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소연
- 기억에 남는 김 전 대통령의 모습이 있으면 소개해 달라.
"글쎄... 전두환 정권 시절에 청와대 대변인 이종률씨와 당시 여당이던 민정당 정남 의원이 나를 만나자고 한 적이 있다. 내각책임제 개헌에 동의해주면 청와대가 뭐든 다 들어주겠다는 얘기였다. 청와대와 여당 인사를 접촉했기 때문에 변절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었지만, 김 전 대통령에게 사실대로 보고했다. 그런데 아무 대답도 않으시고 그냥 묵살해 버리시더라. 나중에 내가 그 침묵을 알아듣고 청와대 등에 얘기했다. 김 전 대통령이 그럴 의향이 없다고. 직선제 개헌에 대한 원칙을 놓고 절대 타협하지 않았던 분이다. 한쪽이 죽는 길을 가더라도 끝까지 굽히지 않으셨다."
- 김 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맞아 평화민주당이 특별히 준비한 행사는 없나."당 차원의 추도 모임을 계획했는데, 김대중도서관에서 준비하는 행사와 겹쳤다. 우리가 그 행사에 참여하기로 했다. 덧붙이자면, 한나라당 홍사덕 의원에게 개인적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작년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하고 난 뒤, 8월 23일 홍 의원이 <한국일보>에 칼럼을 썼더라. 미국의 루스벨트, 독일의 비스마르크에 비견될 복지대통령으로 김 전 대통령을 꼽았다. 민주당이나 우리가 그런 글을 써야 하는데, 한나라당 소속 의원이 김 전 대통령을 높이 평가하는 글을 썼다. 고마웠다."
- 당명도 평화민주당이고 김 전 대통령의 뜻을 받들겠다고 했는데, 아직 정치권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이유가 뭐라고 보나."우리는 김 전 대통령의 정치 사상과 철학을 계승 발전시키려고 했다. 사실 전 국민이 계승 발전시켜야 할 것이지, 우리만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민주당 내에서는 김 전 대통령의 뜻을 발전시킬 생각이 퇴보한 것 같다. 그래서 창당했지만, 조금 더 빨랐어야 했다. 6.2 지방선거를 턱밑에 두고 창당해 실력 있는 입후보자를 만들지 못했다. 이제 2012년 총선을 준비하려 한다. 아직은 우리 당이 후보자들에게 당선 보장을 해 주지 못하고, 열악한 당의 재정 상황도 문제가 있다."
- 인물도 없고, 당 운영 자금도 부족하다면 진로가 불투명한 것 아닌가. "남은 2년간 국민 속으로 파고들어 얼마나 인정받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내가 창당한 이유는 내 욕심보다 후진에게 길을 닦아주고, 모범을 보이고 싶어서다. 지금은 보면, 한계지도자체감의 법칙 같은 게 있다고 할까... 시간이 갈수록 양질의 정치 지도자들이 줄어드는 것 같아 안타깝다."
"2002년 대선, 정몽준 후보 밀어준 게 아닌데 배척 당했다"- 6.2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당내 분란도 있었다. 지금은 해소가 됐나. "내가 당의 자금을 독점한다든지, 당을 독선적으로 운영한다든지 하는 얘기가 나왔다. 하지만 독점할 게 없다. 당에 돈이 없는 게 사실이다. 당사 월세도 아직 못 줬다. 당직자들도 자원봉사다. 월급이 없다. 당 대표인 내가 품위 유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근데도 내가 돈을 쌓아놓고 선거 때도 안 준 것처럼 얘기하고, 인터넷에 올리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공천헌금 받아 수백억 쌓아놓고 안 풀고 있다... 기가 막힌다. 6.2 지방선거 끝나고 당내에서 비대위 구성 얘기가 나왔다. 하지만 내가 그만두면 당이 없어진다. 나를 비방했던 사람들은 지금 탈당했거나, 당에 나오지 않는다. 아직은 남아서 당을 재건하자는 최고위원들이 있다. 나는 물러날 자유도 없다. 다만, 내 정치 역정에 대해 마지막 고민을 하고 있다."
- 마지막 고민은 뭔가."내가 이렇게 앞을 못 봤나, 이렇게 성공 못할 창당을 할 정도의 지도자밖에 안 되나, 이런 고민이다. 내가 여기서 허장성세를 부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 정치를 그만둔다든지, 평화민주당을 접는다는 것과 같은 고민인가."평화민주당을 창당한 것은 이대로 가다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추종자들이 다 없어질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같이 창당한 사람들이 협조하지 않고, 나한테만 책임지라고 한다. 그렇게 비난한다면, 와서 당을 끌어보라는 거다. 내가 물러나겠다, 이런 결심까지 하고 있다."
- 평화민주당 밖의 시선도 곱지 않은 것 같다. 참여정부 사람들과도 갈등이 있지 않나."지난 2002년 대선 당시 단일화 과정에서 내가 정몽준 후보를 밀었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정 후보를 민 적이 없다. 항상 노무현 후보가 민주당의 대선후보라고 표방했다. 당시 난 후보단일화 하려면 당 대표가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봤다. 노 후보로 단일화된 뒤에 정 후보가 유세를 안 나왔다. 그래서 내가 사람을 보냈다. 나와서 지원유세 해야 한다고. 새벽 2시에 정 후보가 전화했더라. 아무개씨를 한 대표가 보냈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했다. 다음날부터 정 후보가 나와서 유세를 돕더라. 그런데 노 후보쪽 사람들은 마지막 명동 유세날에도 당 대표인 나를 뺐다. 정 후보를 밀었다고 끝까지 나를 배척한 거다."
- 2002년 대선 뒤 민주당 대표직을 떠날 때도 밀려나왔다는 얘기가 있는데. "대선 전후로 나한테 대표직을 내놓으라고 한 사람들이 있었다. 노 대통령이 되면 쫓겨난다고, 그 전에 인심 쓰라고 하는 거다. 대판 싸운 적이 있다. 대선 직후 12월 23일 노 당선자와 조찬을 했는데, 그때 나더러 물러나는 게 좋겠다고 했다. 나는 당원이 뽑은 대표를 물러나게 하려면 전당대회를 해야 한다고 맞섰다. 하지만 선거 뒤에도 중앙선대위가 해체하지도 않고, 민주당을 끌어 나갔다. 내가 있는 당 대표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림자 하나 비치지 않았다. 전부 당선자실로 출퇴근했다. 동교동 사람들도 다 그리 옮겼다. 내가 얼마나 초라하냐. 어떤 이는 당 대표 그만두고 대통령 특사로 미국 가라고 했다. 그렇게 회유, 협박이 들어왔다. 견디다 못해서 내가 김 전 대통령에게 전화했다. 물러나겠다고. 한참 듣던 대통령께서 알았다고만 하더라. 솔직히 내게는 불만이었다."
- 노 전 대통령도 이미 서거했다. 섭섭함은 있겠지만, 참여정부와 노 전 대통령을 종합평가한다면. "노 전 대통령의 단점은 적과 동지를 너무 구별하는 것이라고 본다. 적은 타도의 대상, 동지는 구제의 대상으로 봤다. 정치는 적도 포용해야 타협이 된다. 또 참여정부는 역대 정권 중 가장 정체성이 뚜렷한 정권이었다. 소위 개국공신들이 그대로 청와대 갔다가, 끝나니까 다들 나왔다. 정체성이 확실한 거다. 또 노 전 대통령은 약자의 편에 서서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인정해야 할 점이다."
"재판 앞두고 여권에 잘 보이려고 창당했다고? 상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