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는 자신의 노트에 "We should apolgize to Asia."라고 썼다.
이명주
나보다 키도 작고 나이도 어린 요시가 커 보이는 순간이었다. 그는 아직도 청산 안 된 과거사들에 대해 일본이 적극적인 해결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도 했다. 그리고 요시와 나는 "우리와 같은 젊은이들이 일본과 한국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과거의 부정이나 맹목적인 미움은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사실과 함께.
내가 원폭자료관 등을 보고 와서 처참한 기분으로 앉아 있을 때였다. 요시가 왜 기분이 안 좋냐고 해서 "원폭 피해자 대부분이 정치인이나 군인이 아닌 너와 나 같은 일반인이었다. 그래서 화가 난다"고 답했다. 그러자 돌아온 그의 말이 또한번 나를 놀래켰다.
요시는 "피폭은 엄청난 비극이었지만 그것은 일본이 자초한 일"이라고 했다. "당시 일본인 대부분이 전쟁에 찬성했다"는 것이다. 요시의 부모님은 항상 역사를 공부하라고 했는데, 그렇게 자국의 역사를 알면 알수록 "매우 절망스러웠다"고 덧붙였다.
내친 김에 오래도록 궁금했던 '할복' 문화에 대해서도 물은 적이 있다. 할복으로 생을 마감한 인물을 그 업적과 함께 자랑스럽게 여기는 듯한 글을 여러 번 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역시 요시였다. 그는 "많은 일본인이 그것이 '용감하고 남자답다'고 생각하지만 모든 생명은 매우 소중하다. 그래서 옳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최근 한국에 돌아와 요시의 메일을 받았다. 그는 최근에 읽은 역사책과 우리가 함께 있을 때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전했다. 영어가 상당히 서툰 요시가 아마도 부지런히 사전을 뒤적여 작성했을 편지 중에서 평화에 관한 그의 생각을 옮겨본다.
'I think the peace is daily thing.(나는 평화가 일상의 모든 것이라 생각한다.)For example, it is eating dinner talking with our family, taking a walk on a sunny day, taking a tea within reading a book, seeing the children and the parents playing in the park, seeing somebody's smiles, and so on.'(가족과 함께 밥을 먹고, 맑은 날에 산책을 하며, 책을 읽으며 차를 마시고, 공원에서 노는 아이와 부모, 누군가의 미소를 볼 때처럼…)<중략>Maybe we can't understand peace only through studying the history of world war. (전쟁의 반대개념으로서 평화가 아닌 일상의 모든 관점에서 그것을 이해해야 한다는 의미다.)나는 두 번의 일본 여행에서 두 명의 일본인으로부터 사과를 받았다. 한 번은 교토의 미미즈카(귀무덤) 앞에서 교코(61)씨로부터, 두 번째가 나가사키의 요시에게서다. 따지고 보면 그것은 그들이 사과할 일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은 마치 어린 자식이 아버지나 할머니를 대신해 똑같이 욕을 퍼붓는 어른에게 고개를 조아리는 것과 같았다.
많은 한국인들이 월드컵 한일전이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독도 망언 등의 이슈가 생길 때면 기다렸다는 듯 일본에 대한 증오를 드러낸다. 그러나 그때마다 나는 묻고 싶었다. 으르렁대는 그들 중에 과연 몇 명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을 돌아봤고, 독도가 왜 우리 땅인지를 알며, 전쟁으로 인한 비극이 오늘까지 어떻게 지속되고 있음을 주시하고 있는지. 원폭피해자추모기념관에서 본 피폭자 증언 영상에서 '미쓰비시' 공장에서 강제노역 중에 피폭 당한 한국인 할아버지(당시는 10대)의 말이 생각난다.
"한평생 일본에 살았는데, 사실 대부분의 일본인은 매우 훌륭한 사람들이다. 무척 성실하고 친절하며 절대 누굴 해하거나 거짓말하려 하지 않는다. '일본의 정부가 이 나라 국민들을 본받는다면' 결코 지금 같이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내가 만난 일본인들을 떠올리면 이 말에 100% 동감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나는 일본의 모든 곳을 가보진 않았다. 당연히 모든 사람을 만난 것도 아니다. 그러나 확실한 건 그곳에도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섞여 산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더이상 과거사를 이유로 일본을 싸잡아 욕하거나 "가라앉아 버려라"식의 망언은 하지 않길 바라며, 한일관계에 대한 우리의 사고가 좀더 논리적이고 대범해지길 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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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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