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지바르, 슬프도록 아름다운 이름

[아프리카 여행기 14] 노예의 상처가 꽃으로 피어나다

등록 2010.08.10 09:33수정 2010.08.10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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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타운 인생의 주름, 골목의 묘미
스톤타운인생의 주름, 골목의 묘미박진희

케냐에서 탄자니아로 넘어간 지 일주일이 지났다. 탄자니아는 케냐랑은 또 다른 느낌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케냐는 아프리카에서 남아공 다음으로 잘 살기는 하지만, 빈부격차가 심해서 부촌을 조금만 벗어나도 지저분하고 열악한 느낌이 그대로 전해졌는데, 사회주의 국가인 탄자니아는 빈국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깨끗하고 정리된 느낌이 들었다.

4일째 하릴없이 다르에스살람에서 빈둥거리던 흭과 나는 더 이상의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그곳에서 경비행기로 20분 정도 가면 나오는 아름다운 섬 잔지바르 여행을 하기로 결정했다.


탄자니아에 속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항에서 출입국카드를 작성해야 들어갈 수 있는 잔지바르는 한때 오만 제국의 수도였을 정도로 꽤 번영했던 무역항이었고, 아주 큰 노예시장이 있던 곳이다. 아랍인과 인도인이 사탕과 초콜릿으로 유인해 잔지바르인들을 종으로 팔아넘겼던.

신기하게도 이들은 노예에서 해방된 지 2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아랍인의 신앙인 이슬람교를 대부분이 믿고 있으며, 백인들 아래서 그들이 던져준 돈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 달라달라 잔지바르 버스, 달려달려

즐거운 달라달라 복잡한 버스 안은 최고의 놀이기구가 된다
즐거운 달라달라복잡한 버스 안은 최고의 놀이기구가 된다박진희

달라달라 세계 최고로 재미난 버스
달라달라세계 최고로 재미난 버스양치기님

캄보디아에는 뚝뚝, 인디아에는 릭샤가 있다면, 잔지바르에는 달라달라가 있다. 우리나라의 포터 같은 작은 트럭에 천막을 달고 거기다 손잡이를 달아논 버스, 우리는 내내 '닭장차'라고 불렀던 버스에는 정말 승객이 닭들 마냥 주렁주렁 매달려 간다. 15명이 정원이지만, 최대한 탈 수 있는 데까지 사람을 구겨 넣는다. 예전에 한 운전사는 30명을 넘게 태우고 달리다가 경찰한테 붙잡히자 버스를 그대로 두고 도망가기도 했었단다.

나와 흭은 자리가 충분하다는 바람잡이에게 속아 버스를 탔는데, 도통 앉을 데가 없어서 거의 몇 정거장을 버스 바닥 중간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사정을 딱하게 본 현지인 우리에게 자리를 양보하기도 했다.


닭도 타고, 자전거도 타는 달라달라는 비록 문도 없고, 창문도 없지만, 달리는 동안 양 사방으로 휘몰아치는 자연바람은 에어컨이 부럽지 않을 만큼 시원했고 상쾌했다. 흭과 나는 잔지바르에 도착해서 이 버스를 타는 동안 웃음을 멈추지 못했던 것 같다. 더군다나 천장 위에 주렁주렁 매달린 승객들의 짐이 달리는 동안 슝슝 빠져나가도 "뽈레~"(미안)하면 그만이다. 물건 주인도 그냥 어깨만 으쓱할 뿐이다.

#. 스톤타운의 골목, 노예시장의 흔적


노예시장 지금은 영국대성당이 들어선 곳이지만 수만 명의 노예가 갇혀 있던 곳
노예시장지금은 영국대성당이 들어선 곳이지만 수만 명의 노예가 갇혀 있던 곳박진희

잔지바르의 시내 격인 스톤타운은 미로처럼 연결된 골목들이 매우 매력적인 곳이다. 바랜 상아빛으로 통일된 건물들, 그리고 마법처럼 튀어나오는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가게들은 온종일 구석구석을 돌아도 뭔가 한참 남은 느낌이다.

한창 라마단(이슬람교의 금식 기도 기간, 40여 일 동안 오후 6시까지 음주, 흡연, 식사, 섹스 모두를 금하며 기도하는 기간이다) 중이어서 우리는 점심시간을 훌쩍 넘겼지만 도통 문을 연 식당을 찾을 수가 없었다. 덕분에 스톤타운 인생의 주름 같은 골목을 하루종일 돌아다녔다.

지금은 영국 대성당이 세워진, 스톤타운의 큰 노예시장에도 들렀다. 바닷물이 들어오는 지하에 건장한 흑인들을 묶어놓고, 죽으면 죽는 대로 바닷물에 쓸려가도록 내버려두고, 살면 산 대로 영국과 미국 등지에 노예로 팔려가게 만든,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렇다 할 반항 없이 200년을 지낸 사람들…. 아무리 봐도 체격으로도, 예술적 재능으로도 뒤질 것이 없는 이 사람들이 그저 '검다'는 이유로 이 슬픈 일을 견뎌야 했다는 것이 참 안타깝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 그해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닷가

백사장 해변 보드라운 모래,
백사장해변 보드라운 모래, 박진희

잔지바르 해변 눙귄, 이라는 북쪽 해변 - 할리우드 배우들의 신혼여행지
잔지바르 해변눙귄, 이라는 북쪽 해변 - 할리우드 배우들의 신혼여행지박진희

잔지바르 북쪽 해변인 눙귄에서 이틀을 보내고, 동쪽바다의 선라이즈를 보기 위해 키웬가 해변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난 밤, 눙귄에서의 선셋은 참으로 훌륭했다. 인도양의 석양을 검은 뱃사람들과 맑은 바닷물을 가르며 태양을 향해 나가는 그 색다른 시간은 평생 기억하기에 충분했다.

잔지바르 눙귄 해변은 이미 여행자들에게는 꽤 소문이 나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할리우드 배우들이 신혼여행으로 가장 많이 찾는다는 해변도, 바로 이 잔지바르 해변이라고 한다.

동쪽 해변은 북쪽보다는 한산하고 조용한 곳이었다. 하지만 나는 30년 동안 가장 아름다운 바다를 만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 필름이 똑 떨어져서 사진으로 담을 수 없었다는 것이 이번 여행 중에 가장 안타까운 일이 되었을 정도로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었다.

우리는 키웬가 해변 중에서도 인적이 드문 끝자락에 속한 게스트하우스에 하룻밤을 지냈다. 이탈리아 사람 도미니크가 운영하는 곳으로, 여행 차 들른 잔지바르의 매력에 빠져 이곳 여자와 결혼을 해 두 딸과 함께 아예 이곳에 눌러 앉은 케이스였다. 눈부신 백사장과 형언할 수 없는 바다, 그리고 같은 색깔의 하늘과 그 하늘을 덮은 구름조각들. 가본 사람만이 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프리카 맥주, 터스커
두 달간의 여행 중,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있으니, 바로 터스커! 아프리카 맥주다. 매일 두 캔씩 생수처럼 마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나는 이 맥주 맛에 폭 빠져 있었다.

맥주만 마시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며 조증니콜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가끔 울적한 기분이 들 때면, 아프리카 맥주가 생각난다. 어디 구할 데 없을까.

아침 일찍 일어나 백사장으로 달려가 눈을 비비며 해가 뜨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상하게 바닷가 반대편 구름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순간, 내가 바라보는 곳이 동쪽이라는 확신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의심하며 반대편으로 발길을 돌리려는 순간, 바다가 알을 낳듯 뿅, 하고 동그랗고 붉은 태양이 나타났다.

나 역시도 태양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빛이어서 타인을 먼저 밝게 비출 줄 알고, 그 빛이 어디서부터 왔냐고 물으면, 나를 자랑하지 않는 선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선셋 보러 인도양의 석양을 보러, 검은 뱃사람들과
선셋 보러인도양의 석양을 보러, 검은 뱃사람들과박진희

#니콜키드박 #아프리카 #탄자니아 #잔지바르 #노예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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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담도 순식간에 뒤집어 즐겁게 살 줄 아는 인생의 위트는 혹시 있으면 괜찮은 장식이 아니라 패배하지 않는 힘의 본질이다.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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