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명옥헌원림산에서 흘러내린 계류를 이용하여 명옥헌 뒤에 작은 연못, 앞에 큰 연못을 만들고 주변에 배롱나무를 심어 조경하였다. 자연과 인공이 절묘한 조화를 이뤄 우리나라 원림의 표본이 되었다
김정봉
현재 남아있는 원림으로는 보길도 부용동원림, 순천 초연정원림, 담양 명옥헌원림, 소쇄원, 담양 독수정원림, 장흥 부춘정원림, 장흥 용호정원림, 화순 임대정원림, 장성 요월정원림 그리고 예천 초간정원림 등이다. 모두 호남지역에 남아있고 초간정원림만 영남에 남아있다.
이는 영호남간의 문화와 지리(地理)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원림이라는 것이 동산과 숲, 계류를 조경으로 삼고 있어 아무래도 쾌활하고 활기차며 약간 들뜨게 하는 맛이 있는 영남보다 지세가 완만하고 평평하며 아늑하게 감싸는 포근한 맛이 있는 호남이 원림을 조성하기에 더 유리하였다고 봐야한다.
호남은 정자를 짓더라도 거기에 주저앉아 자연을 가꾸고 살집으로 만든 반면 영남은 장쾌한 자연 속에 안주하고 거주하기보다는 간헐적으로 휴식과 학습할 목적으로 정자를 지었다.
또 다른 이유, 문화와 정치에 따라 영호남의 정자문화와 원림문화가 달라진다. 기묘사화후 사림파는 중앙정치무대에 연연하지 않게 되는데 영남사림은 서원과 서당을 중심으로 학맥을 유지하였고 호남사림은 누정과 원림을 중심으로 지방문화를 이어 갔다.
자연적으로 영남의 정자는 생활공간이기보다는 휴식공간 성격이 더 컸다. 반면 호남은 정자와 원림중심으로 은둔과 은거생활을 하여 정자와 원림은 생활공간이고 학습공간이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영남의 누정은 계곡과 강변의 경승지에 세워졌고, 호남의 누정 혹은 원림은 생활현장에 세워졌다.
경북 예천 초간정원림은 호남에만 남아있을 법한 원림이 영남에 남아 있어 이색적이다. 사실 초간정은 원래 학문에 정진하기 위한 초간정사였음으로 학습공간 성격이 강하여 경승지에 세워진 다른 영남의 정자들과 성격이 좀 다르다.
그러나 정원개념으로서 원림이라면 모를까 호남의 원림문화까지 초간정원림에 대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초간정에는 초간정 주위를 100번 돌면 과거에 합격한다는 전설과 관련된 일화가 전한다. 한 선비가 99번을 돈 뒤 현기증으로 난간 밖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게 되자 그 장모가 도끼를 들고 와 기둥을 찍었다고 한다. 이 일화로 미루어 헤아려 볼 때 초간정원림은 서원과 서당과 같은 성격을 갖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호남의 누정과 원림문화와 성격을 좀 달리하고 오히려 영남사림의 맥을 잇고 있다고 볼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