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님의 사랑은 영원하지 않았다.
SBS 화면캡쳐
마침내 그녀의 인내가 한계에 다다르고 더 이상 억지로 웃는 얼굴을 할 수 없게 됐을 때, 설희는 시댁 식구들 앞에서 이혼선언을 한다. 그리고 결혼과 함께 폐기처분해 가슴 속 어딘가에 조용히 숨겨뒀던 밴드활동의 꿈을 구체적으로 꾸는 한편, 최고의 변호사로 손꼽히는 남편을 상대로 이혼소송을 준비한다. 나이든 아줌마 신데렐라의 자아 찾기, <나는 전설이다>는 그것을 그리는 드라마다.
그러나 <나는 전설이다>는 단순히 이혼한 아줌마의 자아 찾기 성공기만은 아니다. 그와 동시에 극명하게 대비되는 서로 다른 두 집단을 등장시켜 그들을 통해 갈등구조를 그려내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기존의 줌마렐라 드라마가 주로 개인과 개인의 갈등에 초점을 맞췄다면, <나는 전설이다>는 계급과 계급의 갈등에 초점을 맞춘다. 극중 등장하는 두 집단, 지욱의 집안과 '마돈나 밴드'를 통해서.
지욱의 집안은 이름 있는 법조인 가문, 그야말로 명문가다. 반면 마돈나 밴드의 구성원들은 어떤가. 화자(홍지민 분)는 건강식품 영업사원이고, 수인(장신영 분)은 가난한 연예기획사 매니저다. 란희(고은미 분)는 한물 간 퇴물가수고, 아름(쥬니 분)은 가난한 '리틀 맘'이다. 멤버들의 면면을 놓고 보면 그야말로 '쩌리'들의 모임이다.
드라마는 이 두 집단의 갈등을 그려내면서 '부와 행복이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설희 부부는 이미 부부로서의 기능도, 의미도 잃어버린 지 오래. 하지만 화자 부부는 비록 넉넉한 삶을 아니지만 언제나 깨가 쏟아지는 행복한 삶을 산다. 지욱의 집안은 온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싸늘한 공간이지만, 마돈나 밴드는 언제나 따뜻한 정과 의리가 넘쳐나는 곳이다.
'마돈나 밴드'의 첫 공연 장소가 시장 한가운데라는 것은 그래서 의미를 더한다. 그럴싸한 라이브 카페나 공연장이 아닌, 서민층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시장에서의 첫 공연, 그리고 그런 곳임에도 흥겹고 즐겁게 노래를 부르는 '마돈나 밴드'의 모습에서 그들의 정체성은 뚜렷해진다. 그들은 음악을 통해 힘없고 가난하지만 음악에 즐거워할 줄 아는, 그들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 건 아닐까.
명분 있는 악역을 그려낸 <나는 전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