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산 아라메길 임도구간 가야산에는 '아라메길'이 생기기 훨씬 이전부터 길이 있었다.
안서순
가야산에는 최근 들어 유행하는 '올레길'이 생기기 훨씬 이전부터 '그런' 길이 있었다. 그것도 1000년이 넘은 오래된 길이.
그 길은 사람 사는 동네에서 시작해 산으로, 산으로 이어졌다. 때로 사람들은 그 길을 넘어 장이 서는 마을을 찾아 갔을 것이다. 또 1000여년 전 백제시대 때 '마애삼존불상'을 새긴 장인들도 돌을 쪼는 기구와 망치를 담은 걸망을 메고 넘나들었을 것이다. 아울러 그 옛날 불교가 성하던 시절, 보원사나 가야사에서 기도를 마치거나 공부를 하던 스님들도 이 길을 지나갔을 것이다.
깊은 밤에는 고라니, 산토끼, 여우 등 산짐승들이 다녔을 것이고, 천민이었던 망이, 망소이가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며 신분해방의 난을 일으키고 부자 절집인 가야사를 점거했을 때 오가던 길이기도 하다.
동학 때는 서산시 해미면을 지나 수석리 황토 고갯길에서 관군의 기습을 받고 흩어지면서 급하게 피하던 길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이전부터 충남 서부지역의 공산당원들이 어느 골짜기 비트에 숨어 회합을 하기 위해 몰래 타고 넘던 길이었고 전쟁에 몰린 패잔병과 지역출신 파르티잔들이 은거하다 피를 흘리며 장렬하게 생을 마치던 길이기도 했다.
그래서 지역 사람들은 '가야산 길'을 꺼려했다.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사람들이 많아 죽어 한이 많은 이땅의 굴곡진 역사가 스며있는 산이고 길'이라 멀리해 왔다. 누구도 감히 가야산과 산속길이 한때 역사속의 주류였다고 대놓고 말하기를 주저했다. 그러다가 그 옛날 가야산에 큰 절과 100개가 넘는 암자가 있어 한참 불교가 흥할 때 스님들이 구도를 위해 오가던 길이라며, '스님'들이 길에 '백제의 미소 길'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자, 묻혀 있던 역사가 들춰지고 하나씩 불러 세워지기 시작했다.