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그림. 그야말로 정년퇴임 기념 사진책인 만큼, 간기에 인쇄 날짜마저 안 적었습니다. 겉그림도 아주 수수하게 마련했습니다.
최종규
아침부터 낮잠 거의 없이 놀던 아이는 해가 떨어지고 어두워지니 몹시 힘들어 하며 이내 곯아떨어질 듯하지만, 이러면서도 엄마한테 달라붙어 떼를 씁니다. 집으로 돌아와 씻고 이 닦고 투정 좀 부리다가 새근새근 잠듭니다. 잠든 두 식구를 조용히 바라보는 아이 아빠는 아침부터 다시금 꺼내어 들추고 있는 묵은 사진책 하나를 곰곰이 되새깁니다. 시중 책방에 나온 적이 없을 뿐더러, 시중 헌책방에서조차 만날 길이 거의 없는 사진책 가운데 하나인 <김동규 사진집 1954∼1976, 1998>을 생각합니다.
이 사진책을 내놓은 김동규 님은 서울시립대학교에서 건축공학과 교수로 일하다가 2001년 4월에 정년퇴임을 합니다. 김동규 교수는 여느 교수들이 '정년퇴임 기념 논문집'을 내는 흐름하고는 다르게 '정년퇴임 기념 사진책'을 내놓습니다. 다른 사람들한테서 '칭찬하는 글'을 잔뜩 받아 살짝살짝 우쭐거리는 논문집이 아닌, 당신 스스로 당신 한길을 걸어오는 동안 당신 삶과 넋을 크게 건드리거나 움직인 사진을 알뜰히 모아 책 하나로 여미어 내놓았습니다.
사진학과에 있던 교수가 정년퇴임을 한다 하더라도 이런 사진책을 내기는 만만하지 않습니다. 아니, 제법 드문 일입니다. 사진학과 학생들이 졸업 사진책을 내는 일은 있으나, 사진학과 학생들 졸업 사진책은 아직 학생들 스스로 '사진하는 마음'이 제대로 영글지 않은 가운데 어느 만큼 뽐내는 느낌이 짙어 썩 달갑거나 내키지 않곤 합니다. 스스로 무르익거나 스스로 고개숙일 줄 아는 가운데 아름다이 일구어 온 사진삶을 담은 '사진학과 대학생 졸업 사진책'은 이 나라에서는 좀처럼 나오기 어렵습니다.
사진삶이라고 해서 반드시 마흔 해를 찍었다든지 쉰 해를 찍었다든지 해야 무르익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꼭 열 해만 찍었든 이제 다섯 해째 찍었든 겨우 두 해를 찍었든, 나 스스로 걸어온 사진길을 나 스스로 당차고 씩씩하고 즐겁게 갈무리했다면, 이만 한 깊이와 너비로 무르익혀서 사진책 하나로 그러모으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