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도서 선정이 이상해요", 공익제보 묵살한 학술원

기준 맞지 않는 책 뽑았다가 '선정 취소' ...교과부·국가권익위·감사원, 민원제기에 '모르쇠'

등록 2010.07.19 10:56수정 2010.07.19 10:56
0
원고료로 응원

대한민국 학술원 '기초학문육성 우수학술도서 선정지원사업' 심사에 의혹을 제기한 공익제보에 대해 학술원 측이 전혀 문제가 없다고 이를 묵살해 오다가 인터넷을 통해 이 내용이 알려지고 감사원이 조사를 지시하자 문제가 된 해당 도서를 선정 대상에서 취소해 논란이 되고 있다.

 

게다가 사실로 확인된 공익 제보를 초기 단계에서 학술원 측이 묵살하고, 민원을 접수한 교과부와 국민권익위원회가 운영하는 국민신문고 모두 별다른 조사도 없이 출판사 측 입장을 대변했다. 또한 감사원이 학술원의 심사과정에 의혹이 있다는 민원을 접수하고도 이를 의혹 당사자인 학술원 측에 조사하라고 이관하는 등 정부 민원처리가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학술원이 2002년부터 매년 기초학술도서 및 동서양 고전 우수 국역서를 선발해 대학과 연구소 등에 보급해 오고 있는 선정사업과 관련, 김아무개씨(가명)가 학술원이 6월 1일 발표한 478종 512권의 2010년도 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중 1종이 '2009년도에 국내에서 초판 간행된 도서'라는 선정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도서임을 우연히 확인하고 학술원에 이의 시정과 함께, 유사한 사례가 있는지 확인을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공익제보 묵살한 학술원

 

김씨의 주장은 2009년도판 <메디칼스킨케어>(professional edition)가 2004년도에 이미 발간된 도서인데다가 그 내용이 거의 동일해 개정판이나 증보판으로 봐야 하며 따라서 선정기준인 '초판' 발행 조건에 부합하지 않은 도서인데 우수학술도서에 선정됐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학술원 담당 주무관은 김씨에게 '심사위원과 심사위원장과 협의해 보았으나 선정 결과를 번복할 정도로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통보했다. 김씨는 이에 학술원 상급기관인 교육과학기술부 홈페이지 '장관과의 대화'를 통해 학술원 지원사업 결과에 잘못된 점이 있다며 문제를 지적하고, 국민권익위원회 국민신문고에도 동일한 내용으로 민원을 올린다.

 

그러나 교과부 측은 6월 15일 오후 3시 48분에 학술진흥과 신아무개 사무관 이름으로 문제가 제기된 도서의 등록(ISBN)이 초판으로 되어 있고 2004년도에 발간된 도서는 학생용, 2009년도에 출판된 도서는 교수용이며 새로운 내용이 90여 페이지 추가되었으므로 새로운 저작물로 판단되니 아무 문제가 없다는 내용의 메일을 김씨에게 송부한다. 그리고 1시간 37분 후인 5시 25분에는 국민신문고의 답변이 김씨에게 도착했는데, 그 답변 역시 교과부 학술진흥과 신 사무관이 보낸 것으로 내용 역시 똑같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학술원 상급기관인 교과부와 국민권익위원회가 운영하는 국민신문고 모두 확실한 증거를 바탕으로 한 신빙성 있는 제보를 조사해 보지도 않고 "아무 문제가 없다"고 일관하는 것을 보고 정부 민원처리가 '제식구 감싸기'로 진행되고 있다고 분개했다.      

 

제보를 접수한 필자는 우선 학술원 담당 주무관과 통화를 통해 김씨의 문제제기에 대해 '이상없다'라고 결론 내린 심사위원들의 명단 공개를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담당 주무관은 "김씨의 지적이 사실이라면, 그래서 문제제기처럼 심사과정에서 심사위원들이 이를 미처 걸러내지 못한 것이라면 다른 타분야의 선정 도서중에서도 이런 비슷한 사례가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 않냐"는 필자의 질문에 "그럴 수 있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학술원 측은 "학술원의 지원사업에 의혹이나 착오는 있을 수 없다"며 김씨의 문제제기를 계속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필자는 2004년도판과 2009년도 <메디칼스킨케어>를 확보해 이를 비교했다. 그 결과 2009년도판이 저자가 4명에서 22명으로 확대되었다고 하나 2004년도판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는 부분이 상당수라 이를 오히려 개정판이나 증보판으로 볼 수 있을지마저 의문이 갈 정도였다. 게다가 학술원과 교과부, 국민신문고 모두 앵무새처럼 동일하게 표방했던 "2009년도판 <메디칼스킨케어>는 학생을 지도하는 교수용이라 초판으로 보았다"는 심사 결과와는 달리, 해당 도서의 대표 저자 3인의 머리말에서 해당 도서가 전문가는 물론 학생이나 화장품에 관심있는 사람 모두에게 도움이 되도록 구성하였다고 밝히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학술원과 교과부 모두 이런 간단한 기초 조사조차 진행하지 않았다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이러한 증거가 있음에도 학술원 측은 이를 조사하기는커녕 김씨에게 "원하는 것이 뭐냐, 만나자"며 계속 김씨의 문제 제기를 종결하려 했고, 김씨는 감사원에 조사 요구 민원을, 필자도 더 이상 학술원측의 대응을 신뢰할 수 없어 이 문제를 인터넷을 통해 고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문제는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감사원은 학술원 측의 사업 심사과정에 의혹이 있다는 김씨의 민원을 받고선 이를 학술원 사무국이 조사할 사항이라며 민원 내용을 학술원측에 인계한다. 의혹을 받고 있는 당사자에게 스스로 조사를 하라는 엉뚱한 민원 처리를 한 셈이다.

 

결국 우수학술도서 선정 취소 공고

 

 학술원이 7월 16일 발표한 우수학술도서 취소 공고문
학술원이 7월 16일 발표한 우수학술도서 취소 공고문 학술원
학술원이 7월 16일 발표한 우수학술도서 취소 공고문 ⓒ 학술원

감사원으로부터 조사를 받기는커녕, 스스로 조사하라고 권한을 위임받은 학술원은 7월 12일자 학술원 홈페이지 공지사항에 이미 지난 6월 1일 발표한 우수학술도서 선정 목록을 아무 사유도 없이 다시 개제하면서 문제가 된 도서를 슬그머니 선정 도서에서 삭제했다. 그러면서 6월 1일에 이미 홈페이지에 올린 우수학술도서 목록 공지사항을 수정해 여기에 <디칼스킨케어> <운동과 에너지대사>,<패턴인식개론>이 2009년도 초판도서가 아닌 것으로 확인되어 취소 대상임'을 짤막하게 공지하고 이후 7월 16일 학술원 홈페이지 공지사항에 공식적으로 취소 공고를 발표한다. 김씨의 문제 제기가 사실로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김씨가 한달이 넘게 수차례에 걸쳐 문제를 제기했지만 아무 문제가 없다던 학술원은 감사원으로부터 민원 이관을 받은 후 며칠만에 해당 도서를 우수학술도서에서 취소한 것이다.  그러나 의혹은 여전히 남는다. 

 

김씨의 문제제기에 대해 학술원과 교과부 모두 해당 도서가 새로운 저작물로 판단된다며 우수학술도서 선정에 문제가 없다고 일관해 왔다. 또한 이 결과는 심사위원들이 공정하게 심사한 결과라고도 했다. 그런데 이 내용은 필자가 통화한 해당 출판사 관계자의 입장과 동일했다. 그렇다면 해당 출판사는 정말 자신들이 출판한 도서가 초판이라고 생각했을까? 출판사측이 우수학술도서에서 취소된 이 도서가 초판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도 이 사업에 지원했다면 고의로 국가기관의 업무를 방해한 형법 제314조 업무방해죄를 위반한 것이며, 해당 도서가 우수학술도서에 선정되었다 취소되면서 발생한 공무의 차질에 대해서는 형법 제137조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에 해당할 수 있다. 학술원은 왜 이 출판사에 대해 아무런 법적 절차를 묻지 않는 것일까?

 

문제 제기된 해당 도서가 김씨의 주장대로 심사기준과 맞지 않음이 밝혀져 취소 확정된 이상, 공익 제보를 초기 단계에서 묵살한 학술원 담당자는 형법 제122조 직무유기죄에 해당하며, 해당 심사위원단을 공개하고 위원단을 교체해야 하며, 교과부는 불공정한 공무 행위에 대한 민원을 기초 조사없이 학술원측 입장만 대변해 동일한 민원을 지속하게끔 방치하고 정당한 공익 제보를 제한한 책임을 져야 한다.

덧붙이는 글 <나눔뉴스><한강타임즈> 에도 비슷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학술원 #우수학술도서 #교육부 #감사원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학부와 대학원에서 모두 NGO정책을 전공했다. 문화일보 대학생 기자로 활동했고 시민의신문에서 기자 교육을 받았다. 이후 한겨레 전문필진과 보도통신사 뉴스와이어의 전문칼럼위원등으로 필력을 펼쳤다. 지금은 오마이뉴스와 시민사회신문, 인터넷저널을 비롯, 각종 온오프라인 언론매체에서 NGO와 청소년분야 기사 및 칼럼을 주로 써오고 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2. 2 쌍방울 김성태에 직접 물은 재판장 "진술 모순" 쌍방울 김성태에 직접 물은 재판장  "진술 모순"
  3. 3 컴퓨터공학부에 입학해서 제일 많이 들은 말  컴퓨터공학부에 입학해서 제일 많이 들은 말
  4. 4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5. 5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