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와 손잡는다? 상관없는 얘기,
 찬바람 불면 당명 개정, 재도약할 것"

[인터뷰] DJ 서거 1주년, 위기 맞은 평화민주당 한화갑 대표

등록 2010.08.07 11:05수정 2010.08.07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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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화갑 평화민주당 대표
한화갑 평화민주당 대표남소연

오는 18일 김대중(DJ) 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앞두고 만난 평화민주당(평민당) 한화갑(71) 대표의 표정은 그다지 밝아보이지 않았다.

민주주의와 평화, 평등을 지향한 DJ의 정치철학 계승을 목표로 지난 3월 창당 깃발을 들었지만, 불과 4개월여 만에 평민당은 존립을 걱정해야 할 지경에 빠져 있다.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전남도지사 등 후보를 냈지만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 7.28 재보선 때는 후보조차 낼 수 없었다.

DJ 비서실장 출신이면서도 동교동계와 담을 쌓고 지내는 한 대표는 평민당의 위기 앞에 할 말이 많았다.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평민당사에서 이뤄진 1시간여 가량의 인터뷰에서 그는 당 안팎에서 쏟아지는 비판에 대한 섭섭함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한 대표는 먼저 DJ 서거 1주기를 맞는 소회에서 "힘의 원천이 사라진 것 같다, 기댈 언덕도 없어진 것 같다"며 아쉬움을 강하게 표현했다. 평민당 창당에 대해서도 "때를 놓쳤다"며 후회하는 표정이었다. 그는 "DJ의 정치사상과 철학을 계승 발전시키려 했지만, 창당이 조금 더 빨랐어야 했다"고 말했다.

6.2 지방선거 패배 이후 벌어진 당내 갈등에 대해서도 한 대표는 하소연을 쏟아냈다. 특히 "선거 자금을 지원하지 않았다"고 반발한 김경재 전 의원 등 일부 후보에 대해 그는 "월세도 못 주고, 당직자들 월급도 없고, 당 대표가 품위 유지도 어려운데 무슨 의혹을 제기하는 것인지 기가 막힌다"고 했다.

"정치 역정의 마지막 고민을 하고 있다"

평민당이 어려움에 처한 지금, 한 대표는 "정치 역정의 마지막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평민당 대표 자리를 놓고 나가 제2선으로 물러날 뜻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평민당의 문을 닫을 때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앞으로의 평민당 진로에 대해 그는 명확한 청사진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민주당과 합당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평민당 창당이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야권을 분열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의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연합전선을 펼칠 것이라는 추측에 대해서는 "다 상관없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한 대표는 "여름이 지나고 찬바람이 나기 시작하면 여론을 수렴해 당명도 바꾸고 인재영입도 하는 등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것"이라고 전했다.


다음은 한 대표와 나눈 일문일답 전문.

- 오는 18일이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주기다. 1주기를 맞는 소회는.
"요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존재가 얼마나 컸는가 하는 것을 많이 느끼고 있다. 과거에 집안 어르신이 아무것도 안 하고 살아만 계셔도 힘이 된다는 말이 있지 않나. 지금 대통령이 안 계시니까, 우리 힘의 원천이 사라져 버린 것 같다. 기댈 언덕도 없어진 것 같고, 더 왜소해 보인다."

- 민주개혁진영에서는 이명박 정권 집권 이후 민주주의, 서민경제, 남북관계 3대 위기를 말한다. 만약 김 전 대통령이 살아 있었다면, 민주개혁진영에 무엇을 바라겠나.
"김 전 대통령은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에도 그런 지적을 여러 차례 했다. 특히 약자에 대한 배려, 대표적으로 용산참사 사건에 대한 정부의 부당한 태도를 강하게 말씀하시지 않았나. 누가 정권을 잡든지, 그런 문제는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게 그분의 확고한 생각이었다. 자유와 평등, 서민의 생활 보장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실 것 같다."

남소연
- 기억에 남는 김 전 대통령의 모습이 있으면 소개해 달라.
"글쎄... 전두환 정권 시절에 청와대 대변인 이종률씨와 당시 여당이던 민정당 정남 의원이 나를 만나자고 한 적이 있다. 내각책임제 개헌에 동의해주면 청와대가 뭐든 다 들어주겠다는 얘기였다. 청와대와 여당 인사를 접촉했기 때문에 변절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었지만, 김 전 대통령에게 사실대로 보고했다. 그런데 아무 대답도 않으시고 그냥 묵살해 버리시더라. 나중에 내가 그 침묵을 알아듣고 청와대 등에 얘기했다. 김 전 대통령이 그럴 의향이 없다고. 직선제 개헌에 대한 원칙을 놓고 절대 타협하지 않았던 분이다. 한쪽이 죽는 길을 가더라도 끝까지 굽히지 않으셨다."

- 김 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맞아 평화민주당이 특별히 준비한 행사는 없나.
"당 차원의 추도 모임을 계획했는데, 김대중도서관에서 준비하는 행사와 겹쳤다. 우리가 그 행사에 참여하기로 했다. 덧붙이자면, 한나라당 홍사덕 의원에게 개인적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작년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하고 난 뒤, 8월 23일 홍 의원이 <한국일보>에 칼럼을 썼더라. 미국의 루스벨트, 독일의 비스마르크에 비견될 복지대통령으로 김 전 대통령을 꼽았다. 민주당이나 우리가 그런 글을 써야 하는데, 한나라당 소속 의원이 김 전 대통령을 높이 평가하는 글을 썼다. 고마웠다."

- 당명도 평화민주당이고 김 전 대통령의 뜻을 받들겠다고 했는데, 아직 정치권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이유가 뭐라고 보나.
"우리는 김 전 대통령의 정치 사상과 철학을 계승 발전시키려고 했다. 사실 전 국민이 계승 발전시켜야 할 것이지, 우리만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민주당 내에서는 김 전 대통령의 뜻을 발전시킬 생각이 퇴보한 것 같다. 그래서 창당했지만, 조금 더 빨랐어야 했다. 6.2 지방선거를 턱밑에 두고 창당해 실력 있는 입후보자를 만들지 못했다. 이제 2012년 총선을 준비하려 한다. 아직은 우리 당이 후보자들에게 당선 보장을 해 주지 못하고, 열악한 당의 재정 상황도 문제가 있다."

- 인물도 없고, 당 운영 자금도 부족하다면 진로가 불투명한 것 아닌가.
"남은 2년간 국민 속으로 파고들어 얼마나 인정받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내가 창당한 이유는 내 욕심보다 후진에게 길을 닦아주고, 모범을 보이고 싶어서다. 지금은 보면, 한계지도자체감의 법칙 같은 게 있다고 할까... 시간이 갈수록 양질의 정치 지도자들이 줄어드는 것 같아 안타깝다."

"2002년 대선, 정몽준 후보 밀어준 게 아닌데 배척 당했다"

- 6.2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당내 분란도 있었다. 지금은 해소가 됐나.
"내가 당의 자금을 독점한다든지, 당을 독선적으로 운영한다든지 하는 얘기가 나왔다. 하지만 독점할 게 없다. 당에 돈이 없는 게 사실이다. 당사 월세도 아직 못 줬다. 당직자들도 자원봉사다. 월급이 없다. 당 대표인 내가 품위 유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근데도 내가 돈을 쌓아놓고 선거 때도 안 준 것처럼 얘기하고, 인터넷에 올리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공천헌금 받아 수백억 쌓아놓고 안 풀고 있다... 기가 막힌다. 6.2 지방선거 끝나고 당내에서 비대위 구성 얘기가 나왔다. 하지만 내가 그만두면 당이 없어진다. 나를 비방했던 사람들은 지금 탈당했거나, 당에 나오지 않는다. 아직은 남아서 당을 재건하자는 최고위원들이 있다. 나는 물러날 자유도 없다. 다만, 내 정치 역정에 대해 마지막 고민을 하고 있다."

- 마지막 고민은 뭔가.
"내가 이렇게 앞을 못 봤나, 이렇게 성공 못할 창당을 할 정도의 지도자밖에 안 되나, 이런 고민이다. 내가 여기서 허장성세를 부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 정치를 그만둔다든지, 평화민주당을 접는다는 것과 같은 고민인가.
"평화민주당을 창당한 것은 이대로 가다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추종자들이 다 없어질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같이 창당한 사람들이 협조하지 않고, 나한테만 책임지라고 한다. 그렇게 비난한다면, 와서 당을 끌어보라는 거다. 내가 물러나겠다, 이런 결심까지 하고 있다."

- 평화민주당 밖의 시선도 곱지 않은 것 같다. 참여정부 사람들과도 갈등이 있지 않나.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단일화 과정에서 내가 정몽준 후보를 밀었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정 후보를 민 적이 없다. 항상 노무현 후보가 민주당의 대선후보라고 표방했다. 당시 난 후보단일화 하려면 당 대표가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봤다. 노 후보로 단일화된 뒤에 정 후보가 유세를 안 나왔다. 그래서 내가 사람을 보냈다. 나와서 지원유세 해야 한다고. 새벽 2시에 정 후보가 전화했더라. 아무개씨를 한 대표가 보냈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했다. 다음날부터 정 후보가 나와서 유세를 돕더라. 그런데 노 후보쪽 사람들은 마지막 명동 유세날에도 당 대표인 나를 뺐다. 정 후보를 밀었다고 끝까지 나를 배척한 거다."

- 2002년 대선 뒤 민주당 대표직을 떠날 때도 밀려나왔다는 얘기가 있는데.
"대선 전후로 나한테 대표직을 내놓으라고 한 사람들이 있었다. 노 대통령이 되면 쫓겨난다고, 그 전에 인심 쓰라고 하는 거다. 대판 싸운 적이 있다. 대선 직후 12월 23일 노 당선자와 조찬을 했는데, 그때 나더러 물러나는 게 좋겠다고 했다. 나는 당원이 뽑은 대표를 물러나게 하려면 전당대회를 해야 한다고 맞섰다. 하지만 선거 뒤에도 중앙선대위가 해체하지도 않고, 민주당을 끌어 나갔다. 내가 있는 당 대표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림자 하나 비치지 않았다. 전부 당선자실로 출퇴근했다. 동교동 사람들도 다 그리 옮겼다. 내가 얼마나 초라하냐. 어떤 이는 당 대표 그만두고 대통령 특사로 미국 가라고 했다. 그렇게 회유, 협박이 들어왔다. 견디다 못해서 내가 김 전 대통령에게 전화했다. 물러나겠다고. 한참 듣던 대통령께서 알았다고만 하더라. 솔직히 내게는 불만이었다."

- 노 전 대통령도 이미 서거했다. 섭섭함은 있겠지만, 참여정부와 노 전 대통령을 종합평가한다면. 
"노 전 대통령의 단점은 적과 동지를 너무 구별하는 것이라고 본다. 적은 타도의 대상, 동지는 구제의 대상으로 봤다. 정치는 적도 포용해야 타협이 된다. 또 참여정부는 역대 정권 중 가장 정체성이 뚜렷한 정권이었다. 소위 개국공신들이 그대로 청와대 갔다가, 끝나니까 다들 나왔다. 정체성이 확실한 거다. 또 노 전 대통령은 약자의 편에 서서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인정해야 할 점이다."

"재판 앞두고 여권에 잘 보이려고 창당했다고? 상관없다"

남소연

- 한나라당을 둘러싼 보수진영은 보수대연합을 이야기한다. 김 전 대통령의 유지도 단합, 단결이었다. 평화민주당과 민주당의 통합은 구상하고 있나.
"아직 생각 못해봤다. 다만 같은 종류의 물품이 서로 품질 경쟁을 할 때 소비자에게 이득을 주지 않나.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경쟁, 지혜의 정치를 서로 하다 보면 때가 오지 않겠나. 같은 길을 꾸준히 가다보면 자연스럽게 얘기가 나올 것이다."

- 한 대표 개인적으로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재판 중이다. 재판 진행은 어떻게 돼 가고 있나.
"나는 정치를 하면서 도의원, 군의원 공천에 1원짜리 하나 받은 적 없다. 지금 재판 받는 사건도 공천 끝나고 당이 어렵다고 하니 자기들이 낸 것이다. 공천헌금이라는 증언도 없고, 나도 나중에 보고 받았다. 그런데 기소했다. 내가 검찰한테 그랬다. 이 사건은 재판을 백번 해도 백번 모두 무죄가 나올 것이라고. 공천헌금이라는데, 이명박 대통령도 대선후보 되고 난 뒤 30억원인가 냈다고 신문에서 봤다. 열린우리당도 선거 치르면서 광역자치단체장들에게 1억여원씩 공개적으로 받은 것으로 안다."

- 평화민주당 창당이 야권을 분열시키고, 여권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라는 의혹에 대해서는.
"내가 평화민주당 창당한 것이 재판에 질 것 같으니까 여권에 잘 보이려고 했다는 사람들도 있다. 또 내가 박근혜와 손을 잡을 것이라는 소문이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나는 올해 1월에 평화민주당 창당주비위를 등록했다. 기소는 3월 24일에 이뤄졌다. 다 상관없는 얘기다."

- 아무래도 아직은 평화민주당이 올드(Old)한 이미지가 있다. 젊은 정당으로 탈바꿈할 계획은.
"여름 지나고 찬바람이 나기 시작하면 여론을 수렴해 당명도 바꾸고 인재영입도 할 것이다. 당의 연수기능도 살려서 정치엘리트 양성기관을 만들어 재도약하겠다. 당명에 대해서, 주변에서 '왜 옛날에 없어진 정당의 이름을 들고 나왔느냐'는 얘기가 많았다. 그래서 바꿀 작정이다."
#한화갑 #평화민주당 #김대중 #박근혜 #당명 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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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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