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외교' 실패... "유엔, 남북대화·6자회담 주문"

[분석] 남북문제 국제화한 이명박 정부 행태 타격 받아

등록 2010.07.09 17:47수정 2010.07.09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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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15일 오후 백령도 인근에서 인양된 해군 초계함 '천안함' 함미가 바지선에 올려져 있는 가운데, 절단면에는 그물이 설치되어 있다.
4월 15일 오후 백령도 인근에서 인양된 해군 초계함 '천안함' 함미가 바지선에 올려져 있는 가운데, 절단면에는 그물이 설치되어 있다.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지난달 4일 천안함 사건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할 때 정부의 목표는 ▲새로운 대북 (제재 또는 비난) 결의안(Resolution) 도출 ▲천안함 사건의 범인으로 북한 지목해 규탄 ▲북한의 사과 ▲재발 방지 ▲ 책임자 처벌 등이었다. 이같은 목표를 정하는 데는 이명박 대통령의 의중이 깊게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안보리 상임이사국 P5(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와 한국, 일본이 합의한 것은 유엔 제재의 강도에서 결의안보다 한 단계 낮은 의장성명(Presidential Statement)이었다. 안보리 논의가 '의장성명'으로 떨어지자 정부는 북한을 명시하는 데 집중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안보리가 8일 합의했고 최종안과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 의장성명 초안은 '북한이 범인'이라는 문구 대신, 강대국들의 의견을 짜깁기한 애매모호한 문안들로 채워졌다.

"남북한 주장 병기... G8성명보다 낮은 수준"

이정철 숭실대 정외과 교수는 이번 성명 초안에 대해 "지난달 나온 G8의 천안함 사건 성명보다 낮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G8 성명이 "천안함이 북한의 공격으로 침몰했다는 합동조사단의 발표맥락에서 천안함에 대한 공격을 규탄한다(We condemn, in this context, the attack which led to the sinking of the Cheonan)"고 한 것에 비해, 이번 성명 초안은 "깊은 우려 표명"(expresses deep concern)으로 떨어졌다. 또 사건과 무관함을 주장한 북한의 주장을 남한의 주장과 병기한 뒤 "결론적으로(therefore), 안보리는 천안함 침몰을 초래한 공격(attack)을 규탄한다(condemn)"고 했다.

이 교수는 "전체적으로 정부의 외교 실패"라면서 "중국이 들어가 있지 않은 G8의 성명을 보면서 정부가 상황을 바로 파악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외교통상부는 "나름대로 만족할 만한 성과가 이뤄졌다"고 자평하고 있다.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기자들에게 "우리 민군 합조단의 조사 결과에 비추어 안보리가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며 "직접적인 명시는 없었지만, 북한이 천안함 침몰에 책임이 있고 그에 따라서 천안함 침몰을 초래한 공격을 규탄한다는 점이 명시됐다"고 자평했다. 또 "책임자 처벌에 대한 요구도 적절히 반영돼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그것은 정부의 주장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공격'(attack)이라는 표현과 남북한 주장에 대한 분량 차이는 있지만, 양측 주장이 병기됐다는 점에서 이는 남한의 조사결과에 대해 유엔이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이라는 평가다.


김 교수는 "1874호 등 북한의 핵실험 등에 대한 유엔결의안들은 쟁점을 최대한 조정해서 합의할 수 있는 수준으로 낮춰진 반면, 이번 초안은 쟁점에 합의하지 못했기 때문에 남북한의 주장이 병기되고 전체 문안이 일목요연하지 않다"며 "최종문안에서는 일부 조정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정부의 천안함 조사 결과가 중국과 러시아를 설득하지 못하면서 이들의 반대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중국은 북한을 공격주체로 명시하는 데 시종일관 반대했다. 결국 중국은 '천안함 침몰이 공격에 의한 것이며, 이 공격을 규탄한다'는 문안을 수용하는 대신, 북한을 공격주체로 명시하는 것은 막았다. 한국에 직접 조사단을 파견해 '어뢰침몰'을 부인하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진 러시아의 의견도 반영됐다.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18일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 "(천안함 사건에 대한) 하나의 견해만이 폭넓게 유포되고 있지만, 우리는 이를 즉각적으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까지 했었다.


"결국, 중국에 막혔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대북심리전 실행도 어렵고, 경제제재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외교전에 집중했지만, 중국에 막히면서 두루뭉술한 문안이 나왔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문제는 이런 상황이 이미 다 예상됐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명박 정부가 중국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후 국면은 어떻게 전개될까. 미국과 중국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가 핵심 요인이 되겠지만 이명박 정부는 어려운 처지에서 출구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특히 조사단까지 파견했던 러시아가 '북한의 어뢰 공격' 주장을 부인하고 나선 것은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향후 미국의 대북제재조치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이다.

전문가들은 성명 초안의 "안보리는 한국 정전협정의 완전한 준수를 촉구하고, 분쟁을 회피하고 상황 악화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적절한 경로를 통해 직접 대화와 협상을 가급적 조속히 재개하기 위해 평화적 수단으로 한반도의 현안들을 해결할 것을 권장한다"(10항)는 대목을 주목하고 있다.

사실상 6자회담 재개와 남북대화를 통해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라는 안보리의 주문이며, 정부가 이를 방향을 바꾸는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정철 교수는 "이번 성명초안은 남한에 대해 체면은 살려줄 테니 여기서 상황을 정리하라는 뜻"이라면서 "이명박 정부가 출구전략을 찾지 않으면 더 어려운 상황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혹시 여기서 더 강하게 나갔다가 러시아가 '천안함 침몰 원인 조사 결과 보고서'를 공개하는 망신을 당하게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천안함 사건 후속대책 논의를 위해 방한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과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5월 26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별관 국제회의장에서 한·미 외교장관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사태와 관련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천안함 사건 후속대책 논의를 위해 방한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과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5월 26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별관 국제회의장에서 한·미 외교장관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사태와 관련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한국, 이제 그만 하고 출구전략 찾으라'는 것이 안보리 메시지"

김연철 교수는 "의장성명에 이후 국면에 대한 한미와 중국 양쪽의 입장이 다 들어가 있다"면서 "'공격'(attack) 표현을 강조하는 한미는 제재를 말하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이 정도까지 했으니 6자회담으로 가자는 국면이기 때문에 미국과 중국이 어떤 출구전략을 내놓을지가 주목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와 함께 "한국과 미국으로서는 PSI(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 훈련이나 한미 서해연합훈련을 실시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천안함 사건 자체와 관련해서는 "안보리가 한국의 침몰 원인 조사 결론에 합의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번 의장성명은 천안함 침몰 사건이 미궁 국면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이후 더욱 많은 의혹이 제기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천안함 사건에 대한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은 2008년 7월의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파동과 함께, 남북관계를 국제문제화한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당시 정부는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을 포럼 의장성명에 넣었다가, 북한의 반발로 최종 문서에서는 삭제되는 망신을 당했었다. 남측에 대응해 북측이 10·4 정상선언 지지 내용을 넣겠다고 나서, 결국 두 가지 모두 삭제됐었다.
#천안함 #유엔 안보리 #6자회담 #의장성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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