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김수로>의 주요 인물 중 하나인 허황옥(서지혜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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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둘이 침실에 들어갔을 것이므로, 이들의 대화를 통역해줄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위와 같이 자기 소개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은 두 사람 사이에 공통의 언어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들 사이의 언어가 가야어였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중국 역사서인 <후한서>나 중국 사천성의 암각(巖刻) 자료 등을 토대로 할 때, 허황옥은 가야에 오기 1년 전인 서기 47년까지만 해도 티베트와 중국 내륙의 경계지대인 사천성(2008년 대지진 발생 지역)에서 오랫동안 거주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김수로는 어떠했는지 몰라도 적어도 허황옥의 경우에는 가야어를 배울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가 가야어를 배웠음을 추론케 하는 간접적 자료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둘 중 하나 혹은 둘 다 가야어를 몰랐다면, 어떻게 이들이 가야 토착민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었겠느냐?"고 질문할 수도 있지만, 가야 건국 당시만 해도 중국대륙-한반도-일본열도 등을 무대로 국제무역이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김수로·허황옥과 가야 토착민들은 상인이나 통역 등을 매개로 얼마든지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그런 정황을 고려할 때, 이들이 가야어를 몰랐다 해도 가야 땅에서 사는 데에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들이 가야어를 익혔을 것이라고 볼 만한 정황이 별로 포착되지 않는다. 따라서 '가야어를 제외한 다른 언어들 중에서 어떤 언어가 김수로와 허황옥 사이의 언어가 되었을지'로 우리의 논의를 압축하는 게 바람직하리라 본다.
중국어와 흉노어를 쓴 김일제의 후예들드라마 <김수로>에서도 언급되고 있듯이, <한서> <삼국사기> 같은 문헌 사료나 <문무왕릉비문> <대당고김씨부인묘명> 같은 비문 사료 등을 종합하면 김수로는 흉노족의 일파인 제천금인족(祭天金人族)에 속한 김일제의 후예로 판단된다.
중국 한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한서>에 따르면, 한나라 제7대 황제인 한무제(재위 기원전 141~87년) 때에 전쟁에서 패해 한나라에 끌려온 흉노 왕족 김일제는 황제의 신임을 바탕으로 영향력 있는 제후의 자리에 오르는 등 중국에서 성공적인 정착을 이룩했다. 김일제를 시조로 하는 최초의 김씨 가문인 김일제의 후예들은 산동반도를 거점으로 집안의 영향력을 보전하면서 기원전 66년 이후에는 단독으로 한나라 정부의 실권을 장악했다.
왕망이 한나라를 멸망시키고 신나라를 세운 서기 8년 이후에도 왕망과 고도의 유대관계를 갖고 권세를 유지한 김씨 가문은, 한나라 황실의 후예들이 신나라를 멸망시키고 후한(後漢)을 세운 서기 25년 이후로 중국 역사에서 사라졌다. 김씨 가문이 역사무대에 컴백한 것은 그로부터 17년 뒤인 서기 42년 가야 건국 때였다.
이 같은 역사를 고려해볼 때, 가야 땅에 출현한 김씨 가문의 구성원이 구사할 수 있는 언어는 한어(漢語, 중국어)나 흉노어였을 것임을 알 수 있다. 중국 땅에서 최소 100년 이상 국가경영에 참여한 가문이므로, 중국어를 상당히 능숙하게 구사했을 것이라는 점에는 별다른 의문이 없다. 한편, 한나라에 끌려온 뒤에도 산동반도를 거점으로 자기들만의 정체성을 유지한 점을 볼 때, 이들이 흉노어를 어느 정도는 기억하고 있었으리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한국어와 고도의 유사성 보이는 고대 인도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