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궁궐사건>겉그림
지식프레임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는 대한제국에 을사조약을 강요, 대한제국의 식민지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한다. 이에 고종황제는 1907년 6월, 당시 만국평화회의가 열리고 있는 네덜란드 헤이그에 밀사를 특파한다. 일제 침략의 실상을 폭로하고 을사조약의 무효를 세계열강에 호소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큰 성과를 얻지 못한다.
일제는 이 사건을 계기로 대한제국의 내정에 관한 전권을 장악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헤이그 밀사사건의 책임을 고종에게 물어 퇴위시킨다. 그런 후 이토 히로부미와 외상 하야시 다다스는 대한제국의 국권을 빼앗기 위한 신협약을 작성, 1907년 7월 24일 정식으로 대한제국에 요구한다. 이것이 정미 7조약, 일본의 대한제국 병탄을 위한 마지막 조치였다.
① 한국정부는 시정개선에 관하여 통감의 지도를 받을 것, ② 한국정부의 법령제정 및 중요한 행정상의 처분은 미리 통감의 승인을 거칠 것, ③ 한국의 사법사무는 보통 행정사무와 이를 구분할 것, ④ 한국 고등 관리의 임명은 통감의 동의로써 이를 행할 것, ⑤ 한국정부는 통감이 추천하는 일본인을 한국 관리에 용빙할 것, ⑥ 한국정부는 통감의 동의 없이 외국인을 한국 관리에 임명하지 말 것, ⑦ 1904년 8월 22일 조인한 한일외국인 고문 용빙에 관한 협정서 제1항은 폐지할 것 - 포털사이트 백과사전 참고정미 7조약은, 7항목에 불과하지만 사실상 대한제국의 입법, 사법, 행정부를 비롯하여 황제의 권한까지 일본이 모두 통치하겠다는 것이었다. 일본의 요구를 이완용 내각이 찬성, 순종을 압박하여 하루 만에 재가를 얻어냄으로써 사실상 대한제국을 팔아넘긴 조약이다. '한일신협약', '제3차 한일협약'이라고도 부른다.
그런데 정미 7조약에는 가장 중요한 군사권이 빠져 있다. 이는 군사권이 민감할 수밖에 없는지라 반발을 의식, 비밀각서의 형태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일제는 그러나 그로부터 얼마 후인 1907년 8월, 대한제국의 군대를 해산시킴으로써 대한제국의 모든 것을 장악하기에 이른다. 이때 해산된 군인들 다수가 의병에 편입, 항일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경술국치 100년 맞아 펼친 <조선궁궐사건>, 남다르네1909년 10월, 이토 히로부미는 러시아에 조선식민지에 대한 양해를 구하고자 만주 하얼빈을 방문했다가 안중근 의사에게 저격당해 절명한다. 일제는 안중근 의사에 대한 몇 차례의 재판을 속결, 이듬해인 1910년 3월에 안중근 의사를 처형한 후 한일 강제 병합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에 이른다.
대조전 흥복헌 안에서 순종황제의 편을 들어줄 이는 어느 누구도 없었다. 이런 순종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회의는 한 시간도 채 안되어 폐회선언과 함께 끝나버렸다. 이미 모든 것은 일본과 친일세력에 의해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8월 22일, 순종의 날인까지 받은 일본은 다음 작전으로 들어갔다. 우선 조약 체결을 비밀에 부쳐두고 한반도 내 각종 사회단체의 집회를 철저히 봉쇄하여 원로대신들을 가택연금시킨다. 언론탄압으로 백성의 귀를 막고 사회 지도층의 움직임까지 원천 봉쇄한 후 병합사실을 발표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리고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과 일본제국은 합의하에 합병되었다고 공포한다. 창덕궁 대조전은 조선의 마지막 왕이 승하한 곳이며, 519년 조선왕조 영욕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서글픈 역사의 현장이다. - <조선 궁궐 사건> 중에서
세 번째 통감 데라우치는 <대한민보>를 폐간하고 <대한매일신보>를 판매 금지하는 등의 언론탄압으로 한국인들의 눈과 귀를 막아 버린 후 조정을 친일파로 구성한다. 그리하여 친일파들의 적극적인 지지로 한일강제병합을 진행, 선포하기에 이른다. 이 정도가 올해 100주년이 되는 경술국치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이다.
창덕궁 대조전은 이처럼 경술국치의 치욕과 통한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대조전 흥복헌은 마지막 어전회의가 열린 곳이다. 얼마 전 창덕궁에 갔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창덕궁 대조전은 장희빈이 부귀영화를 꿈꾼 곳 정도로 기억하고 있던지라 보물 제815호로 지정된 창덕궁 희정당에 관심이 우선 머물렀었다.
쏭내관이 들려주는 조선시대 크고 작은 이야기들또 다른 궁궐들, 그 궁궐들의 다른 전각들이라고 특별하게 바라 봤으랴만, 경술국치 100년이 되는 올해, <조선궁궐사건>(지식프레임 펴냄) 을 통해 만나는 경술국치의 현장 중 한곳인 '창덕궁 대조전'은 남다르게 보였다. 창덕궁 대조전뿐이랴. 책을 통해 만나는 궁궐의 전각들이 다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