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인상
이상기
왕인, 그는 어떤 사람인가? 왕인은 백제 제14대 근구수왕(375-384)때 이곳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 성기동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8세 때 월출산 주지봉 기슭에 있는 문산재에 들어가, 유학과 경전을 수학했다.
그는 약관 18세에 벌써 오경박사가 되었다. 그리고는 17대 아신왕(392-404)때 일본 응신천왕의 초청을 받아 영암의 상대포에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갔다고 전해진다. 당시 왕인은 32세였다. 그는 논어 10권과 천자문 1권을 가지고 갔으며, 일본인들에게 한문을 가르쳐 학문과 인륜의 기초를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왕인박사 유적지에는 모두 38가지 유적과 시설물이 있다. 이들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입구에 왕인박사 기념관인 영월관이 있고, 가운데 왕인박사 사당이 있으며, 주지봉 아래 왕인이 공부하던 문산재와 책굴이 있다. 그러므로 왕인박사의 자취가 남아있는 곳은 주지봉 기슭의 문산재, 양사재, 책굴, 왕인석상이다.
영월관, 사당 등은 모두 1985년 이후 만들어진 것으로 역사성은 부족하다. 영월관에 들어가 보니 왕인관련 유물의 복제품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왕인을 통해 맺어진 한일 문화교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래서인지 일본 사람들이 이곳을 많이 찾는다고 한다. 그러나 소위 오리지널은 하나도 없고, 카피만 있어 아쉬움이 크다. 요즘 콘텐츠만으로도 박물관을 만드는 세상이라지만 이건 좀 지나친 감이 든다.
국보 해탈문은 '수리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