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학교시대는 끝났다 표지
신인문사
'더아모의 집', 10년 전부터 경기도 안성에 와서 내가 일구어가고 있는 세상이다. 수년 전 독거노인 반찬봉사, 이발봉사, 주민차량 봉사 등을 할 때도 '더아모의집'에 놀러 온 마을 청소년들에겐 '봉사'란 단어는 붙이지 않았다. 그들은 나의 친구였다. 그 시절, 오죽하면 현재 고등학생이 되어버린 나의 친딸과 '더아모의집'에 놀러왔던 마을 청소년들 사이엔 전혀 구분이 없었다.
그동안 '더아모의집'과 함께 한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살펴보니 이렇다. 어머니가 가출하는 바람에 학교를 마음잡고 다니지 못해 방황하던 한 초등생이 '더아모'와 함께 고민한 결과 2010년도에 무사히 고교를 졸업했던 소녀의 이야기. 잦은 부모님들의 싸움과 불안정한 가정형편 때문에 학교생활마저 힘들었던 한 소년이 2010년도에 무사히 대학으로 진학한 이야기. 부모님으로부터 버림 받고 친척집에서 자라며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방황하던 소년이 현재 고교에서 밴드부로 활약하고 있는 이야기. 정신병을 얻은 어머니와 무관심한 아빠, 그리고 폭력적인 오빠 때문에 집을 뛰쳐나와 방황하던 소녀가 등록금이 없어 대학을 진학 못 하고 있을 때 '더아모'와 많은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도와서 대학으로 진학시켰던 이야기 등등. '더아모'엔 청소년들과의 부대낀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선택의 폭 넓혀 주려고 이런 나에게 이 책을 쓰는 목적은 한 가지다. 학교 때문에 고통 당하고 괴로워하며 심지어 자살의 문턱에까지 이르는 청소년들에게 조금이라도 숨통이 트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학교가 무슨 '청소년 잡는 괴물'쯤으로만 오해하는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다. '탈학교'가 회자되는 이 시대에도 대다수 청소년과 학부모들에겐 여전히 학교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그 무엇'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더군다나 정부에선 '사교육'을 '범죄행위'인양 몰아붙이며 '사교육을 근절하고 공교육(학교)을 강화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런 한국적 상황에서 '학교시대는 끝났다'는 제목의 책이 가당치 않을 수도 있겠다. 강화 되면 되었지 약화되지 않을 것 같은 학교에 대한 신앙에 무모한 도전장을 내미는 것이라 할 수도 있겠다. 유치원 때부터 줄을 잘 선 후, 초등학교와 대학에 이르기까지 명문으로 스펙을 만들면 출세가 보장되는 줄 아는 나라에서 학교 시대의 종말을 이야기 하는 것은 어쩌면 시대적 반역일 수도 있겠다. 학력위조, 특히 유명 인사의 학력 위조행위가 각종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나라에서 학교시대가 지나가고 있음을 논하는 것은 무지의 소치라 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사회에서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학교 문제엔 모두 민감하다.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숙제로 남아 있다. 학교를 진단하는 연구논문과 서적, 그리고 탈학교에 관한 서적 등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청소년들의 시각에서 학교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들의 입장에서 학교생활이 어떠한지, 학교를 탈출한 당사자들의 입장과 현실은 어떤지를 다루는 책은 그리 많지 않다. 어른들이 어른들의 시각으로 쓴 책들 대부분이다. 그나마도 한국 작가에 의해 한국 정서를 담은 '탈학교'에 관한 책은 보기 드물다.
또한 이 책은 이반 일리히가 주창했던 '탈학교론'의 당위성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탈학교론'이라는 당위성보다는 현상, 말하자면 학교와 직접 연관 있는 청소년들의 현실과 시대의 흐름, 그리고 미래 학자들의 미래 진단 등을 통해 지극히 현실성(작가가 인식한)에 기초해서 이 책은 쓰여 졌다.
학교 현실, 생각보다 심각하더라나의 지인인 현직 교사가 말해주었다. 중고등학교 교실엔 '착한 선생과 무서운 선생' 둘만이 있다고. 청소년들에게 착한 선생은 수업시간에 별의 별 짓을 다해도 통제하지 못하는 선생을 말한다. 그가 아무리 능력 있는 교수법과 실력을 가진들 소용이 없다. 반면 무서운 선생은 청소년들의 모든 행동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처벌하는 선생이다. 그 선생의 수업시간엔 마치 군대 훈련시간처럼 청소년들이 말을 잘 듣는다고 한다. 그가 실력이 부족해도 그를 잘 따른다. 아니 따르는 척 한다.
"수업 듣는 학생 37명 중 3명도 안 된다(오마이뉴스 김기환 기자 09.08.01)"는 보고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고등학생 그들이 밝히는 학교 수업시간은 '수업시간이 수면시간'이었다. 그것은 초등학교 교실도 예외는 아니었다. 2008년 양천구 학부모 세미나에서 김판수 교수가 밝힌 이야기가 교실 실태를 말해주고 있다. 현직 초등학교 교장이 교실을 둘러보고 난 후 "학생들 중 1/3은 몰라서 자고, 1/3은 학원에서 다 배워서 자고. 나머지 1/3은 그나마 깨어있다. 알고 보니 그 녀석들은 학원 숙제하느라 깨어 있었다"고 말했단다.
이러한 현실 앞에 학교를 강조하는 학부모는 두 가지 부류다. 학교 수업의 현실을 잘 알지만, 학교를 통한 스펙 쌓기가 우리 사회의 입신출세를 좌우하기에 모르는 척 눈감는 부모가 한 부류다. 또 한 부류는 "그래도 학교가면 무엇이라도 배우겠지. 아무리 그래도 우리 아이는 학교에 가서 열심히 잘 하고 있을 거야"라고 속고 있는 부류다.
이러한 현상들은 단순히 학교를 개선하고, 개혁해서 극복할 수 있는 문제일까. 아니면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할까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