 외우도록 하는 일이란 더없이 고달팠습니다.
아이들 숫자가 많았다고는 하나, 한두 해를 같이 지내는 아이들이 아니요 조금만 마음을 쓰면 쉰이든 예순이든 되는 아이 이름을 외우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더구나, 교사라는 사람은 교과서 지식을 우겨넣으면 되는 기계가 아니라, 아이마다 다른 삶과 넋을 키울 길잡이입니다. 길잡이 노릇을 할 분들이 아이 이름을 몰라서야 아니 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