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를 못 당한 고추신념과 현실의 괴리 속에 갈등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홍광석
21일, 우리 고추를 본 이웃 송씨 아주머니도
"요즘 농약 안 친 고추가 어디있느냐?"
"시장에서 농약 안 친 고추를 사먹을 수 없다."
"잘 된 고추를 버리겠느냐?"고 하면서 자신이 쓰던 약을 들이밀었다. 독한 마음으로 약통을 짊어졌다. 그러나 약을 쳤음에도 노린재는 줄어든 것 같지 않았다.
기왕에 버린 다짐, 다시 한 번 더해보자. 농협에 갔더니 친환경 농약이라고 '스파이더'라는 약병을 내민다. 24일, 두 번째 약통을 짊어졌다. 비닐하우스 안은 물론 밖의 텃밭에도 뿌렸다. 잠시 후 강한 비가 내리는 바람에 텃밭에 심은 농약은 허사로 끝났지만 서운하지는 않았다. 찜찜했던 마음이 씻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25일), 비닐 하우스안의 고추만 살폈더니 노린재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꼭 소중한 것을 놓친 기분이다. "우리가 조금 덜 친 것으로 위안을 삼자"는 아내의 말에도 왜 이렇게 마음은 개운하지 못하다. 환갑 나이 값을 못하는 것도 같다.
탄저병 예방약은 더 독하다는데, 아직 병은 오지 않았지만 탄저병에 대한 예방도 해야 하나? 좋아하는 열무 농사를 포기 했듯이 내년에는 아예 고추 농사를 포기해야 하나? 고추농사, 참 어렵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겨레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