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박준형
권우성
작년 4월 오마이뉴스 '탁현민의 이매진'에 출연한 '갈갈이' 박준형은 연예계의 위계질서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개그맨은 모여 있고, 가수들은 모여 있지 않기 때문이죠. 모여 있으면 위계질서가 생길 수밖에 없어요. 개그맨은 갈 공간이 없어요, 희극인실 말고. 희극인실에 모이면 나이순으로 서열이 정해지고요. 어차피 집단생활이니까요. 그리고 선배 개그맨은 후배 개그맨들이 크는 데 도움을 줘요. 자기 아이디어를 줘서 후배를 키우고, 후배가 개그맨이 돼서 대박이 나면 말을 할 수 있죠. 당연히 뭐라고 할 수 있죠. 왜 그 따위로 하냐고. 또 때리면 맞고."후배들을 이끌고 있는 기획사 사장인 개그맨 박준형은 명쾌했습니다. 한데 모여 아이디어를 짜고, 또 그것이 후배들의 피와 살이 되는 공개코미디로 활동하면서 여타 연예인들과 달리 위계질서가 셀 수밖에 없다는 설명인 거죠.
한국사회의 위계질서를 까발려 인기를 얻은 '분장실의 강선생님'의 안영미씨 또한 한 방송프로그램에 나와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후배인 신봉선씨에게 군기를 잡으려고 한 적이 있다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한 위계질서 속 엄격한 분위기는 남녀 구분이 없다는 방증인 셈이죠.
2005년 8월, 개그맨 김아무개씨가 후배를 폭행했다는 이유로 형사 입건 됐던 사건은 바로 그런 환경에서 곪아 터진 것뿐일 겁니다. 엄격함을 바탕으로 한 위계질서 사회는 언제나 폭력을 정당한 수단으로 묵인해 왔죠. 비극은 그것이 21세기, 그리고 화려해 보이는 연예계에서도 잔존해 왔다는 점일 겁니다.
위계질서, 권력 가진 방송사가 먼저 나서라연말 방송사 예능 시상식을 보면 <개그 콘서트> 출연 수상자들의 수상 소감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대상이 둘 있습니다. 크리스찬이 감사를 표하는 하나님과 수상자 대다수가 통과의례처럼 김석현 PD의 이름을 호명하죠.
희극인들의 위계질서를 하나의 먹이사슬로 비유한다면 그 정점에는 PD와 방송사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소소하게 코너를 방영하는 편집권부터 기성은 물론 신인들의 캐스팅권을 쥔 것이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죠. 아무리 능력 있고 재능 있는 개그맨들도 그들이 살리고 죽일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일 겁니다.
그래서 이번 인권위의 권고를 KBS는 겸허히 받아들이고, 다시금 그러한 차별이 없도록 채용 조항을 삭제해야 마땅해 보이는데요. '배제야말로 차별의 시작'이라는 말로 정색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위계질서가 공고한 작금의 분위기는 재능과 실력을 뒤늦게 발견한 늦깎이 개그맨 지망생들을 자동적으로 배재한다는 점에서 방송사 입장에서도 손해일 수 있을 겁니다.
또 하나, KBS를 비롯한 공개 코미디 관계자들이 먼저 위계질서가 작동하는 시스템이 필요악이라는 생각은 이제 버려야 할 것 같습니다. 개그맨 사회가 특수한 분위기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인정하겠지만, 경쟁적인 분위기 속에서 몇 년 전까지도 잔존했던 폭력이나 억압적인 위계질서는 국민들에게 활력소가 되는 개그 프로그램들이 또 한번 외면 받을 수 있는 씨앗이 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런 점에서 늦깎이 신인이 현장에 투입되는 것은 그러한 위계질서에 균열을 낼 수 있는 작은 시도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기득권을 포기하고 MBC로 이적한 박준형 씨의 개그계의 과거 얘기는 그래서 더더욱 곱씹어 생각할 여지를 주고 있습니다.
"선배들이 얘기하는 싸가지 없는 행동을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되면 후배들이 크기 어렵다는 거죠. 그렇게 독재체제가 이뤄지는 거고요. 한 코너 장이 마음이 들면 특정 역할을 (후배에게) 주고 코너 장은 계속 주인공을 하고 다른 사람은 할 수 없죠. 왜냐하면 자기를 위한 아이디어를 짜서 바치니까. 그래서 어느 정도의 선을 적당히 유지하는 게 중요합니다. 저는 풀어 놔요. 그래서 저랑 같이 있으면 애들이 다 빠진다고 하기도 해요. 어느 정도 긴장을 가지면서 자유로울 필요는 정말 있는 거죠. 예전에는 XX 선배들이 녹화 들어가기 전에는 따귀를 때리고 그랬데요. 그럼 후배가 어떻게 웃겨요. 그런 게 있으니까 코미디의 암흑기가 오고 그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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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및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취재기자, 현 영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서울 4.3 영화제' 총괄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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