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자연석으로 쌓은 성벽.
전갑남
성을 축조할 당시 19개 군·현별로 구간을 분담하여 외침을 막기 위한 유비무한의 슬기로 축성하였다고 한다. 이는 성벽에 '제주시(濟州始)', '화순시(和順始)', '나주시(羅州始)'라고 구간마다 각자되어 있고, 동문 옹성 성벽에는 '계유소축감동송지민(癸酉所築監董宋芝玟)'이라는 글씨가 남아 있어 이를 유추해보면 계유년에 축조되었고 여러 지방이 합심하여 성을 쌓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창읍성은 전략적 요충시설을 두루 갖추고 있다. 성에는 북문(공북루), 서문(진서루), 동문(등양루)이 있고, 3개의 성문에는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옹성(甕城)을 쌓았다. 또 성벽에 돌출시켜놓은 치성(雉城)이 6개이다.
사용된 석재는 대부분 자연석이지만 초석, 대리석, 당간지주 등 절터에서 나온 듯한 석재들도 간혹 끼여 있다. 특히 공북루 주춧돌 높이가 각각 다른 게 이채롭다. 주춧돌이 1m쯤 되는 것과 기둥이 땅바닥까지 내려온 것이 묘한 흥미를 돋운다.
성 안에 동헌, 객사 등 22개 동의 조선시대 관아건물이 있었다는데 병화로 소실되고, 1976년부터 복원해오고 있다고 한다. 성 안에는 관아만 만들고 백성들은 성 밖에서 생활하다 유사시에 성 안으로 들어와 함께 싸우며 살 수 있도록 한 것이 순천 낙안읍성이나 서산 해미읍성과는 다르다.
성곽을 걸으며 느껴본 조상의 숨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