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가치 110억 넘던 회사를 88만원에 팔다니"

창원 제이티정밀, '위장폐업' '탈법 자본 철수' 논란... 폐업 앞둔 81명 노동자 "네가 있어 힘이 난다"

등록 2010.07.30 11:11수정 2010.07.30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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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업철회 승리투쟁 철농 92일."

창원공단 내 제이티(JT)정밀(전 한국시티즌정밀)에 붙어 있는 벽보다. 사측은 '7월 31일 폐업'을 통보해 놓고 있다. 노동자들은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다. 공장 안팎에서 석 달 넘게 싸워왔는데, 막상 폐업하고 나면 공장에 들어오는 것도 자유롭지 않을 수 있다. 또 다른 투쟁을 해야 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이선이 금속노조 제이티정밀지회장 등 조합원들이 지난 5일 오전 창원 제이티정밀 공장에서 열린 집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선이 금속노조 제이티정밀지회장 등 조합원들이 지난 5일 오전 창원 제이티정밀 공장에서 열린 집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윤성효

 창원공단 내 제이티정밀 공장에 붙어 있는 벽보.
창원공단 내 제이티정밀 공장에 붙어 있는 벽보.윤성효

손목시계 조립과 손목시계 케이스 제조를 해오던 한국시티즌정밀은 1988년 일본 시티즌시계(주)의 자본이 들어와 설립된 회사였다. 그러다가 2008년 4월 구두 제조·판매회사인 (주)고려TTR에 매각되었고, 회사 이름은 (주)제이티정밀로 변경되었다. 자산가치 110억원(일각에선 200억원 이상 주장)이 넘던 회사였는데, 당시 매각 대금은 88만원이었다.

이에 노동자들은 '위장 매각'과 '탈법 자본 철수'라 주장하고 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경남지부 제이티정밀지회(지회장 이선이)는 매각 과정에서 '사기'와 '배임' 행위가 있었다며 검찰에 전·현 경영진을 고발해 놓았다. 또 노조 지회는 지난 5일 8명의 '원정 투쟁단'을 꾸려 일본에 파견했다.

경남지역 노동·시민단체와 야당으로 구성된 '시티즌의 탈법 자본 철수 진상 규명과 폐업 노동자 생존권 보장을 위한 경남대책위원회'와 노조 지회는 창원고용노동지청 앞과 부산 소재 고려TTR, 주부산일본총영사관 앞을 다니며 집회를 열고 있다.

조합원 81명이 남아 싸우고 있다. 월급 70%인 휴업급여(수당) 6월분이 7월에 나와야 하는데 나오지 않았다. 회사에서 비조합원에게만 지급했던 것이다. 조합원들은 어렵지만 그래도 투쟁을 멈출 수 없다며 개인마다 투쟁기금으로 100만원씩 내기로 결의했다.

폐업이 단행되면 사측은 공장에 대한 단수·단전 조치부터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공장 문을 닫고, 노동자들의 출입을 막을 전망이다. 그렇지만 조합원들은 "끝까지 투쟁한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원정 투쟁단은 30일부터 일본 우에노에 있는 시티즌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전개한다. 원정투쟁단은 일본 노동단체와 간담회를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폐업 시한 하루를 앞두고 시작되는 일본의 1인 시위가 어떤 반응을 불러올지 관심을 끈다. 

 '시티즌의 탈법 자본 철수 진상 규명과 폐업 노동자 생존권 보장을 위한 경남대책위원회'는 29일 저녁 창원공단 내 제이티정밀에서 '투쟁문화제'를 열었다.
'시티즌의 탈법 자본 철수 진상 규명과 폐업 노동자 생존권 보장을 위한 경남대책위원회'는 29일 저녁 창원공단 내 제이티정밀에서 '투쟁문화제'를 열었다.윤성효

"지역 동지들이 있어 힘이 난다"


침통한 분위기일 것만 같은 제이티정밀 공장에 모처럼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29일 저녁 대책위가 조합원들에게 힘을 북돋아 주기 위해 음식과 술을 차려 놓고 마음껏 먹도록 하고, 풍물도 치며, 노래도 부르면서 흥겨운 시간을 보내도록 한 것이다. 마창여성노동자회가 음식을 마련했다.

"외자기업 시티즌의 탈법 자본 철수 규탄 및 제이티정밀 생존권 사수 투쟁문화제"가 열렸는데, 다른 사업장의 노동조합과 시민사회 관계자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이종엽·여영국 경남도의원과 송순호·최미니·문순규·노창섭·강영희 창원시의원도 참석해 노동자들의 손을 잡았다.

여자이지만 투쟁하면서 삭발했던 이선이 지회장이 먼저 단상에 올랐다. 그는 "어제와 오늘 투쟁 현장에 지회장이 보이지 않는다고 걱정하신 분들이 있을 건데, 하루 종일 검찰과 경찰에 가서 고소해 놓은 배임·사기죄와 관련해 고소인 조사를 받았고, 내일 또 받아야 한다"면서 "지역 동지들이 있어 힘이 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2008년 투쟁 때 137일 동안 싸웠다. 그때는 집에도 들어가지 못했는데, 지금은 2주에 한 번씩은 들어간다. 많이 지치고 힘들지만, 그래도 좀 더 힘을 내자. 어떤 결과로 정리될지 모르지만 끝까지 투쟁하자"고 말했다. 보름 전 '모친상'을 당했던 그는 "반드시 승리하자"고 외쳤다. 그러면서 이 지회장은 대중가요 "황진이"를 개사해서 불렀다.

이날 사회를 본 박종미 민주노동당 경남도당 조직국장이 "악덕기업 심판하고 생존권을 보장받자"와 "노동자와 연대투쟁 노동3권 쟁취하자"고 외치자 참가자들은 팔을 높이 들며 따라 외쳤다.

정영주 창원시의원은 "여러분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발로 뛰는 의정 활동을 하겠다"면서 "함께 투쟁하고, 무엇보다 건강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옥선 마창여성노동자회 회장은 "10년 전 같이 투쟁했던 동지를 오늘 암으로 하늘나라에 보냈다"면서 "우리들은 오래 투쟁하다 복직하고 다시 해고되었다. 무엇보다 많이 힘이 되는 것은 옆에 있는 동지들이다"고 말했다.

무대에 오른 경남도의원과 창원시의원들은 함께 "소양강처녀"를 불렀다. 노창섭 창원시의원은 "20여 년 동안 노동자들은 외국자본에 돈벌이를 해주었다. 그런데 이제는 안 된다 싶으니까 일방적으로 자본을 철수하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는 외국 자본 유치를 위해 온갖 인센티브를 주고 있다. 그런데 정작 외국 자본 철수에는 손을 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어둠이 짙게 깔린 속에 박종미 조직국장이 말했다. "옆에 있는 사람의 눈을 보고, 손을 잡아서 온기를 전하며 '네만 믿는다'는 눈빛을 보내자. 그리고 '끝까지 가자'고 속삭여 보자. 심장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함께 외쳐보자. '동지야 사랑한다'고."

 '시티즌의 탈법 자본 철수 진상 규명과 폐업 노동자 생존권 보장을 위한 경남대책위원회'는 29일 저녁 네이티정밀에서 투쟁문화제를 열었다. 사진은 풍물 공연 모습.
'시티즌의 탈법 자본 철수 진상 규명과 폐업 노동자 생존권 보장을 위한 경남대책위원회'는 29일 저녁 네이티정밀에서 투쟁문화제를 열었다. 사진은 풍물 공연 모습. 윤성효

경영진 "무엇이 사기며 배임이라는 건지 모르겠다"

제이티정밀은 김선남·조준행 공동대표이사가 경영을 맡고 있다. 김선남 대표이사는 (주)고려TTR을 경영하고 있으며, 조준행 대표이사는 노동부 부산지방노동청 창원지청장 출신이다.

조준행 대표이사는 이날 저녁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폐업 강행 방침을 밝혔다. 그는 "경영이 어려워 폐업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6월분 휴업급여 미지급에 대해, 그는 "회사에서 조합원한테는 지급하지 않았고 비조합원한테는 지급했다"고 말했다.

사기·배임 주장에 대해, 그는 "무엇이 사기며, 배임인지 모르겠다. 회사 매각 절차는 정상적으로 이루어졌다"면서 "경영진에 대해 명예훼손을 하면서 교섭을 하자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사기·배임 혐의가 있다면 사법기관에서 처리할 것이다"고 밝혔다.
#제이티정밀 #시티즌 #금속노동조합 #창원공단 #외국자본 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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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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