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리처드 도킨스는 화제작 <이기적 유전자 The Selfish Gene> <눈 먼 시계공 The Blind Watchmaker> 등의 과학과 철학을 넘나드는 책을 쓰는 과학자이자 인문주의자이다.
김영사
블레즈 파스칼은 신이 존재할 확률이 아무리 낮다 해도, 잘못 추정했을 때 닥칠 대가가 훨씬 더 크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신을 믿는 편이 더 낫다는 것이다. 당신이 옳다면 영원한 행복을 얻을 것이고, 당신이 틀리다 해도 아무런 변화도 없을 테니까 - 본문 중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어떤 일에 관해 한 번 믿어 버리면, 설사 마음 속에 그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조그마한 의심이 생기더라도 자기가 이미 내린 그 믿음 속에서 위안을 얻고자 하는 것 같다. 종교가 그렇고 정치, 사회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아마도 사람은 이성보다 감정에 더 지배를 받는 동물이기에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무모하고 맹목적인 믿음의 폐단은 비단 종교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독일의 히틀러나 소련의 스탈린 시대의 비극적인 역사를 떠올려보면 자명하다. 공공연한 무신론자이기도 한 이들은 국가주의와 전체주의라는 또 다른 근본주의적 종교를 만들고 극악함을 저질러 결국 세기의 악인이 되었다.
이렇게 일개 개인이 아닌 한 나라의 권력자나 초강대국 지배층의 무조건적 믿음이나 맹목적인 종교의 추종은 전쟁이나 침략과 같은 비극을 낳을 수밖에 없다. 성경 위에 손을 대고 대통령 선서를 하는 미국 같은 나라가 그래서 걱정되는 이유다. 그러하기에 끊임없이 회의하고 의문을 품으라고 저자는 권유한다. 회의가 수반하는 알에서 깨어나는 아픔과 그 아픔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역사 속의 인간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나는 의심한다, 고로 존재한다영성(靈性, Spirituality)은 합리성의 범주를 넘어서는 것이지, 합리성에조차 못 미치는 게 아니다 - 김규항유일신앙을 접하면 누구나 가질 법한 의문들에 대한 교목의 반응은 이랬다. "신앙은 머리로 생각하지 마라. 그러한 생각은 사탄이 권세하는 것이다. 더 많이 기도하고 의심하지 말고 무조건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성을 무시하고 맹신을 요구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많은 사람들이 길잃은 양이 되거나 아예 떠나 버리는 탕자가 된다.
철학자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의 생각한다는 구체적으로 의심한다라고 볼 수 있다. 합리적인 의심(혹은 회의)이야말로 사람만이 가진 보편적이고 매우 인간다운 점이라는 사실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한국의 기독교가 종종 '개독교' 소리를 듣는 건 종교와 인간에 대해 한치의 의심도 없는 근본주의적 확신과 신념으로 똘똘 뭉쳐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한다.
신이 왜 필요하지? 왜 우리는 절대자를 원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내심 '이성적 사고'를 힘들어하고 거부하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종교란 죽은 뒤의 내세 혹은 천상의 보상을 제시해 약자가 현실의 모순에 저항하지 않고 영원한 약자이도록 하는 보수적 기능을 하므로 '민중의 아편'이라는 마르크스의 말과 일맥상통하는 의미로 다가온다.
다만 이 책의 저자는 과학자답게 사실만을 다룬다. 인간의 심성 자체에 종교적 욕구가 있다는 측면은 다루지 않는다. 수요가 있으므로 공급이 있다는 말은 종교에도 해당된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원하기 때문에 종교가 생겼다'는 말이다. 레닌이 지적한 대로 원시종교는 인간으로서는 제압할 수 없는 자연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려는 인간 집단의 의지에서 출발하는 것이었다.
현재 종교의 역할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당장은 신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언제든 불가항력적인 상황에 처하면 다시 신에 귀의할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며 우쭐대지만 생각하는 것보다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