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넨처리는 하우스맨 일 중에서 가장 고되고 힘들다. 카트 속에 가득 차있는 린넨들
김상윤
임금, 교육, 휴가...... 비정규직은 당연히 차별 "영어 못하는데 어떻게 하죠?"
우중씨가 저녁 근무를 들어가면서 걱정이 태산이다. 낮 근무와 달리 저녁엔 고객과 직접 마주쳐서 얘기를 해야 할 때가 종종 있다. 민수씨가 끼어들었다. "그럴 땐 그냥 멍한 표정을 지으면 돼요." 두 달 가량 저녁 근무를 해 본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이다. 안 되는 영어로 더듬거리기보다 눈만 끔뻑이고 있다 보면 고객이 알아서 프론트로 연락한다는 것이다. 현실적인 처방이었지만 서글펐다.
미니바 담당이자 하우스맨 관리자인 태준(가명,34)씨는 내게 "호텔에서 계속 일하고 싶으면 영어 공부를 꾸준히 하라"고 조언했다. 정규직 편성도, 승진도 영어 실력이 뒷받침이 돼야 한다. 호텔에선 직원들에게 1주일에 두 번 영어교육을 했다. 서비스, 리더십, 독서 등 다양한 교육프로그램도 마련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정규직 대상일 뿐, 하우스맨에겐 해당되지 않는 얘기였다. 하우스맨이 '호텔리어'로 신분상승을 하려면 스스로 영어공부를 해야 하지만, 시간도 돈도 없다. 대성씨는 비교적 싸고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전화영어'를 몇 번 시도했다. 하지만 돈만 들고 별로 늘지 않아 그만 두었다.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은 교육 기회만이 아니다. 수당이나 휴가도 마찬가지다. 오후 1시 반부터 밤 10시까지인 저녁 근무를 하다 보면 퇴근 1~2분 전에 주문이 떨어질 때가 많다. 처리하다 보면 30분, 1시간씩 늦어지기도 한다. 이런 경우 정규직원은 추가수당을 받는다. 경우에 따라 택시비도 지급된다. 그러나 비정규직은 연장 근무를 해도 추가수당이 없고, 버스를 놓치면 집까지 갈 길이 막막하다. 나와 함께 일하던 하우스맨들은 모두 경기도 안양 등 시외에서 몇 시간씩 걸려 출퇴근하는 형편이었다. 월차, 연차 휴가도 남의 나라 얘기다. 1년에 한 번 용역업체와 재계약을 하느라 약간의 '퇴직금'을 받는 게 보너스처럼 느껴질 뿐이다.
하우스맨들은 밥도 느긋하게 못 먹는다. 1시간 동안 교대로 식사를 하는데, 시도 때도 없이 주문이 닥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밥을 천천히 먹으면 다른 동료가 그만큼 고생한다. "밥 먹고 와서 문을 들어설 때, 쌓여있는 린넨을 보면 소화가 안 돼요." 그래서 경민씨는 일을 다 끝낸 후 편의점에서 김밥과 라면으로 한 끼를 때우기도 한다.
정규직 정착 확률은 2.5% 폼 나는 차이나 칼라 셔츠에 번쩍이는 단추가 달린 제복을 입는 태준씨는 K호텔 정직원으로, 비정규직들의 '롤모델'이다. 첫 1년은 그도 하우스맨으로 일했다. 그는 운이 좋았다. 4년 전 호텔이 미니바 사업을 시작하면서 그를 정직원으로 채용해 일을 맡겼다. 연봉 2천만 원대 초반인 그가 지난해 혼자서 올린 매출이 6억 8000만 원이다. 하우스맨 관리까지 맡고 있는 그는 늘 과로에 시달렸지만, 호텔은 인력 충원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그러다 마침내 미니바 담당 정 직원을 한 명 추가채용하기로 했다.
일을 시작한 지 5일째 되는 날 사내 게시판에 인사 발령 공문이 붙었다. 대성씨가 태준씨와 함께 일하게 됐다. 그 자리를 내심 기대했던 경민씨는 풀 죽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경민씨는 한 지방대학에서 호텔경영학을 공부하다 중퇴하고, 한강 유람선 승무원 등 아르바이트를 하다 제대 후 첫 직장으로 하우스맨 일을 시작했다. 지난 4년 동안 정말 열심히 했다고 한다. 기술팀 일까지 가리지 않고, 밥 먹는 시간도 아껴가며 최선을 다했다. 인정을 받으면 정규직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가 대성씨에게 밀린 것이 대학 졸업장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어쩔 수 없죠." 경민씨는 이제 호텔에 정착할 꿈을 접고 기술을 배우려 한다. 돈이 없기 때문에 정부가 실업자를 위해 무료로 제공하는 제빵, 미용 같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지 알아보고 있다.
하우스맨은 항구를 오가는 배처럼 호텔에 잠시 머물렀다 떠난다. 태준씨가 하우스맨 관리를 맡은 4년 동안 40여 척의 배들이 지나갔다고 한다. 모두들 적은 월급과 고된 노동, 불투명한 미래에 지쳐서 떠난 것이다. 그중 정착한 배는 대성씨 하나뿐이다. 2.5%의 정착률인 셈이다.
대성씨는 강원도의 한 대학에서 관광외식학을 전공했다. 대학 내내 아르바이트를 했다. 술집, 노래방, 조개구이집 서빙 등 안 해본 게 없다. 당장은 힘들지만 나중에 크게 되었을 때, 다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며 참아왔다고 한다. 그는 당분간 결혼할 생각도 없다. 현재 수입으로 10년 내에 결혼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불평하지 않고 '배워나간다'고 생각하는 그를 관리직들은 아주 좋아했다.
민수씨도 떠나기로 했다. 그는 워킹홀리데이 프로그램을 통해 다음 달 일본으로 갈 예정이다. 그의 꿈은 관광 가이드가 되는 것이다. 돈이 없으니 거기서도 이곳과 비슷한 일을 해야겠지만, 아무 미래가 없는 이 곳에 비해, 일본어라도 확실히 배우지 않겠냐고 생각한다.
"죄송합니다, 못 하겠네요"하우스키핑부서의 최 팀장이 하우스맨 지원자가 없다고 발을 동동 굴렸다. 한 사람이 면접을 보러 와서 한 시간 내내 하우스맨 일에 대해 설명했는데, 도저히 못하겠다며 일어났다고 한다. 일은 힘든데 겨우 최저임금을 넘어서는 수입에 비정규직, 매력적일 리가 없다. "주변에 일 하고 싶은 친구 없어요?" 최 팀장은 친구끼리 같이 일하면 좋지 않으냐며 우리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 일을 어떤 친구에게 추천할 수 있을까? 정말 급박한 사정이 아니면 이 항구에 정박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태준씨는 "하우스맨을 하다보면 호텔 일의 60%를 알게 된다"고 말했다. 그렇게 많은 일을 하는 중요한 자리이고, 늘 필요한 일인데 왜 정규직으로 쓰지 않는지 사장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결국 누군가 지쳐서 나가면 새로운 사람을 재교육 시켜야 할 테고, 그 비용은 고스란히 호텔로 돌아갈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