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 있는 경양역 터 표지석
이규봉
정치자금은 이렇게 쓰는 것이다이어 동구 학동 광주천변에 있는 백화마을을 찾았다. '백화아파트'와 '백화마트'라는 말에서 옛날의 백화마을을 연상하게 한다.
도피여정과는 관계없으나 해방 후 다시 들른 광주에서 백범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일본·만주로 징용을 끌려갔거나 생계를 위해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즉 '전쟁의 재난을 당한 백성'인 전재민(戰災民)들이 매우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 것을 본다.
그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받은 후원금(또는 정치자금)을 모두 광주시장에게 건네주어 전재민을 위하여 마을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백범의 요청과 금품을 받아든 당시 광주시장은 동구 학동 광주천변 공터에 전재민촌을 건설한다.
비자금을 통한 불법 정치자금이 난무하는 오늘날 백범 선생의 이러한 모습은 모든 정치인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백범 선생은 "남의 것을 빼앗는 사람이 아니라, 동포에게 주는 것으로 낙을 삼는 사람"이란 말을 충분히 들을 만한 분이시다.
영세민촌이 백화마을이 1992년 백화아파트로 다시 준공되었다. 백화아파트 주변은 온통 공사현장이다. 백화아파트 주변 일부를 역사공원으로 만들기로 최종 결정하였다는 말을 들으니, 백범 선생의 정신이 이곳에서 꽃 피워 널리널리 퍼져 나가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