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S수신료거부, TV안보기, TV수거 퍼포먼스. 모두 70여대 수거
임순혜
채널수 늘어도 광고시장 규모 불변...KBS 수신료 인상 꼼수MPP와 보다 유사한 재원구조를 갖든, 아니면 지상파방송과 보다 유사하든 간에 한 가지는 분명하다. 종합편성PP는 광고수입에 가장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광고시장은 비탄력적 시장이다. 채널수가 늘어난다고 해도 전체 광고시장 규모는 변화가 없다. 그렇다면 결과는 '파괴적 경쟁'이다.
시장 규모는 변화가 없는데, 경쟁자 수만 늘었다. 당연하게도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게 된다. 문제는 방송시장에서의 경쟁이 소비자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벌어지기보다는 종종 약탈적이고 파괴적인 방식으로 벌어져서 시청자의 복지를 저해한다는 것이다. 경제학 용어로 '가치재(merit good)'인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방송시장에서 이러한 부작용의 개연성은 매우 높다.
광고수입의 보증수표인 시청률 경쟁이 격화되지만, 편당 프로그램 제작비는 전체 시장 규모의 변화가 없으니 줄어들게 된다. 이럴 경우, 제작비는 주시청시간대의 드라마 등 인기 장르 프로그램에 편중될 수밖에 없다. 또한 방송 프로그램은 시청자의 눈길을 끌기 위해 더욱 선정성과 폭력성을 띠게 된다. 다큐멘터리나 토론 프로그램 등 사회적으로 훌륭한 가치를 지니지만, 돈벌이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장르의 프로그램은 더욱 제작비가 줄어들고 위축되고 만다. 정부여당이 강조했던 종합편성PP의 도입을 통한 방송시장 활성화의 결과는 아마도 이럴 가능성이 높다.
최시중 위원장이 말하는 수신료 인상은 바로 이런 결과를 타개하려는 시도의 일환이다. 현재 월 2500원인 공영방송 수신료를 5000원으로 인상하면, 단순 계산상으로 수신료 총액이 5646억 원에서 1조1292억 원으로 늘어난다. 6000원으로 인상하면, 1조3550억 원으로 커진다. 수신료 인상액만큼 KBS가 광고를 축소하고 광고주는 현재의 방송광고 규모를 유지한다면, 최 위원장의 말처럼 7000~8000억 원 규모의 광고가 KBS가 아닌 방송광고시장으로 흘러 들어가게 된다. 매우 단순하게 말하자면, 새롭게 등장할 지상파방송과 유사한 성격의 종합편성PP가 KBS가 축소한 만큼의 광고를 차지할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다.
참으로 묘한 방식으로 방송시장이 성장하게 되는 셈이다. 앞서 말했듯이 KBS 수신료는 준조세 성격을 지닌다. 따라서 수신료 인상은 일종의 세금 인상이라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세금 인상을 통해서 방송시장의 규모가 딱 그만큼 활성화되는 것이다. 국민의 주머니를 직접적으로 털어서 방송시장을 성장시키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산업 활성화가 될 수 있을까? 종합편성PP는 무엇보다도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이다. 그 사기업의 안정적인 이윤 창출을 위해서 국민들의 혈세를 인상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인가?
공영방송 수신료의 역설 : 최우선은 저널리즘·프로그램 질적 향상그럼에도 공영방송 KBS의 수신료 인상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공영방송의 가장 안정적인 재원은 수신료이며, 현재의 KBS는 광고수입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크다는 것이 그러한 주장이다. 광고수입에 대한 의존도가 높으면 공영방송 프로그램의 상업화를 막을 길이 없기 때문에, 광고를 통한 경제권력의 부당한 영향력을 막고 공영방송다운 양질의 프로그램을 시청하기 위해서는 29년이나 동결되었던 수신료를 인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원론적으로' 올바르다. 수신료 인상은 양질의 방송문화와 시청자 복지 증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훌륭한 수단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수신료 인상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보다 양질의 방송 문화를 국민들이 향유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수신료를 인상했으나 시청자 복지와 방송문화 향상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그런 수신료 인상은 불필요하다.
최근 언론학계 일각에서는 '수신료의 역설'에 주목하고 있다. 수신료를 가장 안정적인 공영방송의 재원으로 삼는 이유는 그것이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부당한 간섭을 벗어나서 방송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해주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정치권력은 법적으로 수신료 인상 권한을 틀어쥐고 있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방통위원회와 국회의 다수당이 수신료 인상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영방송은 수신료 인상을 위해서 더욱 정치권력의 입맛에 맞추어야 한다. 이는 수신료가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을 보장해주기는커녕, 거꾸로 정치적 예속의 심화를 빚어내는 역설적인 현상을 자아낸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덧붙인다. 지난 2007년의 공영방송 수신료 인상 논쟁 때에는 이른바 '보수세력'이 KBS 보도의 좌편향 운운하면서 수신료 인상에 반대했다. 그렇다면 오늘에는 이른바 '진보진영'이 KBS 보도의 보수성을 지적하면서 수신료 인상에 반대하는 것인가? 이런 식으로 수신료 문제에 접근하면, 공영방송 수신료는 영원히 인상할 수 없다. 문제 설정이 잘못됐다.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KBS의 저널리즘 기능이 심각하게 추락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수신료 인상은 이른바 '공정성'의 문제설정만으로 바라볼 문제가 아니다. 수신료 인상은 국민들의 주머니를 턴 결과가 공영방송의 프로그램을 질적으로 향상시키고, 이를 통해 수신료가 재원이 아닌 다른 방송사의 프로그램에게도 긍정적인 질적 경쟁을 촉진시켜서 방송문화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가의 문제다.
그런데 최시중 위원장이 솔직하게 털어놓았듯, 수신료 인상이 '광고의 민간시장으로의 이전'을 통해 새롭게 등장할 종합편성PP의 재원 확보를 위해서라면, 시청자가 얻을 수 있는 긍정적 변화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쨌든 채널수가 늘어나니까 선택권이 증가할 것이라는 기대는 섣부르고 비현실적이다. 만약 수신료가 실제로 인상된다면, 그리고 복수의 종합편성PP가 등장한다면, 낙관적인 기대와는 거꾸로 '경쟁의 역설'이 현실화될 수 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비관적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