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에게 말걸기, 어렵네

[서평] <나는 건축가다>가 이야기하는 거장들

등록 2010.07.13 16:42수정 2010.07.13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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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 지긋한 거장들의 모습은 존경심을 불러 일으킨다.
나이 지긋한 거장들의 모습은 존경심을 불러 일으킨다.현암사
나이 지긋한 거장들의 모습은 존경심을 불러 일으킨다. ⓒ 현암사

나는 대학 때 건축을 전공했다. 신입생으로 건축에 대한 꿈을 안고 입학한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 와서 되돌아보면 전공자와 비전공자의 차이는 자신의 그림에 대한 '포장' 능력의 차이이다. 평면도를 그려놓고 '공간의 조합'을 어떻게 상대방에게 설득하느냐가 바로 건축가가 가진 능력이라 할 것이다.

 

상품을 팔기 위해 필요한 행위는 무엇인가. 신제품이 출시되기 전에 테스트하고 전문가들의 조언을 얻어서 손볼 곳을 최대한 손본 뒤에 시제품을 만들고 이것들을 홍보한다. 방법이야 많지만 언론홍보가 가장 효과적일 것이다. 출시도 되지 않은 아이폰4와 갤럭시S의 대결이 연일 언론과 포탈을 도배하는 횟수를 보면 언론플레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인상이 든다.

 

예술가라고 한다. 하지만 예술을 해서는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 아닌가.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 나의 경우에도 순수한 예술을 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비애와 내 집을 잘 짓기 위해 배운다는 생각은(고등학교 때 진학을 생각하면서)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꿈이었다는 것을 졸업 즈음에 깨달았다.

 

건축에 대한 회의가 든 것은 입학생 오리엔테이션 시간이었다. 건축이 도대체 무엇이냐고 묻는 새내기에게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이 어디있냐고 단숨에 무시해서 깔아 뭉게는 교수를 보고 혹시 설명하기 힘들어서 저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면서였다. 학부시절에 접했던 수많은 교수들과 실무를 하고 있는 겸임교수들을 보면서 굳어졌다.

 

실재로 작품이 거의 없는 교수들의 경우에도 학생들의 작품을 조언하는 데에는 지나치게 차가운 면이 있었다. 그렇게 해야 학생 입장에서 자극도 받고 공부도 하게 된다는 생각이었겠지만 오히려 역효과를 내서 건축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정작 작품을 해석하고 조언하는 데에 쓰는 말들을 듣고 있으면 안드로메다에 둥실 떠가는 느닷없는 흰 구름떼를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자신의 작품을 해석하는 데에 있어서는 달랐다. 온갖 화려한 수사는 물론이고 상투적이라 소름이 돋는 단어를 가져다 붙이는 데에 주저하지 않았다. 일반인과의 구분을 두기 위해서라고 생각되는 현학적인 수사도 남발했고 전문적이지도 않은 영어단어들을 조합해서 설명하는 일은 듣는 학생들도 구역질나는 것이었다.

 

성의있는 태도, 가르침에 대한 열정을 보기 힘들었다. 고압적인 자세로 붉은 펜을 그어 설계의 오류를 지적하거나 설명에 대한 말꼬리를 잡는 일이 대학 때 배운 설계수업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군대를 다녀오고 나니 유학파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던 때에 좀더 개방적이고 수평체계적인 국내건축계의 움직임에는 꽤 관심이 생기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은 직장이 한국 어디에 있을까 싶겠지만 특히나 설계쪽 일은 바닥을 박박 기고 경력이 쌓여야 자신의 뜻을 펼칠 기회가 주어지는 경향이 있다. 물론 자격증을 따서 독립할 수는 있지만 수많은 연줄로 이어지는 건축계에서 '거장'들과 경쟁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집에 못 들어가고 회사에서 먹고 자는 것이 당연한 마감이 반복되는 생활과 최저생계비에 근접하는 급여 등이 오늘 한국의 거장을 꿈꾸는 건축가들의 현실이다.

 

건축은 일상이다. 공간에 관한 아름다움과 기능에 충실하는 것이 기본이다. 보는 이로 하여금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입체의 구성, 사는 사람 또는 사용하는 사람들이 그 공간에서 좀더 편리하고 만족스러운 행위를 연출할 수 있으면 좋은 건물, 좋은 건축이 되는 것이다.

 

시대적 소명을 따지자면 오히려 지구온난화와 환경오염에 대한 문제를 적극적으로 풀어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어떠한 기준의 열효율을 가지는 재료를 쓰며 재활용을 할 수 있는 것인지, 난방방식의 개선, 재생에너지와 우수의 활용 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현실의 건축가들은 여전히 수입재료들과 고급자재로 치장한 아웃테리어와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것쯤이야 기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나는 건축가다>(한노 라우테르베르크 지음, 현암사 펴냄)는 거장에게 배운다거나 예비건축사들이 가지고 있는 물음에 답을 주는 책이 아니다. 건축 잡지의 인터뷰어(저자)가 거장을 만난 기념으로 남기고 싶었던 자신의 업적을 정리해 놓은 자서전 성격에 가깝다. 건축가들이 가지고 있는 '진짜 생각'에는 조금도 접근하지 못하는 통상적인 질문들은 전문 인터뷰어로서 자질을 의심하게 만든다.

 

물론 가끔 날카로운 질문으로 세계적인 거장을 위협하는듯 하지만 집요함은 보이지 않는다. 거장이라면 능히 구사하는 '뜬구름잡기'나 '동문서답'하기 등의 기술들이 현란하다. 독자로서는 몇 번이고 질문과 답을 다시 되돌아 오고가지만 소용없다. 상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책을 보는 내내 어리둥절하게 만들 뿐이다.

 

결국 내가 이 책을 통해서 얻는 교훈이라면 '이름값'에 신경 쓸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정말로 건축물이 좋아서 대중들의 지지를 받는다면 그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에 대한 궁금함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대중들과 거리를 두는 언어와 행동을 할 것이 아니라 좀 더 대중 속으로 다가서고 파고들 수 있는 예술가가 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거장 건축가들(귄터 베니쉬, 피터 아이젠만, 노먼 포스터, 프랭크게리, 자하 하디드, 필립존슨, 램쿨하스, 다니엘 리베스킨트 등)은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에도 선망의 대상이던 이들이 대부분이다. 이 책이 호기심을 충족할 만큼의 수준이 되지 않더라도 그들에 한걸음 더 다가가는 역할은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까지 수십 년 동안 거장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보면 그들이 가진 능력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국내에도 그들의 작품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즐거움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나는 건축가다/ 한노 라우테르베르크 지음·김현우 옮김/ 현암사/ 12,500\

2010.07.13 16:42ⓒ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나는 건축가다/ 한노 라우테르베르크 지음·김현우 옮김/ 현암사/ 12,500\

나는 건축가다 - 20인의 건축 거장, 삶과 건축을 말하다

한노 라우테르베르크 지음, 김현우 옮김,
현암사, 2010


#나는건축가다 #ARCHITECT #건축가 #거장과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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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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